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 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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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 숙주’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14.12.1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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慣行 宿主

“되기 전에 부탁하면 한 장, 되고나서 인사하면 절반이 든다.” 한 사무관 부인이 공개된 장소에서 했다는 말이다. “인사 사례는 우리 사회의 관례이자 관행이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오래전 자력 승진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한 사무관의 ‘허심탄회’한 소회다. 최근 군수 측근의 자택과 사무실을 경찰이 압수수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사 청탁’ 특히 “자리를 놓고 돈을 요구했다”는 주장과 “돈 없이는 승진할 수 없다”는 공직사회 자조적 폭로에 마음이 편치 않다.

관례(慣例)란 “전부터 해 내려와 관습으로 굳어진 것”으로 “예전부터 그렇게 해 와서 위반된 것을 몰랐다”는 공직사회 변명에 다반사로 동원된다. 관행(慣行)은 “오래전부터 해 오는 대로 함. 관례에 따라서 함”이라는 풀이처럼 잘못의 구실이자 핑계로 활용된다. “전부터 그래왔다”는 ‘관행적 답변’이 당당해 보이는 이유다. 그들은 잘못을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잘못을 지적하고 관행 탈피를 다그치는 이들을 원망하고, 때론 가진 관권과 금권을 이용해 압박하는데 더 힘쓴다.

잘못이 들춰질 때마다 앞세우는 관행은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울 때의 핑계이고, 나중에 논란이 될 때에는 ‘구원투수’로 까지 등장한다. 대개 이들은 “관행대로 했을 뿐이다. 관례를 따랐다”며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기 보다는 구실을 찾고 까닭을 만들기 급급하다. 따르고 지켜야 할 관행은 뒤로하고 없애고 고쳐야 할 관행에 기댄다.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서는 부정한 거래까지도 ‘상부상조의 정신이자 고유의 미덕이다’고 항변하며 비판하는 이들을 심하다고 고발한다.

고인 물처럼 썩어문드러진 관행과 고정관념, 편견을 버리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자성과 각성은 보이지 않는다. 잘못된 관행을 버려야 옳고 바른 가치를 받아들일 공간이 넓어진다는 당연한 사실을 모른 체한다. 오랜 관행을 버리고 새로이 맞는 환경은 예상보다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부패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잔챙이만 고쳤다고 자랑하지 말고 자신들의 ‘갑질’을 위해 숨겨둔 굵은 것을 고쳐야 한다. 그게 공직자의 소임이다.
국가사정기관에서 잔뼈가 굵었는데 옳은 관행과 그른 관행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웃음거리다. 비리와 부정을 바로 잡는 일에 청춘을 바쳤는데 숨기고 감추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 지역에 희망은 없다. “청렴한 세상은 깨끗한 세상을 의미”하며 “깨끗한 세상이란 사람들이 서로를 믿고 속이지 않는 투명하고 정직한 세상”이라고 말하면서 케케묵은 더러운 관행을 걷어내지 못한다면 고위 관료 출신이라는 위상과 권위에 기대 타성에 젖어 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시켜도 따르지 않는다.’ 말로만 결기를 세우기보다는 혹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것은 아닌지 툭툭 털어 볼 일이다. 끊이지 않는 압수수색 그리고 수사.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며 안도하기 보다는 ‘괜찮다(관행)’며 넘겨버렸던 일에 대해 스스로도 정당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볼 일이다. 칡넝쿨처럼 얽히고설켜 뿌리 뽑기가 쉽지 않아지면 만사불통이 된다. 더구나 자신을 도운 가까운 사람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늘의 기회(天時)는 견고한 요새(地利)에 미치지 못하고 견고한 요새도 사람의 화합(人和)에는 미치지 못한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니 백성들이 항산과 항심으로 튼튼해야 나라가 평안하다.(民惟邦本 本固邦寧)” 새해아침에 마음에 새겼다는 2013ㆍ2014 군수 신년사에 적힌 경구다. “군민을 위해 한 걸음 먼저 움직여서 생활밀착형 규제를 완화하고, 관행이란 말로 책임을 회피하거나, 구호나 겉치레에 머무르지 않도록 하겠다.” 2015년 새해를 앞두고 음미해 본다.

“숙주(宿主), 기생자에 영양을 빼앗기는 식물을 말한다. 어떤 종의 생물이 다른 생물로부터 양분을 섭취하면서 자라는 것이 기생이며, 양분을 빼앗는 쪽은 기생자, 빼앗기는 쪽은 숙주이다.” ‘관행’에 얽매이고 덮어주면 종국에는 숙주(宿主)만 망가진다. 내 주변의 기생자가 누구인가. ‘자랑스런 공무원’과 함께 ‘부민강군(富民强郡)’ ‘참 좋은 순창’의 꿈을 실현하는 성숙한 사회, 합리적인 사회가 되려면 좋은 관행은 널리 알리고, 잘못된 관행은 더 고삐를 죄어 척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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