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시장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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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시장은 죽었다”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5.06.17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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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 타던 버스, 승객은 나 홀로…시장에는 상인 뿐

 

▲장날이면 북적이던 시장버스 터미널. 오가는 이 없이 파란 의자만 덩그러니 남았다. 메르스 여파로 전통시장마저 차갑게 얼어붙었다. 주민들이 감당해내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언론 확대 보도…순창 기피현상 불러 지역경제 마비
예상 못한 손해…사태원인은 국가, 책임은 누가 지나

“시장에서 20년 동안 장사했는데 이렇게 장사가 안 될 때가 없었어. 밖에서는 순창이 못갈 곳으로 소문이 나버렸으니…”
읍내 재래시장에서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흥수(68)씨는 시장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해 들렸다는 기자를 보고 대뜸 의자를 내놓고 하소연했다. ‘순창 메르스’가 여전히 인터넷 검색어 상위에 올라있는 원인에 언론의 무분별한 확대보도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메르스 환자가 순창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고 평택에서 감염됐지만 관리체계에 구멍이 생기면서 마을이 폐쇄되고, 언론의 선정 보도에 그대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순창을 기피해 지역경제가 얼어붙게 됐다는 것이다. 평소 같으면 장날 오후에 물건을 사러 나오는 주민들이 곳곳에서 보였지만 11일 장날은 달랐다. 시장에서 보이는 사람들은 상인뿐이었다.
순창이 얼어붙었다. 경기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어진 듯 보였다. 난전의 좌판, 어물전 생선, 행상의 트럭 모두에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 식당에는 상인 몇 명이 모여 힘없이 소주잔만 비울 뿐 국밥 손님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풍산면 대가리로 가는 군내버스에는 평소 10여명이 탔지만 이날 버스에는 승객이 단 한명 뿐이었다. 빈차로 오가는 버스도 있을 거라 예상이 어렵지 않았다. 이미 약속된 모임 때문에 읍에 나왔다는 허 모(73ㆍ풍산 죽전)씨는 “모임에서 이런 때 사람을 불렀다고 말들이 많았다. 읍에 나온 김에 시장에 들렸지, 모임이 아니면 안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에게 더 치명적이라는 말이 돌자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자녀들이 고향의 부모에게 가급적 사람 많은 시장에 가지 말라고 미리 단속을 했다는 말도 전한다.
이처럼 이동을 망설이는 주민들은 군내에도 상당히 많다. 상인도 마찬가지다. 이날 시장에는 트럭 행상을 하는 상인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박씨는 “곡성 옥과장에 다니는 사람 말하기를 그쪽 상인들이 웬만하면 순창은 가지 말라고 한다더라. (메르스가) 자기만 걸리면 괜찮은데 옮긴다고 하니까, 옆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이런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박씨와 함께 있던 다른 상인은 “장사도 안 되는데 오늘 가게 닫자”며 부인을 재촉했다. 이미 시장에는 닫힌 상점이 여럿 보였다. 평일만도 못한 장날이 된 것이다.
농민도 상인 못지않은 고통을 겪고 있다. 시장 도우미를 하고 있는 신현표(67ㆍ순창읍 남계)씨는 오디농사도 짓고 있다. 신씨는 “평소 같으면 하루 10킬로그램(kg)짜리 14상자를 파는데 요즘은 두 세 상자 밖에 찾는 사람이 없다. 오전에 딴 걸 얼려서 팔고 또 오후에 따서 냉동시켜야 하는데 재고가 넘쳐나고 있다. 창고에 오디가 가득하니 냉동성능도 떨어져 품질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군이나 농협에서 팔아주겠다고 연락 온 적 있는지 묻자 “팔아주겠다는 얘긴 아직 못 들었다. 그냥 둘 수 없으니 일단 따긴 해야 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시장에서 만난 이들의 말처럼 ‘순창산’의 위기는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다. 군에서 메르스가 발생한 것도 아니고 도시에서 옮아 살던 집에 잠시 머문 게 이처럼 엄청난 피해를 가져올 줄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다는 것이 공통된 시각이다. “농산물로는 메르스가 전염되지 않는다”며 장관이 나서서 순창농산물을 홍보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 군민들의 시름이 깊다. 박씨는 “생물은 그때그때 소비해야 한다. 생물을 사려고 시장에 오는데 지금은 오지 않는다. 방송에서 너무나 메르스 얘기만 하니 못갈 곳이 돼버렸다. 눈만 뜨면 메르스니 어지간히 해야 할 것 아닌가? 여기 사람들 모두 순창 것 먹고 산다. 그래도 지장 없다”며 재차 언론의 책임을 강조했다.
얼어붙은 지역경제가 언제쯤 회복될지에 대해서는 꽤 오래갈 거라는 예상뿐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오염 안 된 깨끗한 청정지역이 경쟁력이었던 군의 대외 인지도는 메르스와 함께 추락했다. 사태의 원인이 국가기관에 있지만 중앙정부가 지역경제까지 책임져줄 거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고통을 감당해내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들이 순창에서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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