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37)/ 함께 살았던 세월의 힘이 이런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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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37)/ 함께 살았던 세월의 힘이 이런 걸까요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4.03.21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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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지도 가끔 나무에 기대어 흐느끼고픈 나이구만요

아버지의 나이                     -정호승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 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번 씩 불러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앗따. 울 시누이분들, 긍게 지헌테 행님되시는 분들은 비암 같은걸 봐갖고 화들짝 놀랄 때도 워메 아부지! 돌뿌랭지에 넘어져서 뒤뚱 허실러면서도 아이구! 아버지 하신단게요. 울덜은 엄니들을 찾아 헤맬 때에도 20여년이 넘게 지켜봐도 한결같아라. 시방이야 그런갑다 허지만 첫판에 참말로 요상시러봐서 “형님들은 왜 어무니보다 아부지를 더 좋아허신다요”하고 직설적으로 물어본 적이 있어라. 태평허게 한마디씩 허시는 말씀들이 “기냥 고렇게 되불더라고.” 하하, 워쪄겄어요.
형님들은 어려서부터 맨날 아들만 우선시허고 딸들은 찬밥댕이맹키로 고생시키셨던 울 시아버님에 대한 자잘한 불만들이 겁나게 많으셨제라. 금서도 알뜰살뜰 챙기셨는데 지난주가 바로 시부모님 기일이었구만요. 어머님은 지가 시집 온 다음해 돌아가셨고 아버님은 구순잔치까정 허시고 요맘때 돌아가셨제요. 모다 7남매인게 한분도 빠짐없이 참석하시고, 근처에 사는 조카네 3집 까정 모여불믄 왁자지껄 하제라. 새북같이 출발하셔서 아침 9시 되면 집에 오신게 오시자마자 냉이 달래 캔다고 안골을 헤집으셔도 올해는 따땃하지가 않은디다가 초겨울에 한번 땅을 뒤집어 놨드니 냉이 씨가 말라부렀드라구요.

웃음 바탕에 맛난 나물들이랑 뼈다귀탕이랑 드시면서 빼 놓을 수 없는 아버님 흉도 봅니다. 추억한다고 험서 옛날 이야그 중에 혼이 쏙 빠지게 혼난 이야그랑 마지막 아버님과 어머님이 서울 올러오셨을때 이야그 들이 도마에 오르는디요. 울 시어머님은 맛난 음식을 사드리거나 이삔 옷을 사드리면 ‘아이구야 이리 맛나다냐, 워메 요리 귀허고 이삔걸 사준게 내가 잘 입으마’하시는데 아버님은 돈이 월매나 들어갈틴디 쌔빠지게 고상혀갖고 뭣하러 사오냐고 역정을 내신답니다.
형님들은 호랭이가 담배피던 시절 이야그 같은 고리적 이야그들도 잘 끄집어내시면서 아버님 흉을 보는디, 새벽 4시까정 안주무시고 이야그를 도란도란 하시제요. 가끔 고 유전자가 흘러갖고 울딸들이 나랑 남편의 흉보느라 정신없이 수다 떠는 게 상상이 됩니다. 워메 겁나부러요.
아이구메! 울 딸들 나물 지지고 전 부치고 허는 와중에서부터 지 흉을 보기 시작허는디요. 얼어죽고 하나 남았다는 조카랑 궁짝이 맞아서 아조 흉을 보기 시작허드랑께요. 아버님 돌아가시고 입관 허는 날, 지가 눈이 다 붓게 대성통곡을 했걸랑요. 제 설움에 겨운건지, 미처 잘해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죄스러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펑펑 울었지요. 형님들이 저 땜시 맴 놓고 눈물을 못 흘렸다고 하실 정돈게요. 장례식장에서 발인 날 마지막 인사드릴 때도 지가 큰 흉을 잽혀부렀어라. 인사드리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갖고 다들 눈물 흘리시다가 빵 터져갖고 모다 웃어분게 심심허믄 고 얘기를 꺼내십니다.
빼놓을 수 없는 게 가족사진 찍을 때 사건이죠. 여름 날 수술허시고 가을 들어서부텀 자꼬 가족사진을 찍자고 재촉하셨는데 시간이 맞지 않았등가 하여튼 미뤄지다가 담양을 가서 찍게 되었어요. 옷까정 빌려입고 겁나게 이삐고 귄 있는 얼굴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나오는디 아버님이 화가 난 목소리로 투덜투덜 뭐라고 하시는거예요. 그래서 여쭤봤더니 “씨잘데기 없는 것들이 끼어서 에잉”그러시는 거예요. 세상에나 만상에나! 오로지 아이들허고만 찍고 싶으셨는디 참말로 씨잘데기 없이 아들이랑 며느리가 끼어든게 된거죠. 하하하
지금 글을 쓰는 이 컴퓨터가 아버님 장례 치르고 아이들에게 선물로 사 준 겁니다. 실은 우리 딸들이 겨울 내내 할아버지 병구완을 지극정성으로 했거든요. 안골 집이 15평도 채 안 되는 공간인데 그 속에서 7식구가 한 방에서 기거를 했지요. 애들이 오랜 병을 앓고 계신 할아버지한테서 냄새 난다고 헐텐데도 학교 갔다 오면 꼭 껴안으면서 서로 자기 할아버지라고 샘내고 했답니다. 지들끼리 씻겨 드리고 지저분한 것 치워드리고 주물러 드리고 해서인지 아버님은 속옷만 입으실 때는 저나 형님들에게는 오지도 못허게 하셨죠. 병문안 오시는 분들마다 혀를 내둘렀지요. 할아버지께서 사 주신 옷을 작아져도 안 버리고 보관했으니까요. 함께 살았던 세월의 힘이라고 허시던데 저도 많이 고마워하면서 아이들에게 이 컴퓨터를 선물해줬는데 아버님 기일날 사용하네요. 지도 가끔 나무에 기대어 흐느끼고 싶은 나이구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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