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60)/ 내가 내 멋에 사는 것, 꿈꾸는 것은 자유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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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60)/ 내가 내 멋에 사는 것, 꿈꾸는 것은 자유이리니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5.03.03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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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6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알렉산드로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은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먼 미래에 살고 있다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니
지나가 버린 것은 그리움이 되리라

앗따! 서울떽 시방 요방 저방 치우느라 정신없는디 지난주에는 친정엄마 방을 확 뜯었는디라. 뜬금없을지 몰라도 참말로 워치케 치워야 될지 모르는 포탄 같은 방이었걸랑요. 서울떽네 황홀농장 상자들이 그득 쌓여 있고, 25년간 모아둔 책들이  꽉꽉 눌러져 있는디다가, 울덜 식구 7명의 계절별 옷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디 워떠컸어라. 치운다고 혀도 티도 안나제. 손님들은 와 쌌제, 아조 가심 속에 화딱지처럼 들앉아 버린 바윗돌처럼 미쳐불겄드라구요. 근디, 설 끝나고 우리 큰 딸이랑 딸네미들이 세뱃돈으로 책장을 사서 책 정리를 하자고 얼굴만 이삔게 아니고 이삔 생각까정 내더라구요.

글다가 책장을 울덜 손으로 만들믄 훨씬 더 때깔도 나고 비용도 쬐까 들고 좋지 않겄냐고 말허는디 지 생각에도 또랑 치고 가재잡고 마당 쓸고 돈 줍고 아이고 겁나게 오져불겄더라구요. 안그요.잉!
모다 토요일 일요일 날은 딴디 안가고 항꾸네 집 치우기로 결의 혔지라. 단비아빠랑 한 형제만치로 지내는 팔덕 농기계 아저씨와 남편과 큰 딸이 목수일 하기로 하고 왼 방안에 껏들을 치우는 것은 힘 좋은 지랑 둘째 딸이 허고 셋째와 넷째는 집안일을 도맡음시롱 새참과 밥을 허기로 혔제라. 그 와중에 지는 부산에서 오신 관광객팀 모시고 장구목이랑 향가리랑 해설까정 혔응게 지 맴도 바빴겄제라.
와서 봉게 미닫이 식으로 책장을 짜 놨는디요. 참말로 오지고 겁나게 허벌나고 환장혀불게 멋져불더라구요.
중요헌것은 그 다음날 책 정리 때 였어요. 구석구석에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 써 놓았던 일기장에는 맨날 놀러갔다, 먹었다는 글들만 있어농게 깔깔깔 웃는라 정신 없었당께요. 막둥이가 쓴 가족신문에는 울 식구들은 먹을 때 참 화목하다고 쓰면서 삐지기 잘허는 누구누구 험서 성격을 평해 놓았고 상장들도 겁나게 많구요, 아이들 성적표도 나오고, 구림초등학교 아이들과 했던 독서논술 신문과 독후감들이 있는디 겁나게 웃기고 소중혀서 못 버리겠더라구요. 흐흐 시방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 아이들껀데 낸중에 울 집 놀러오면 비쳐줄라고 놔뒀어요. 큰 딸네미 초등 4학년때 만들어 준 문집도 나오고 구림면지 만들 때 썼던 초기 원고들부터 열린순창 기자 할 때 갖고 다니던 수첩들까지 많이도 모아놨던디. 정리도 못험서 왜 못 버렸나 몰라요. 그려도 워메 다아 추억이 되네요.
아조 그 와중에 찬물에 딱 세수한 것 같은 싱그러움을 느끼게 한 작은 노트가 있었는데 한번 봐주실라요. 공책 첫 부분에는 “참으로 못 생긴 과일 몇 알을 키우기 위해 모과나무는 얼마나 많은 것을 참고 견디고 이기며 살아왔는가를 생각합니다. 못생긴 열매 몇알에서 풍겨 나오는 짙은 삶의 향기, 사람의 마을에 가득합니다. -도종환의 [모과] 중에서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하하하, 또 하나 걸작은 제가 학원에서 첫 수업 하면서 만나 아그들에게 제 이름으로 삼행시를 자알 지으면 맛난 걸 사주겠다고 했거든요.
“황: 황후와 같은 우아하고 섹시한 뒷태, 호: 호빵보다 훨씬 쬐끄만 얼굴의 얼굴의 소유자, 양귀비와 클레오파트라의 영원한, 숙: 숙적, 영원한 20대 얼굴 황호숙 선생님(권00)”
“황: 황홀한 사랑 고백을 받아보고 싶다. 강천산 구장군 폭포수를 바라보며, 호: 호탕하게 떨어지는 저 폭포처럼 쏟아지는 미칠 것 같은 사랑, 숙: 숙성된 산삼 술에 취하면 또 어떠리 내가 내 멋에 사는 것, 꿈꾸는 것은 자유이리니(자작글)”
2007년 7월 16일 새벽 두시에 쓴 글에는 “언뜻 본 시계의 초침은 새벽 두시를 가리키고 뒤척뒤척 잠을 못 이루다 시아버님이 깰까봐 살짝 공책과 연필만 들고 병원 복도로 나왔다. 앞 침대 누워 계신 어르신 코고는 소리에 11시 되도록 잠 못 이루다가 겨우 잠들었더니 30분도 못되어 간호사 왈 “보호자님 내일 일어나자마자 런닝과 팬티 다 벗게 하셔야 합니다” 한다. 한밤중에 듣다보니 갑자기 울컥 무섬증이 나온다. 90세 노인넨데, 기력도 없으신데 버텨내실 수 있을까? 정말 이게 최선 일까 다른 방법은 없나? 그 다음 날 일기장 귀퉁이에는 “시루에 켜켜이 앉혀진 팥고물과 쌀가루처럼 그리움과 미움이 포개져 맛난 김 펄펄 나는 인생 시루떡으로 되나보다”라고 쓰여 있다.
2008년 5월 5일 아침 11시 24분에는 “산중턱에 오동나무 꽃피어 연두빛 속에 홀로 보랏빛으로 피어나니 마냥 설레네. 그대 보고픔도 늘 이렇거늘”이라고 써 있다. 으흠 누굴 요로코롬 그리워했을까? 마지막으로 6월 달에 고추밭 줄치다가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 웃으시라공 올릴께라잉!

 

고추 밭 줄 치는 중
마음 밭 풀 뽑는 중
먼산 밭 님 심는 중
내님 밭 날 모종 중
하? 뻘밭 뒹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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