밤재(96) 버리고 살면 참 인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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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96) 버리고 살면 참 인생이 보인다
  • 박재근 고문
  • 승인 2014.03.1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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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구해탈극견수구치(本來求解脫郤見受驅馳) 사람은 본래 구속을 싫어하면서도 세속의 욕망을 따라 달림으로서 자신을 구속시킨다. -습득시(拾得詩)
갖고 있는 것이 짐이고 짐은 자신을 얽어매는 구속이다. 따라서 갖기 위해 욕망한다는 것은 짐으로부터의 구속을 욕망하는 것이다. 이성에 대한 욕정에서부터 재산과 명예, 지위와 권세, 일 등. 욕망을 추구하면서 가진 것이 늘어날수록 챙겨야할 짐은 늘어나고 짐이 무거워지면서 삶은 고달파지며 고통스러워진다.
해서 화생어다탐(禍生於多貪), 많은 것을 탐하면서 재앙이 생긴다. -명심보감. 나의 탐욕은 나를 구속하며 남의 불행을 만들고 남의 불행은 나의 불행을 만든다. 하여 탐욕은 다툼을 만들고 전쟁을 만들어 무고한 사람들을 살상하니 인류불행의 근원이다. 자유무애(自由無碍) 거칠 것이 없이 자유롭다는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부담해야할 짐이 없다는 말이다. 무엇을 가진다는 것은 곧 부담해야할 짐을 가진다는 것으로 짐에게 자신을 구속시키는 것이다.
사람은 혼자 있으면 외롭고 외로움은 본능적으로 외로움을 덜어줄 길동무를 구한다. 길동무는 사람, 일, 물체, 취미 중 무엇일지라도 자체에 대한 배려를 요구함으로서 나의 구속을 외로움의 대가로 달라한다. 해서 길동무는 나를 옭매는 짐이 된다. 배우자끼리 서로 자기 길을 고집하고 상대에게 메이지 않겠다는 올무를 거부하는 것을 이혼이라 한다. 자유란 곧 외로움의 다른 말이며 외로움이란 자유의 다른 말이다. 혼자 있으면 외로워 이성(異姓)을 찾게 되고 이성은 배우자가 되어 자녀를 만들면서 나를 옭아매는 덫은 더욱 강고해진다. 즉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는 것이다.
물질적 이익만을 추구하다 보면 정신의 성장을 등한시함으로서 정신적 손해를 보게 되며 명예는 언제나 불명예를 동반하고 명예가 확장된 만큼 불명예 또한 확장 된다. 나를 세상에 알리는 것은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이다. 불명예는 반드시 악행에만 따라다니는 것은 아니다. 세속은 이해득실로 구성되어 있고 사람들은 이해득실로 선악을 이해함으로서 자기에게 이익은 선이지만 해로운 것은 악이라는 등식으로 선과 악을 이해하여 선한 사람을 불명예로 모욕한다. 악한 사람은 선한 사람이 자신의 악을 돋보이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워하여 헐뜯고 경쟁관계는 선악에 상관없이 자기의 길을 가로막는 적이기에 미워하여 헐뜯는다.
돈은 지식을 주고 권세와 지위 명예를 주며 세속의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동시에 돈은 세상에 다툼을 주어 인간 사회에 불화를 주고 폭력을 만든다. 돈은 사람에게 눈에 보이는 욕망의 충족을 부추기며 지위와 권세는 자기에 따른 것이 아니라서 옷과 같아 시간이 흐르면 벗어야하는데 사람들은 옷을 자기 몸으로 착각한다. 따라서 돈을 들여 지위를 얻으려하는 것은 명품 옷과 장신구를 사는 것과 같아 일시적으로 허영심을 채워주지만 삶의 깊은 맛이 깃들어 있는 진정한 의미의 보이지 않는 가치인 내면의 가치에는 접근하지 못한다.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선 내면의 가치를 찾아야 하며 이를 위해선 세속적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보이는 가치인 사물 즉 일과 물질적 가치에 얽매일 기회를 줄이고 없애야 한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치는 심안을 가림으로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보는 정신적 눈을 어둡게 한다. 경쟁할 필요가 없으며 도둑맞을 염려가 없고 잃어버리지 않으며 고금동서의 지각 있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공감되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의미를 가진 진리는 고도로 수련된 심안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가치이다.
보이는 가치를 지향하는 세속적 욕망은 탈속의 가치와 의미를 보는 눈을 가리며 평화를 교란하는 상대적 가치에 불과한 돈을 신앙으로 삼는다. 종교란 세상의 불행을 만드는 불의와 싸우며 속된 욕망이 인생에 고통을 주는 짐임을 설명하고 탈속이 영혼의 구원임을 가르침으로서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 종교의 사명임에도 세속적 욕망이 종교인들의 영혼을 지배하면서 본연의 의무와 역할을 상실하고 종교인들은 천국과 극락의 주소를 자신들도 믿지 않는 기만적 사후 세계로 설명함으로서 신앙의 존재이유를 배신한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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