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18문학상(4-1)/ 아무도 없는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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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문학상(4-1)/ 아무도 없는 곳에
  • 김경숙 작가
  • 승인 2015.05.2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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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문학상 소설부문 수상작
김경숙(49) 적성 출신

2015 5ㆍ18문학상 소설부문 수상작 김경숙(49ㆍ적성 출신) 작가의 소설 ‘아무도 없는 곳에’를 4주에 걸쳐 연재한다. “체험이 녹아 있어 진솔하고, 오랜 습작으로 다듬어진 문장력도 나무랄 데가 없으며 무엇보다도 80년 오월의 기억에 사로잡힌 두 노인 캐릭터의 비극성이 끝내 잊혀지지 않아 오월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절감하게 하는 작품”이라는 그의 소설을 통해 잊혀져가는 광주의 기억을 붙잡는다. <편집자>

 

뼈대만 앙상한 집은 흉물스러웠다. 굶주린 개는 동냥 밥마저 먹을 수 없어 꿩을 잡기 위해 놓아둔 싸이나를 먹고 죽었다. 닭은 주둥이를 뾰족이 세우고 하루살이가 달라붙은 개의 내장을 쪼아 먹었다. 당산나무 아래에는 다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산책로를 내는 개울 길에는 인부들이 꽃과 초목을 심었다. 논 한가운데 들어선 아파트 건축물은 용도변경을 거쳐 가설공사가 일차 마무리되었다. 하천에선 굴착기와 포클레인이 질서 없이 움직였다. 현장사무소인 컨테이너 앞에는 트럭 한 대가 샷시와 합판 등을 실어 나르고 앙상하게 세워진 철 구조물에서는 쇠 파이프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담뱃가게에는 대낮인데도 등롱이 불이 켜진 채 걸려 있었다.

 

깜박 꿈을 꿨다. 산이 활활 타오르는 꿈이었다. 노파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간장과 된장이 담긴 장독 뚜껑 위에 빗물이 흥건했다. 추적추적 가을비는 일손을 붙들었다. 여름 가뭄 때 풀뿌리가 벋어져 맨흙을 보이던 개천에 개울물이 차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니 단단한 흙이 물찌똥 같네.”
노파는 혼잣말을 했다. 밭뙈기에 깨와 콩이 드러누워 있었다. 해 좋으면 들어내어 멀쩡한 것 반만이라도 가려내고 싶었다. 가을 추수에 약이라도 올리듯 추적추적 여러 날 가랑비가 내렸다.
“비라도 왔으니 그 불이 멈췄지.”
야속한 비지만 고마운 비라고 노파는 생각했다. 노파는 마루에 움츠리고 앉아 팔을 뻗어 비의 양을 손바닥의 감촉으로 가늠해 보았다. 다른 한 손은 엉덩이를 득득 긁어 댔다. 미역 가닥처럼 늘어진 빨래에선 곰팡내가 나고 비를 피해 들어온 날벌레들 때문에 물것이 생겨서 이곳저곳이 가려웠다. 마루 밑에서 개똥이가 풍기는 노린내는 눅눅한 습기와 섞여 역했다. 노파는 허리를 짚고 일어나 개울을 바라봤다. 잔돌이 보이던 얕은 개울물이 흙탕물로 변해 넘실거렸다. 물이 불기 전에 얼른 다녀와야 했다. 시내로 나가는 길에 버스정류장 담뱃가게 할머니도 들여다봐야겠다고 노파는 생각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누워 지낸지 여러 달이 되었지만 가보질 못했다. 어미 없는 간이를 돌보느라 시간이 나지 않아서였다. 간이 어미마저 집을 나가고 없자 혼자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아들 제사에 쓸 찰무리 떡을 시내 떡집에 맡겼다. 아들은 생전에 찰무리 떡을 좋아했다. 집에 불이 나지 않았더라면 직접 찰무리 떡을 시루에 쪘을 것이다. 찹쌀을 빻아 서리태콩, 대추, 밤, 단호박, 콩, 설탕을 넣고 버무린 후 견과류와 과일을 사이사이에 넣고 쌓은 다음 떡이 잘 익으면 참기름을 살짝 바르면 되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찰무리 떡을 아들은 앉은 자리에서 몇 개씩 먹곤 했었다. 찰무리 떡을 제삿상에 올린 지도 삼십오 년째다. 당산마을에 들어와 농사를 짓기 시작한 데는 손수 지은 농작물로 아들 제사음식을 차리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알곡만 보관해 둔 광이 불타버렸다. 불이 난 후 영감은 잠만 자고 있다. 이마가 불가마처럼 뜨겁다. 영감의 벌어진 입속에서 더운 입김이 새어나왔다. 간이는 영감 곁에 엎드려 몸을 굴리며 놀고 있었다. 노파는 간이 궁둥이를 토닥이고 나와 문구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문고리를 걸었다. 문이 잘 잠겼는지 흔들어 보았다. 안에서 잠긴 문이라 해도 영감이 일어나야만 열 수 있었다. 개울이 집 앞이라 간이의 안전을 위한 결정이었다. 노파는 문밖에서 다짐하듯 말했다.
“할미, 금방 갔다 올게.”
대가 구부러진 우산이 마루 밑에 구르고 있었다. 노파는 우산을 펼쳤다. 가는 쇠의 살이 구부러져 잘 펼쳐지지 않았다. 노파는 우산 작대기로 후리는 시늉을 하며 개똥이를 꾸짖었다. “저놈의 주둥이 때문에 성한 것 하나 없네.”
개똥이는 꼬리를 말고 자리를 옮겨 앉았다. 노파는 역한 냄새를 참느라 얼굴에 주름을 만들고 걸레로 우산의 먼지를 닦아냈다. 휘어진 우산 뼈대는 앙상한 노파의 등을 닮았다. 짱짱하게 펴서 제 모습을 갖춰보려 했지만, 이미 휘어버린 우산살은 도로 구부러졌다.

들어오는 승객이 없으면 마을버스는 들어오지 않았다. 빈 차로 왔다가 빈 차로 다니던 버스가 당산마을의 노인들이 하나둘 소천하고 없자 그마저도 오가지 않았다. 허탕을 치더라도 나가봐야 했다. 마을버스는 당산나무 다리에서 기다리면 됐다. 담뱃가게 할머니 가게가 그곳에 있다. 담뱃가게 할머니는 가게 안 쪽문을 활짝 열어놓고 편의점의 주인처럼 방 문턱에 걸터앉아 물건값을 받았다. 담뱃가게 할머니를 들여다보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다. 오랜만에 와서 금방 일어나면 서운해 할 것이다. 비도 온데다 아들 제삿날이라 바쁘다고 하면 되겠지만 아픈 사람을 두고 바로 일어나기가 쉽지 않을 일이었다. 마음이 조급하니 몸마저 허둥거려졌다. 그래서일까, 돌길은 미끈거렸고 진흙 길은 발을 잡고 늘어졌다. 억새는 젖은 옷을 스치며 난도질을 해댔다. 빗물이 머릿결에 젖어들어 이마를 타고 눈을 적셨다. 노파가 옷소매로 눈을 훔쳐 닦아내자 마치 빗물 때문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같이 진흙물을 일구며 버스가 다가와 멎었다. 노파는 발을 잦게 떼며 바쁘게 걸어 차에 올랐다. 버스에는 운전기사와 젊은 부부 승객이 타고 있었다. 텅 빈 버스 안에 한기가 감돌아 노파의 혀는 돌돌 말리고 턱이 부딪혔다. 옷에 젖어든 가랑비는 생각보다 찼다.

마을버스가 막 개울 다리를 지날 때 버스가 기우뚱했다. 다리 길이가 짧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왔기 때문에 빗물 탓이려니 생각했을 뿐인데 젊은 남자 승객이 기사에게 물었다. 
“아저씨, 버스가 다녀도 되는 다린가요?”
자세히 보니 본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당산마을에는 언제부턴가 낯선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다. 빈집을 헐고 새롭게 집을 꾸며 전에 살던 사람의 흔적은 물론이고 집이 몰라보게 변하여 그 허름했던 집이 그렇게 넓고 좋은 경치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 새삼 감탄하게 했다. 낯선 사람들은 먼발치에서만 바라볼 수 있었다. 농삿일은 하지 않았으나 늘 분주하게 오갔다. 집을 비우고 한동안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낯선 사람들은 누가 주인이고 누가 방문객인지 주말이면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밤이면 고기 굽는 냄새를 풍기다가 다음 날이면 빈집처럼 고요해졌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요.”
기사는 승객의 질문을 가볍게 받아넘기며 백미러를 통해 남자 승객을 바라봤다. 기사는 팔뚝에 안전이라는 안장을 차고 노란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남자 승객은 걱정된다는 표정을 거두지 못하고 재차 질문했다. 
“이 버스 무게가 얼마나 나갑니까?”
“글쎄요. 한 십 톤 남짓 나가지 않을까요?”
“상당한 무겐데요.”
기사는 조금 전 가볍게 대답하던 표정과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농촌의 현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다음 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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