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이에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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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15.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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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학 강사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대해 “보복의 대명사처럼 보이지만 실은 공감을 위한 언어다”고 강조한다. 그는 성서에 있는 구절을 소개한다. “사람이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상대에게 행할 것이니, 뼈를 부러뜨렸으면 상대의 뼈도 부러뜨려라,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레위기 24:17-20) “피해가 있었으면 생명에는 생명으로… 화상에는 화상으로, 상처에는 상처로, 구타에는 구타로”(출애굽기 21:22-25) “상대를 불쌍히 여기지 마라. 목숨에는 목숨, 손에는 손, 발에는 발”(신명기 19:21)
그는 “공통된 요지는 같은 상처 입히기, 인과응보의 소박한 형태”라며 “성서학자들은 ‘오른 뺨도 내주고… 속옷을 달라거든 겉옷도 내주고… 오리를 가자거든 십리를 가주고’(마태복음 5:38) 가 고상해 보이지만, 레위기의 율법이 더 공정하다고 해석한다”고 강조한다. “이 원칙은 ‘지나친 정의감’ 즉, 복수의 한계를 정한 것이다. 당한 것 이상으로 보복하려는 사태를 막기 위한 법이다. 받은 대로만 돌려주어야지 그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서의 원뜻은 정의 실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보복과 전쟁을 부추기는 잔인한 의미로 변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당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다. “감정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하지만 감정은 사람 사는 세상(삶)의 모든 지표다. 감정은 인지 작용이요 생각이다. 감정은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힘없는 자는 돌려주기는커녕 제 변명도 할 수 없는 억울한 지경에 처해도 돌파구가 없다. 그래서 더욱 수치스럽고 자기혐오까지 빠져든다. 자의식은 높으나 자존감은 낮고, 욕심은 끝이 없고, 노력은 엄두가 안 나고, 결국 자기 문제를 타인에게 모욕을 줌으로써 해소하려는 잘못된 구도에 파묻혀 헤어날 수 없다. 그래서 억울하다.
억울함은 분노를 불러온다. 세상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누구의 억울함인가, 정당한가를 확인해야 한다. 가해자의 피해의식이나 권력자의 분노는 규범이고, 약자의 억울한 감정만 분노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분노를 표출해도 되는지를 고민하는 사람은 대개 사회적 약자다. 강자는 이런 의문 자체가 없다. 자기 뜻은 분노가 아니라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진 자의 더 갖지 못해서 생긴 분함이 아니라면 모든 분노의 표현은 격려되어야 한다. 그 분노가 가진 자가 탐욕을 실현되는 것보다 훨씬 더 성숙한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권력은 다수의 억울한 마음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치유자를 자처하는 자들을 불러 모아 용서와 화해를 선전하며 강요한다. 고결한 가치처럼 위장한 가장 비열한 폭력인 용서와 화해를 앞세워 약자의 상처를 짓이긴다. 그 요구를 받지 않으면 미성숙한 인간으로 몰아붙인다. 강한 자는 우아한 성품이고 약자는 언제나 흥분하고 분노하며 행패를 일삼는다고 모략한다. “얼마나 분노했기에 비난받을 것이 뻔한 행동을 했을까?”는 생각조차도 않는다. 강한 자를 반대하고 강한 자에 대해 분노하면 묻지도 보지도 않고 탄압하고 격리한다. “내편 아니면 모두 없애라”
“미국이 하면 전쟁, 제3세계가 하면 테러”라는 인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그럼 테러가 정당하냐?”는 공격에 시달려야 한다. 테러냐 아니냐가 아니라 누구의 입장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따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는 약자를 위한 것이지만 행사하기 매우 힘든 권리다. 약자의 언어는 희미하거나 맥락없이 폭력적으로 보인다. 본디 표현의 자유는 지향이지 실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을 향한 풍자는 미학이지만 약자를 조롱하는 것은 폭력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권력인지 분별력과 상식을 갖고 있는가를 모두가 진실로 톺아봐야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러나 어차피 복수는 불가능한 것. 가해자는 다행이나 피해자는 억울하다. 피해자의 고통은 절대로 타인과 공유될 수 없다. 고통을 공감하는 최선의 방법은 똑같이 경험하는 것뿐이다. ‘세월호’는 한국 사회의 문제지만 그 고통은 ‘각자들’의 몫인 것처럼. 그렇다. 지금 거리의 여론을 바르게 반영하지 않고 정론에서 벗어나면 언론의 정체성은 물론 그토록 지키려고 피를 뿌려온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간성까지 훼손하는 독이 될 수 있다.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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