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곡]아호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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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아호한담
  • 선산곡
  • 승인 2015.01.0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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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한담(雅號閑談)

세자 양녕과 함께 노는 잡객들을 엄히 다스린 태종이었다. 김호생이란 선비가 잡혀와 문초를 받게 되었다. 양녕에게 붓을 만들어 주었다는 말을 들은 태종이 그를 벌하지 않고 공조에 필장으로 심어주었다. 요샛말로 특채, 성은을 입은 그에게 동료가 농 삼아 아호를 지어 주었다.
“목은(牧隱), 도은(陶隱), 포은(圃隱)처럼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뜻 뒤에 은자를 넣었느니라. 너도 붓 잘 만드는 장인이니 호은(毫隱)으로 하라.”
좋아서 자랑스레 그 호를 써온 그에게 어느 날 누군가 핀잔을 했다. 은(隱)자의 뜻이나 제대로 알아라, 너에게 은이란 은둔이 아니라 착취를 뜻한다고 알려 준 것이다. 붓 만드는 털을 사람들에게서 긁어모은다는 뜻이었겠지만 ‘어디 감히 목은 도은의 항렬이냐’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보인다.
대전집 옥성(玉成)누님의 본명은 김옥례(金玉禮)다. 여자에게 구슬 옥자가 이름으로 들어가면 팔자가 세다는 악담을 하던 어떤 노인네의 말에도 까딱 않았지만 결국 누군가 지어준 별호에도 구슬 옥자가 들어가자 말 그대로 팔자순응을 하고 웃어버린 분이었다. 어느 날 옥성누님이라 부르며 우리들이 음식을 주문하는 말을 들은 손님 하나가 여자에게 호도 다 있느냐며 빈정거렸다. 별 반응 없이 듣고만 있던 옥성누님, 당신 말대로 나 같은 사람도 있는 호, 아저씨도 호 하나 있으면 좋겠으니 지어드리겠다는 제의를 했다. 처음 빈정대던 사람이 자기 호 지어 준단 말에 뜻밖에도 반응이 진지해졌다.
“아저씨 얼굴을 보니 우신두라고 허면 참 좋겄소.”
“우신두?”
옥성누님이 웃지도 않고 그의 동정을 살피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하긴 했다. 아저씨의 얼굴이 확 피어 있었다. 함께 앉아있던 일행들은 물론 때마침 옆자리에 있던 우리 일행들도 그 뜻이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아저씨, 소전머리 사시지라우?”
소전머리, 당시 내 고향엔 남도최고의 우시장이 있었다. 5일장에 맞춰 섰던 그 우전(牛廛)부근을 ‘소전머리’라 불렀는데 더러 야하게 발음이 달라지기도 했다.
“그렇소만.”
“아, 소 우(牛)자에, 조 신(腎)자에다가, 머리 두(頭)자! 안 좋소?”
동물의 생식기를 뜻하기도 하는 가운데 문자를 일부러 당차게 발음해낸 옥성누님의 말을 처음에 그 아저씨가 못 알아들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마시던 물을 그만 입으로 품고 말았고 아저씨의 일행들은 박장대소, 식당 안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점잖게 한방 먹인 옥성 누님은 주방 안쪽으로 건너갔고 그 아저씨는 얼굴이 벌개져서 한다는 말이 ‘에잇, 여보쇼!’ 였다. 그러나 그 후로 그 아저씨는 영락없이 ‘우신두’라 불리게 되었다.
나도 비슷하게 호 하나 친구에게 지어 준 일이 있다.
그 옛날 직장동료, 먹는 것에 유난히 집착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십리 밖에서 비스킷 하나만 먹어도 ‘나 좀, 나 좀’하며 달려오는 그였다. 덩치는 호말만해서 그런지 유난히 배고픔을 못 참는 사람이었다.
“산곡아. 나 호 하나 지어도라.”
어느 날 그의 요청이었다. 심사숙고해야 할 텐데 내 입에서 대뜸 답이 나왔다.
“거덕이라 허소.”
“거덕?”
“자네 덩치에 맞게 클 거(巨)자에 덕 많이 베푸는 사람이니 덕 덕(德)자! 안 좋은가?”
“거 좋네. 앞으로 내 호는 거덕(巨德)이네잉.”
대단히 만족하는 그였다. 큰 덕을 많이 베푸는 뜻이라 했으나 실은 음식이나 재물을 탐하는 ‘껄떡대다’의 ‘껄떡’을 ‘거덕’으로 음을 순화한 것이었다. 물론 장난이었지만 그가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오히려 내가 머쓱해진 꼴이었다. 나중에 진지해져서 그에게 걸맞는 아호라며 서푼짜리 산곡체(?)로 붓글씨까지 써서 주었으니 감추어진 마음, 조금 미안했다. 시작은 장난이었으되 쓰임은 진정이거라, 애써 위안을 했지만 차마 본인에게 말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도 그는 거덕이라는 호를 자랑스럽게 쓰고 있다.
조선조 안계송이란 선비는 세리에 너무 무심하여 이웃사람들이 ‘박전(薄田)’이라고 수근댔다. 얄팍하고 융통성 없는 그를 거둘 것 없는 밭뙈기라 야유하였지만 정작 그의 호가 박전이었음을 사람들은 몰랐다고 한다. 성정 때문에 박전이라 불리는 줄을 본인 또한 몰랐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이종준이란 선비는 다수의 호를 갖고 있는데 그 중 ‘장륙(莊六)’은 원래 친구였던 신포(申誧)가 쓰던 호였다. 그 뜻이 너무 욕심난 이종준이 술 한 병과 바꾸자고 떼를 썼다. 신포가 흔쾌히 허락하여 ‘장륙거사(莊六居士)’는 나중에 이종준이 즐겨 사용하는 호가 되었다. 술 한 병의 값어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사람들이 넘볼 수 없는 멋있는 거래다.
박전이나 장륙처럼 아호도 사람과 궁합이 있다. ‘갈 데 없는 산중 놈’을 자처한 나도 산곡(山谷)이라 주저 없이 쓴 지가 벌써 50년이 가까워진다. 문단데뷔 초 헷갈리니 쓰지 말라는 어느 수필가의 핀잔은 ‘콧등의 봄바람’으로 넘겼다. 그 분의 핀잔이 너는 도대체 뭐냐는 빈정거림이었음을 정확히 읽은 탓도 있지만 이름과 필명이 헷갈린다는 것은 내 몫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추사 김정희의 아호는 무려 503개다. 산의 무연(憮然)함을 좆아 그 아래 살아 온 나로서는 산곡(山谷) 단 하나도 그저 과분하다. 깊은 뜻 사리어 두지 않기로 한 것도 역설적으로 무연함 때문이겠지만.

***선산곡(宣山谷) 작가는 ‘문예연구’ 수필부문 등단.(‘94) 한국문인협회 회원, 전북수필문학회장 역임, 현 국제펜클럽 전북위원회 부회장. 수필집 <LA쑥대머리>, <끽주만필>, <속아도 꿈 속여도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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