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옥천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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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옥천의 얼
  • 양상화 이사장
  • 승인 2015.08.0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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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양상화 단군사상선양회 이사장

과거 없는 미래는 존재할 수가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기 위하여 존재하며 연결의 의무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 없는 민족은 지구 상에 존재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따라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현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순창의 과거를 알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 고장 순창의 과거는 오랜 옛날은 몰라도 유교문화의 전성기 조선조 500년 동안은 비록 산간벽촌이었지만 호남의 승지(勝地)였으며 인물의 고장으로 옥천의 얼을 이어온 이름 있는 고장이었다.
첫째 우리나라 18현인 중에 제일 선두자리를 차지한 고운 최치원 선생이 확실한 위치는 정확하지 못하지만 적성면 책여산에서 출생하여 태인 현감을 지냈다는 설화가 정확하다. 또 18현의 한 분이신 하서 김인후 선생은 출생지는 순창이 아니지만 옥과 현감의 자리에서 물러나 쌍치면 둔전리에서 훈몽재를 짓고 평생을 후학을 양성하신 현인이었다. 그 후손이 둔전리에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훈몽재가 복원되어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조선 숙종 26년(단기4033년) 적성면 괴정리에서 출생하여 세상에 영원한 혼을 남긴 도학자 백수(白水) 양응수(楊應秀) 선생은 아버지 양처기(楊處基)의 셋째 아들이기에 형들의 권유에 향시를 응시한 적이 있고 영조 때 호남의 어사 홍재(洪榟)의 천거로 정7품직 부솔(副率)직을 제수받았으나 사양하고 도암(陶庵) 이재(李梓) 선생의 문하에 들에 성리학을 전수받어 도학자로 풍산면 옥출산 밑에 강학당을 짓고 평생을 후학 교육에 전념하시다 생을 마쳤으나 도학자의 뒤가 이어지지 못하였음이 몹시 아쉬운 일이다. 또한 복흥면 조동(槽洞) 일명 하사리(下沙里)에서 태어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선생은 아버지 기재우와 어머니 안동 권씨 사이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세상 이치를 알았고 말을 하고 글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면 관계로 모든 것을 접고 8세 때에 군수 일행이 내장산을 올라가자 따라 올라가 어른들이 글을 읊은 것을 보고 저도 한 수 지어볼까요 하니 모두 승낙하여 지은 시를 적어본다.
“인지의 즐거움을 찾으려고 어린 나이에 저산을 올랐네 동맥이 중간에서 분산되어 수원들은 끝내 이어지는구려. 한참동안 난만한 단풍잎을 보고 있노라니 홀연히 국화가 타은 뜻이 피었구나 차라리 이내몸 수고롭힘보다 돌아가서 천성이나 기르리라.”
장로(長老)들이 그 시를 보고 놀랐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이 생이지지(生而知之)한 노사 선생이 순창에서 태어났으며 우리나라 6대 성리학자 중의 한분이시다. 참판직도 사양하시고 도학에 평생을 바치신 노사 선생이 18세 때에 양친 부모를 함께 여의고 “너는 순창 사람이지만 나는 장성사람이니 장성에 묻어달라”는 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장성에 장사하고 3년간의 시모살이를 하고 이곳저곳 아홉 군데로 이거하면서 순창과 거리가 생기었다. 따라서 순창 생가 부근에는 필자가 세운 유허비(遺墟碑) 하나뿐이니 안타깝다.
이토록 도학군자가 많이 나온 영지 순창 땅에서 공직생활을 영위한 사람들이 사무관 이상은 말할 것도 없고 6급 이상만 되면 정년퇴임과 같이 경향 각지로 떠나버리니 현직에서는 보신책으로 순창을 위하여 현신하지 못하고 퇴직금 싸 짊어지고 떠나버리는 현실을 보면서 몹시 안타깝다. 일시적으로 고향을 떠나 잘 살겠지만 나를 낳아준 순창에 보답은 고사하고 영원히 작별하니 그 후손들은 영원히 순창을 이별한 것이다. 물론 주거의 자유가 보장되어있는 나라에서 누가 무어라 하겠는가마는 영지 순창은 누가 지킬 것이며 필자와 같이 못난 사람만 남을 것 같지만 자연의 섭리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고향 땅 순창은 또다시 도덕군자가 출생하여 순창의 명성은 이어질 것이다. 출향민 여러분 경향 각지도 좋지만 후천이 시작되는 변혁기에 이토록 변하지만 순창의 명성은 영원할 것이며 다시 이어질 것이다. 순창을 위하고 자신들의 후손을 위하여 영생하지 않아도 하루 밤의 기를 받아도 조상과 후손은 이어진다. 늙은이의 망명된 소리가 여러분의 행운이 될 것이며 후손들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옥천의 얼을 되찾기 위하여 이와 같이 노력하고 순창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향리 주민에게도 출향동지 여러분의 각별 협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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