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58)/ “웃음소리 뒤로 하고 꽃상여 타셨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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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58)/ “웃음소리 뒤로 하고 꽃상여 타셨제요”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5.01.3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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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58

꽃상여 타고                  -양성우

꽃상여 타고 그대
잘 가라.
세상에 궂은 꿈만
꾸다 가는 그대.
이 여름 불타는 버드나무
숲 사이로
그대 잘 가라 꽃상여 타고.
그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어이어이 큰 눈물을
땅 위에 뿌리며,
그대 잘 가라
꽃상여 타고.

지난 주 토요일맹키로 시상을 살믄 참말로 고달프겄어라. 사람이 살다봄사 요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벱인디라. 아침에는 연산 사둔어른 발인하는 것 보고 저녁에는 큰 시아주버님 칠순 잔치까정 하룻새에 큰 일 두가지를 해버렸당께요.
사둔 어른 가시는 길에 꽃상여가 곱게 피었었제요. 평생 사시던 집과 주유소에서 노제를 지내시고 항상 물꼬 보러 오고 가던 들녘 위 자그마한 선산에 묻히셨지요.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나 일러 주오” “너허 너허 너화너 너이가지 넘자 너화 너”  돌아가신 사둔어른께선 우리 딸들이 구림에서 운동회를 하면 꼬깃꼬깃한 만원짜리를 갖다 주시며 맛난 것 사먹으라고 챙기시고 집에 맛난 것 있으면 딸들 데려다가 주고자파 하셨죠.
길게 선 꽃상여 행렬을 보고 있자니 시아버님 돌아가셨을 때가 떠오르더라구요. 안 그려도 장례식장에서 썩을 놈의 조카들이랑 울 딸들이 지의 옛날 이야그를 험서 웃어 제꼈거든요.
한 여름에 수술 받으시고 거진 반년을 넘게 아프시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지요. 전주 큰 병원에 있을 때는 지보고 딸이라고 다들 아셨을 정도로 쬐가 잘해드리려고 했제라. 나중에는 못해 준 것만 생각난다고 옆에서들 말씀 하시길래 ‘아프실 때 후회 없이 잘해드리자’라고 일찌감치 마음묵고 혔지만 집이들도 아다시피 고게 고렇게 쉽게 되는 것은 아닌께요. 아시제라!
그려도 나름 정정하셔서 가실일 할 때 까지는 움직이실 수가  있으셔서 셋째 사위 환갑 생일 때 가셔서 쑥대머리 창가도 하셨당께요. 아! 지가 생각해봉께 아무려도 아버님 기운 있으실 때 구순잔치를 혀야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10월 초 집에서 잔치를 벌였었제요. 한참 알밤이 떨어질때라 선물은 알밤 주워가기로 허고라. 부산에 사시는 이모님들부터 경기도, 서울, 대전 등 방방곡곡에서 일가친척들이 다 한자리에 모여서 음식도 나눠 먹고 노래도 하고 밤새 걸판지게 잔치를 벌렸거든요. 월매나 아버님 보시기에 오졌겄어요. 시방 생각혀도 서울떽이 잘 한 일중의 하나구만요. 그리고 나락 방아도 쪄야 허고 밭일들 마무리 혀야 쓴디 자꼬 아버님이 장날 시장에 가자구 허시는 거여유, 나름 바빠 죽겄는디 새벽에 일 나갈 때 물어 보시고 한 밤중에 돌아오면 또 말씀 허시고 허심서 꼭 며느리허고만 가야 된다는 거여요. 갔죠. 근디 아이구메! 양장점으로 성큼성큼 들어가시더니 ‘주인 양반, 최고 좋은 것으로 우리 며느리 옷 잠 맞춰주씨요’ 하시는 거예요. 눈치 채고는 부랴부랴 모시고 나와서 순창에서 제일 큰 옷가게로 모시고 들어갔제요. 시상에나 만상에나 아버님 호주머니에서 만원짜리가 겁나게 나오는 거예요. 아들은 안 사줘도 된다고 하시는 것을 우겨서 제꺼 양복 한 벌 단비 아빠껏 한 벌 사입고 블라우스까정 샀는데도 더 사 입으라고 채근하셨답니다. 밖에 나가서 식사도 안하시고 돈쓰는 걸 정말 아끼시던 아버님이 저에게 보여주신 정이셨지요. 지헌테 돈 주면 절대 안 사입는다고, 내가 너를 모르겠냐고 그러심서 한달쯤 있다가는 정읍으로 데리고 가셔서 너무 추워 보인다고 털 달린 두꺼운 외투까지 사주셨지요. 겨울 내내 아버님 옆에서 재롱도 떨고 주물러 드리고 웃어주고 씻겨 줬던 네명의 손녀딸들에게도 좋은 옷 한 벌씩 선물하고 떠나셨는디, 울 네명의 형님들이 질투하실 정도였당께요.
아버님하고 산 세월이 20년이 될 정도로 미운 정 고운정 다 들어선지 아버님 입관 허는 날  지 설움에 엄청 울었더랬습니다. 시집살이 호되게 시키시는 아버님 땜시 속이 씨꺼멓게 타들어 간다는 게 뭔지 알아부렀고 화병이 나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뒤 안에 가서 울기도 엄청 울었더랬거든요. 발인하는 날 마지막 가시는 길에 큰 절을 올려야 허잖아라. 뒤에 온 식구가 다 둘러서 있는데 지가 절하다가 뒤로 발랑 넘어졌잖아요. 통곡하시던 형님들마저 웃어버릴 정도로요, 워메 아조 챙피해부렀죠. “그렇제. 그 순간에 웃기게 할 사람이 작은 엄마밖에 더 있겄어”하는 조카들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울 시아버님도 꽃상여 타셨제요.
재미있었던 것은 꽃상여 타고 마지막 가실 때 오정자재로 가는 오르막길에서 구슬프게 흐르던 상여소리가 갑자기 멈추더니 신나는 트로트로 바뀐 거예요. “발길을 돌리려고 바람 부는대로 걸어도” 영문 몰라 하던 사람들도 일가친척들도 웃음을 터트렸어요. 상두꾼들의 반전이었고 장례식 때의 흥이었고 망자를 편안하게 가게 하려는 마을 사람들의 정이었죠. 시방은 상여 맬 사람도 없고 요령잽이 할 선 소리꾼도 없고 해서 꽃상여 보기가 참 힘들어졌지만요.
아버님, 맨날 찍어 바르지도 않고 꾸미지도 않는다고 뭐라 하셨는디 시방 계셨으면 화장품 세트로 사달라고 조를 수 있을텐디요. 큰 시아주버님이 칠순이셨는디 보고 계셨는가요. 워메, 지도 오십이네요. 워찌까요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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