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109) 실수와 반성
상태바
밤재(109) 실수와 반성
  • 박재근 고문
  • 승인 2014.10.02 14: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실수가 많은 편이다. 나의 실수는 나를 주장하면서 주로 발생한다. 나를 주장한다는 것은 마음이 몸에 구속되어 있다는 뜻이다. 나는 나의 보이는 몸보다는 보이지 않는 나의 정신이 진정한 나라고 생각하며 진정 의미 있는 삶이란 보이는 나에서 보이지 않는 나로 옮겨가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이 의미를 찾아간다는 것은 자기를 지움이며 감춤이고 비움이며 궁극적으로 죽음을 목표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언필칭 비움을 이야기 하지만  정작 삶의 현장에서 비움의 다짐은 이러 저러한 이유에 의해 망각되고 묵살되기 일쑤다.
인생에 있어 최악의 실수는 마음이 진실이 아닌 거짓된 가치관에 매달려 평생을 사는 것이다. 이익이란 이로움을 더한다는 말이다. 이익에는 몸을 위한 이익이 있고 정신을 위한 이익이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몸에 지위와 명예 돈을 바르는 것을 이익이라 생각하며 이익을 향한 치열한 경쟁은 승리를 위해 거짓을 동원하고 이로 인해 위선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정신의 의미를 살리는 진실과 순수는 빛을 잃고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술에 취하듯 이익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익에 취해 살고 기분대로 사는 사람은 감정에 취해 산다.
분노가 만든 실수: 작은 냄비는 쉽게 뜨거워진다. 마음속에 여유가 없어 속이 좁으면 거슬린 언동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다. 감정이 열을 받기 시작하면 이성의 눈은 감기기 시작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마음은 여유가 없어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말이 나온다. 분노는 이성을 잃게 한다. 이성을 잃는다는 것은 인생의 눈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물을 보는 눈을 잃어 판단력을 상실하게 되면 인생의 실수와 실패를 부르게 또 다른 분노의 원인을 만들게 된다.
미움이 만든 실수: 사람에 대한 미움은 사람이 지니고 있는 선과 악 모두를 부정적으로 봄으로서 결과적으로 자신을 속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증오는 그 사람에 대한 선을 부정하고 악을 생산한다. 우리가 미워해야 할 것은 악이지 사람이 아니다. 미움이 만든 실수의 반성은 미움을 지우고 미움의 자리에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채워 넣는 것이다.
사랑이 만든 실수: 이성적(理性的) 사랑은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으로 세상을 살리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만 감정이 개입돼 특정한 사물에 매몰 되거나 특정인에게 지나치게 빠지게 되면 객관성을 상실하며 자기의 중심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성(異性)에 대한 사랑은 감정이 주가 되어 인생의 눈인 이성(理性)을 배제하게 되면 눈먼 사랑이 되기 쉽다. 사랑의 감정이 식어 눈의 콩깍지가 벗겨지고 서로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면 실망이오고 실망이 자라게 되면 절망이 오게 된다. 사랑이란 인간의 단절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절망의 고통을 치유하는 유일한 처방은 모든 인간은 본래 결함투성이며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의 미운 점을 사랑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거래가 아닌 결함을 보충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슬픔, 근심 걱정, 두려움이 만든 실수: 슬픔에 젖어있는 사람은 슬픔이라는 구름이 영원히 걷히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고 절망하기 쉽다. 걷히지 않는 구름이 없듯이 걷히지 않는 슬픔은 없다. 상실을 슬퍼하는 마음이 밝음을 가리는 구름이다. 상실은 나의 것이라는 소유의식에서 오고 소유의식은 밝음을 가리는 구름이다. 본래 없는 소유의식을 걷어치우면 마음은 밝아진다. 우울한 장마처럼 어두운 날이 다소 길어질 수는 있어도 밝은 날이 영원히 오지 않는 법은 결코 없다. 절망은 천리를 거부하는 것이다. 근심걱정과 두려움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며 사람이 지치면 지혜가 흐려진다.
도생어안정(道生於安定) 마음의 안정이 되어야 길이 보인다 <명심보감, 자허원군>. 도리가 마음에 배어있게 되면 마음이 안정되고 마음이 안정되면 성품이 조용해지며 성품이 조용해지면 인내를 즐기고 겸양과 배려가 마음자리를 잡는다. 명리와 사물에 대한 탐욕을 비우면 마음 속이 맑고 밝아 신령해지면서 진리의 보물로 꽉 차 무게가 있게 되어 입을 잘 열지 않으며 침묵을 좋아하고 마음이 침묵을 좋아하면 입은 조용하고 실언을 하지 않기 마련이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순창 농부]농사짓고 요리하는 이경아 농부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이러다 실내수영장 예약 운영 될라”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