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6) 방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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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6) 방문자
  • 박재근 고문
  • 승인 2010.11.1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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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게 어떤 남자가 방문했네. 무슨 일로 오셨느냐 물으니 나의 남편 역으로 왔다네. 누구의 뜻이냐 물으니 자연의 뜻이라네. 앞으로 할 일이 어떤 일이냐고 물으니 함께 살면서 아들·딸 낳아 기르고 때론 웃고 울며 화내고 기뻐하며 슬퍼하고 즐거워하면서 재산을 모으기도 까먹기도 하면서 머물겠다네.

 

그의 말대로 그렇게 우린 살았네. 그러던 어느 날 엄청난 짐과 사랑과 미움이 범벅이 된 정을 남겨놓은 채 그는 예고 없이 가버렸네. 하늘이 무너진 나는 몸부림치며 온몸으로 울면서 그를 보내고 예고 없이 거두어간 자연에게 거세게 항의했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어떻게 나에게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었네. 자연이 대답했네. 정이니 사랑이니 미움이니 친불친이니 선이니 악이니 그런 것들은 너희들 인간들의 것이지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그는 처음부터 방문자의 신분으로 너에게 갔었다고.

그가 가고 나는 아직도 괴로움의 포로가 되어있네. 오늘 아침 나는 우리 집 개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네. 나는 너희 인간들에게 생떼 같은 자식들을 도둑맞기도 했고 하늘같은 남편을 목을 매어 잡아먹는 것도 보았지만 삼일 이상 괴로워하진 않았어. 되돌릴 수 없는 일로 마냥 괴로워하는 걸 보면 인간처럼 멍청한 것들도 없을 거야.

곁에 있는 염소가 거들고 나선다. 저 혼자만 괴로워하면 봐줄만 하지만 트로이 전쟁과 헨랜이라는 주관없는 여자하나 때문에 전쟁을 하고 살육으로 나라가 망하지 않아?

고양이가 나선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가만두지 않아. 모든 걸 소유하려고 해. 돈, 권력, 지위, 명예, 사람, 나라 등 그 끝없는 소유욕은 또 다른 소유욕과 부딪치면서 증오를 양산하고 살인과 전쟁 등 불행을 생산하지. 사람들은 불행이 소유 속에 산다는 걸 모르는가 봐. 이번에 죽은 남자주인 만해도 그래. 그는 처음부터 방문객으로 온 거야. 그를 그의 자리에 그대로 두지 않고 자기 남편으로 소유하고 나니 필연적으로 상실감이 커진 거야. 소유의 위험성을 경고한 지혜 있는 사람들의 말이었어.

‘무집고무실(無執故無失)’ 가지지 않으면 잃지 않고,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남은 그 자체가 처음부터 헤어짐을 예정하고, ‘만유무상(萬有無常)’ 모든 것은 변한다. 그대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사람들은 기억해야 한다고 봐. 물론 슬픔을 밥 먹고 수저 놓듯이야 할 수 없지만 ‘애이불비(愛而不悲)’ 슬퍼하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되지. 왜냐하면 마음이 그릇되게 되면 인생을 병들게 하니까.(‘悲’는 ‘정상이 아닌, 그릇된, 어긋난 마음’을 뜻함)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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