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18문학상(4-2)/ 아무도 없는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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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문학상(4-2)/ 아무도 없는 곳에
  • 김경숙 작가
  • 승인 2015.06.0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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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247)에 이어>

“이처럼 백 미터가 되지 않는 작은 교량은 법정 도로로도 포함이 안 됩니다. 그래서 주민의 건의가 없으면 점검조차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또 주민이라 해봤자 노인들뿐이고 그나마도 남아 있는 분들이 없으니 시골 마을의 소하천 다리는 관리 사각지댑니다. 사고 위험을 안은 채 방치되고 있죠.”
“이 정도 물이 소하천이라뇨?”
“그러게 말입니다. 걱정되시면 직접 민원을 넣어 보시던가요?”
“저는 귀농인이라.”
“귀농인은 뭐 주민 아니고 손님인가요?”
습기 찬 유리창에 젊은 승객 부부의 모습이 비쳤다. 젊은 승객 부부는 간이 아비와 어미의 나이쯤 되어 보였다. 게으른 간이 아비는 간이 어미가 떠나자 번민하느라 심성조차 돌아앉아 있다가 말도 없이 시골을 떠났다.
어린 것도 자신의 처지가 슬펐던지 잠투정이 심했다. 영감은 오야 오야, 하며 간이를 끌어올려 안았다. 허깨비처럼 가벼운 간이를 영감은 요리조리 흔들었다. 간이는 영감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벗겨진 신발 한 짝은 아궁이 옆에 뒹굴고 다른 한 짝은 개똥이가 물어뜯고 있었다. 영감이 개똥이를 발로 슬쩍슬쩍 건드리며 넥, 하자 개똥이가 일어나 꼬리와 귀를 만 채 마루 밑으로 숨었다. 간이는 계속 잠투정을 했다.
“뭐 없어?”
영감은 역정 섞인 소리를 질렀다. 배가 고파 잠투정하는 것이니 먹을 것을 빨리 내오라는 다그침이었다.
“내 몸이 열 개요?”
마음과 달리 노파는 노파대로 역정 섞인 대답이 나왔다. 간이는 배만 부르면 종일 영감을 졸졸 따라다니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이것저것 만져대며 이것은 꽃, 저것은 나비, 하며 알려주지도 않은 이름을 용하게도 알아맞히곤 했다. 종일 볕에 놀던 간이는 숯검정이 된 손으로 눈을 비볐고 영감은 칭얼대는 간이의 등을 애정을 담아 쓸어주었다. 젖을 뗐다 하여도 엄마 젖이 그리운 나이였다. 노파가 뜨거운 전복죽을 내와 평상 위에 놓고 식힐 때 간이가 합지 꾸꾸, 하며 졸린 눈을 영감 가슴팍에 비비며 손가락으로 닭을 가리켰다. 닭은 발로 마당의 흙을 파헤치고 있었다. 영감은 구구, 하며 간이를 안고 닭에게 다가갔다. 간이가 신이 나서 손바닥을 마주치자 닭은 화들짝 놀라며 평상 위로 날아올랐다. 그것을 보고 개똥이가 마루 밑에서 급작스럽게 튀어나오자 닭이 놀라 꼬꼬댁 대며 퍼덕거렸다. 그 바람에 막 담아내온 전복죽이 엎질러지고 말았다. 노파는 오살 맞을 것들, 하며 새된 소리를 질렀다. 영감은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는지 괜스레 역정이 났다. 망할 할망구, 하며 영감은 눈까지 흘겼다. 가엾은 간이 기분 맞추려다 그런 것 가지고 욕까지 하다니. 영감은 넋이 나간 듯 있다가도 간이 일이라면 심기가 짱짱했다.
“뭐해?”
죽을 다시 끓여 내오라는 영감의 성화였다. 영감이 소리를 지르는 통해 간이는 놀라 영감 옷자락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자식 잡아먹은 아비가 뭘 잘했다고 큰소리요.”
노파도 질세라 대거리를 쳤다. 간이 아비가 집을 나갔기 때문에 노파의 속은 속이 아니었다. 영감은 엎어진 죽 그릇을 있는 힘껏 발로 찼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이제 제발 그 말만은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소, 라는 항변 같았다. 삼십 오년 동안 농사를 짓고 그 농작물로 죽은 아들의 제사를 지낼 때마다 한번도 빠지지 않고 들어왔던 말이었다.  
간이 아비가 집을 나간 날 산불이 났다. 쇠죽솥에 넣어둔 싸리나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싸리 대에서 톡톡 소리가 날 때마다 불꽃이 쇠죽솥 밖으로 튕겨 나왔다. 노파는 닭의 방정 때문에, 개똥이의 짖어대는 호들갑 때문에 자식을 죽인 영감을 원망하느라 불이 옮겨 붙고 있는 줄도 알지 못했다. 영감은 왜 자식을 죽여 놓고 넋이 나간 척만 하는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인지. 그렇다고 외면이 되는 것인지. 노파는 모든 것이 원망스러워 애먼 곳에 화풀이라도 하듯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개와 닭을 향해 던졌다. 개와 닭은 화들짝 놀라 달아나고 어디선가 나무 타는 향내가 진하게 났다. 쇠죽을 끓이던 아궁이의 불이 광 쪽으로 번지고 있는 것을 그때서야 알아챘다. 바람이 일자 불은 바람을 타고 잡풀이 무성한 뒤란으로 옮겨 붙었다.
“불, 불이야!”
다리가 후들거렸고 소리는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노파는 두 팔을 휘저었다. 영감은 몽유병 환자같이 뻣뻣하게 선 채 간이를 안고 있었다. 노파는 광으로 달려갔다. 허둥댈 뿐 고작 가지고 나온 것이라곤 깨와 콩 자루였다.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들고 나오다보니 보이는 것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불은 산꼭대기까지 타올랐다.
“엄마?”
간이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새어나왔다. 간이는 영감의 품에서 빠져나와 불꽃을 따라가려 했고 어미는 불꽃이 되어 꺼질 듯 필 듯 날았다. 어미는 잡힐 듯 멀어지고 멀어진 듯하다 다가왔다. 붉어질 대로 붉어진 산은 단풍잎이 불꽃인지 불꽃이 단풍잎인지 모르게 타올랐다.  “합지?” 꿈에서인지 현실에서인지 간이의 목소리를 듣고 노파는 자다가 깨여 일어난 사람처럼 정신이 들었다.
다행히 안채는 온전했다. 바람이 불길을 산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었다. 광은 숯검정이 된 채 형체만 남았다.
면사무소 직원이 다녀가고 군청 관계자가 다녀가고 산림관리 담당자가 다녀갔다. 영감은 기억을 잊어버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노파는 영감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왜 영감은 매번 기억을 잊어버린 표정만 짓고 있냐고. 기억을 잊어버린 것인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기억이 두려워 도망치는 것인지. 아들이 죽었을 때도 그러더니 지금도 그러냐고. 노파는 긴 호흡을 한숨처럼 내뱉고 개똥이와 놀고 있는 간이를 바라봤다. 간이는 막대기로 실개천 웅덩이를 파고 있었다. 실개천만 한 물줄기가 산을 타고 내려와 마당을 지나 논둑까지 이어진 도랑이었다. 간이의 얼굴에 햇살이 쏟아 붓고 있었다. 개똥이는 간이 곁에 달라붙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더운 혀로 간이의 발가락을 핥다가 허벅지를 핥았다. 간이는 간지러운지 개똥이를 밀쳤다. 개똥이는 더욱 드세게 얼굴까지 핥았다. 노파는 간이를 바라보며 근게, 하고 말을 시작했다. 말을 시작할 때마다 하는 노파의 버릇이었다. 노파는 말주변이 없는데다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때문에 무슨 말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가닥을 잡지 못했다.
“근게. 간이는 아비어미가 없는 내 칠대 독자요. 간이 아비는 육대 독자고 내 아들은 오대 독자요. 간이 아비는 내 손자고 간이는 내 증손자요. 간이 아비도 부모 없이 자랐소. 내 오대 독자가 죽고 없기 때문이요. 내 아들 오대 독자는 이십 오년 전에 죽었소.”

<다음호(249)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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