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55)/ ‘겨울이 맛나게 익어 가구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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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55)/ ‘겨울이 맛나게 익어 가구만이라’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4.12.19 2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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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55

겨울 이야기           -이상현

겨울은
아이들 때문에 찾아온다.

알밤처럼
단단하게 여물어 가는
목소리.

딱 벌어진
가슴으로,
눈싸움하는
개구쟁이들이 좋아

겨울은
언제나 눈송이를 터뜨린다.

불꽃처럼
사방에서 터뜨리는
그 눈밭에서
아이들은
날마다 깔깔대며 자란다.

제 키보다
큰 눈사람 만들 때,
제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그 겨울을 혼자서 굴릴 때

아이들은
부쩍부쩍 자란다.

 

시방 지가 사는 오정자 골짝엔 함박눈이 펑펑 내림서 눈보라도 일으키는디 머리카락 끄댕기면서 죽자 사자 달라 드는 싸움꾼 같구만이라.
워메? 겁나게 무섭게 들이치는 폼새가 허벌나게 추와 불랑가 본디 지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 모다 건강 조심허씨요 잉.
지난번에 거시기허게 눈이 많이 올 때에 제자 중에 한명이 “선생님, 눈이 옹게 참 좋지요”하고 물어보는디 지도 모르게 “아니, 하우스 무너질까 걱정되고 집으로 돌아 갈 길 걱정되고, 흐미 워쩐다냐?”해 버렸네요. 서울떽의 황홀했던 마음들도 폴싹 늙어버렸는 갑소. 워쩔까라 잉. 참말로 멀지도 않은 옛날에는 눈만 오면 기냥 좋아라 폴짝 폴짝 뛰어 다님서 아이들과 눈싸움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별의별 짓꺼리들 다함서 돌아다녔는디라. 
우리 아그들 어렸을 때 사진 보믄 황홀해부런 사진들이 많구만요.
요렇게 겁나게 눈이 많이 올 때면 소막으로 올라가는 길을 미끄럼틀 만드는 작업부터 하제라. 엉덩이 안 아프게 폭신폭신허게 만듬시롱 맨 끄트머리로는 처박히지 않게 안전 장치까정 만들어 놓지라. 아그들 허고는 사방 천지에 있는 비료 푸대를 챙겨다가 소막에 가서 짚을 팍팍 넣어 불죠. 흐흐 처음에는 빨리 탈 생각에 쬐까만 넣어서 타다가 엉덩이에 불이 나믄 한바탕 짜증내다가 아조 짚을 도톰하게 깝니다. 소리소리 지름서 장난도 침서 안골이 다 떠들썩 해불지라. 어쩌다 더 길고 구불구불한 새로운 길을 만든다고 밤나무 산에서 내려 오는 길에서 눈썰매를 탔다가는 밤송이에 찔려서 엉덩이가 고슴도치가 돼불제라. 지금은 조카들의 아들딸들의 놀이터가 되었제요.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부엌에선 보글보글 지글지글 맛나게 음식들이 익어가제요. 지가 시방처럼 거시기허게 안 바쁠 때 겨울은 허천나게 맛난 것 천지였걸랑요.
호박과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호박식혜 맛보셨는게라. 눈은 오는데 입이 심심하다 하믄 일단 누~우런 호박부터 팍 짜개고 보제라. 워낙에 호박이 크믄 반덩이는 호박죽을 하고 반덩이는 호박 식혜를 만들제요. 찹쌀과 맵쌀가루 반죽 해다가 동글동글 새알심을 만들면서 아이들은 온통 하얀 칠을 해댑니다. 딸 넷과 동그란 상 앞에서 새알심을 만들며 조잘대던 추억들이 떠오를 땐 통팥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한쪽에선 호박들을 끓인 다음 큰 전기밥통에 엿기름물과 밥을 쬐까 부어 앉혀 놓으면 끝!
생강을 저며서 포로록 한소끔 끓여 놓고 추운 바깥에 놔두고 하루가 지나면 얼음 동동 호박식혜가 되지요, 어제 만들어 먹은 호박죽까지 얼려지면 환상의 겨울 간식이 되는디, 흐미! 고 옹골진 맛을 어떻게 표현한다요. 안그요.
아그들이 눈싸움하고 들어오면 뜨끈뜨끈 구운 고구마에 식혜 한잔 주면 꿀맛이제라. 이쁘다 싶으믄 나무 보일러 안에다 삼겹살 구어서 주기도 하고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 앞에서 굴 구이도 해줍니다. 꼬막까지도 가능했제라 흐흐!
식혜가 없을땐 집 뒤란에 묻어 둔 짐장 김치와 동치미가 구원 투수제라. 동치미가 맛나게 익어 갈 때 쯤, 김장 김치 들기름에 볶아 놓으면 아조 맛나게 되잖아요. 미리 김을 준비 해 놓으면 다른 재료 없어도 허벌나게 맛난 김밥이 되는디요. 동치미 무시 길게 잘라서 단무지 대신 하구요, 시금치 대신 김치 볶은 것 놓구요, 밥을 아조 맛나게 볶아불믄 셋이 먹다 둘이 죽어도 모를 맛이랑께요.
그다음엔 팥 칼국시를 만들제라. 울 딸들허고 맥주병 씻어서 밀 준비허고 왼 방안에 신문지 펼쳐 놓고 도마 갖다 놓고 시작 허제라. 지는 압력 밥솥에다가 팥 씻어서 앉히고 내리는 작업을, 딸들은 밀가루 미는 작업과 칼국시 써는 작업을 맡아서 합니다. 눈 오는 풍경을 쳐다봄서 쓱싹쓱싹 칼질을 하면 풍경도 맛나집니다.
아! 글구 빼먹으면 안 되는 서울떽네 황홀농원의 달착지근험서 꼴까닥 소리가 나게 하는게 있는디 뭔지 모르시제라.
안골에는 겁나게 많은 감나무들이 있잖아요. 근디 이 감들이 홍시가 되어서 얼어붙어 있는디 새복이면 하얀 눈 위로 떨어져도 이삔 얼굴이 손상이 한나도 안 되는 거제요. 고게 바로 감 아이스크림이라고 부르제요. 얼어있음서 달착지근한 고 맛은 꼭 첫사랑 맛이제요. 잊을수가 없는. 시방 묵고 있구만이유. 겨울이 맛나게 익어 가구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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