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44)/ 오정자 농활왔던 학상들, 잘 지내고 있겄지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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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44)/ 오정자 농활왔던 학상들, 잘 지내고 있겄지 잉!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4.07.04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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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44

바위처럼       -유익현 글/곡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바람에 흔들리는건
뿌리가 얕은 갈대일 뿐
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
굳세게도 서 있으니

우리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속에 자신을 깨우쳐가며
마침내 올 행복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구나

 

워메! 시간이 요렇게 흘러 버릴 동안 다들 잘 있었능가 모르겄네.
긍께 시방 우리들이 만나고 헤어진지가 버얼써 25년에서 10년까지 되겄구만 잉!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오정자마을에 사는 이장떽이여.
오정자 마을에 와서 거머리에 헌혈함서 피 뽑고, 고추 따고 논두렁 풀 베다가 비암 만나 놀라고 거시기허게 비오는 날에 회문산가서 뒷풀이험서 막걸리잔 기울이던 기억들 싹 다 지워버린 것은 아니제.
내사 학생들 이름 한나 한나를 모다 기억하진 못해도 떠오르는 추억은 겁나게 많아선가 여름 농촌활동 왔던 추억이 참말로 새록새록 솟아나게  많아불구만.
경희대 농활팀, 한양대 농활팀, 또 외국어대학교 농활팀, 글구 다시 왔던 경희대 농활팀들이 한 오년씩 왔다갔잖여. 뜨거운 뙤약볕에서 디지게 일허고 밤마다 했던 아이들반, 청년반, 여성농민반들 다 기억나나? 새벽까지 이어졌던 토론들은 또 워찌구. 시방 생각하면 대단했었제.
어떤 친구들은  담배 훑으랑께 위에서부터 아래까정 몽땅 훑어버렸었잖여. 점심때 파김치가 되어갖고 온 학생들에게 어메들이 무슨 일 하고 왔냐고 물응게 여학생들이 “00씨 고추 따고 왔어요” 해갖고 두고두고 웃어버렸잖여.
그 때의 갓난쟁이였던 큰 딸이 이제 24살잉게 경희대 미술팀이 회관 벽에 그렸던 벽화의 나이도 고만할틴디. 새롭게 회관을 지움서 없애버림서 마을 주민 모두가 아쉬워하며 사진도 찍었었제. 옛날에 그림 그린 팀이 와서 다시 색칠까정 해줬었는디 속상혀.
한양대 농활 팀이 왔을 때는 울 딸들이 어렸지만 맨날맨날 회관에서 파고 살았제.
외국어대 농활 팀의 대장이었던 별명이 ‘감자’였던 친구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디 겁나게 수수하고 붙임성도 좋아서 인기 좋았제. 농활이 끝나고도 단체로 차까지 빌려갖고 놀러 오다가 들어오는 길에 차를 박아서 수리비가 꽤 나왔을틴디. 지금은 뭐하고 살려나 궁금하네.  집이 광주여서 한 두 번 놀러도 와서 단비가 아플땐 인형도 사가지고 와서 병문안도 해줘서 내가 무지 고마웠는디도 암것도 못해줘서 시방까지도 미안시러부네. 혹여라도 이 글 보고 오정자 오면 블루베리랑 표고랑 맛난 것 줄팅께 꼭 오소 잉!
외국어대 농활 팀이 겨울농활까지 허고 감서 아그들헌티 두 손 잡고 부탁했제. “너네는 우리 잊지 말고 경희대 언니 오빠들 와도 아는 척 말아라. 친해지지 말아아” 하하하.
경희대 농활 팀이 왔을 때는 막둥이까정 아예 회관으로 짐을 옮겨불고 살았는디.기억나나!  아그들이 별명을 다 붙였었는디  이 오빠는 ‘악마’ 저 오빠는 ‘감자’ 언니들은 언니들대로 별명으로 부름시롱 낄길거렸었제.
참말로 고생 많았던 친구들이었제. 아마도 그때가 오정자 경지정리하고 난 직후라서 모심던 이앙기도 빠지고 논에 풀들도 많이 나서 할 일이 겁나게 많아버렸제. 밭에는 또 얼마나 할 일이 많아부렀던지 길고 긴 콩 밭 매는 아낙네도 되었고 나이 드신 어르신들과 말동무도 되어주었제. 그려 가을 농활 때는 콤바인 작업을 해서 나락들을 거두어 들여야 허는디 논이 푹푹 빠져서 논 한가운데서부터 30키로 가까이 되는 가마니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날라야 했는디 겁나게 고생들이 많았제. 엄마 젖먹던 힘까지 썼을껴, 2002년도엔 내가 여성농민회 총무 볼 때 잉게 전라북도 여성 농민 대회도 순창에서 헐때라 학생들까지도 바빴제. 바위처럼에 맞춰 율동하며 어메들 웃게 하랴 준비하랴
항상 고마워하지. 알제 내맴!!
마지막날 오정자 마을 잔치 한다고 몸빼바지 입고 율동하고 마당극 꾸미고 김치전 부쳐서 함께 회관 앞마당에서 먹었지. 2차는 안골 우리집 노래방이었잖여. 일은 디지게 시켜도 내가 우리집 담근 술들은 몽땅 주었었는디. 그때가 이장님 생일이 들어 있어서 친구들이 다 한마디씩 써서 사진첩 만들어 선물로 줬잖여.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응게 보고 싶으면 오소.
여기 오정자마을 느티나무처럼 우리는 뿌리 내리면서 잘 살고 있어. 항상 그 자리에서 있응게 수소문 할 필요도 없제. 그 때 내가 장난처럼  난중에 우리집 이용권 준다고 혔는디. 아이들과 캠핑와도 되고 알밤 익을 때 놀러와도 되고, 아무때나 오소. 단 내가 쬐까 바빠지고 비싼 아지메가 돼서 미리 연락해야 허거든. 이장떽도 되지만 순창군 관광 해설사이기도 허고 학원 선생님이기도 허거든. 먹는 것은 공짜로 혀줄게. 담근 술도 겁나게 많고 묵잘 것도 허천나게 많응게 워쪄 입맛이 땡긴당가. 연락주소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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