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75)/ 엄니들 수줍은 미소가 구절초마냥 이뻤당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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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75)/ 엄니들 수줍은 미소가 구절초마냥 이뻤당께요~!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5.10.14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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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75

내는 편지 한나도 못써 기냥 읽기만 허제
쓴다면 즈그 아부지헌테 쓰고자퍼.
죽어서도 당신 곁으로 가서
같이 살고 잡다고…
이 세상에서도
싸움 한번 안하고 같이 살았응께.
살아 돌아온다면 월매나 좋을까허고 말이여
시방이라도 손잡고 다님서 구경하고자퍼…
금강산도 갈려다 못 갔응께 가고 잡고,
옴서감서 맛난것도 다 사주고자.
그때는 맛난것도 없었잖여.
생각낭가 몰라?
새벽 5시에 오토바이 타고서
알밤장사 허러 다니면
무릎이 시리고 발등이 시려도 다녔거든.
좋은 옷도 없었잖여.
위에치 무스탕 하나만 겨우 사서 줬었는디
항상 맴에 걸려.
시방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한테 요구르트 하나도 못 사줬는디도
보고자퍼.
싸우고자 혀도 웃음이 나와서 못 싸웠어.
그때는.
기냥 내가 다~아 잘못했다고 혔응께.
오토바이 사고로
저 세상으로 가버린 것이 겁나게 원통허지.
시방이라도 살아 나와서
말 한자리라도 해줬으면 좋겠어.

-조분님 어머님의 편지

 

서울떽, 지난 토요일날 가을 소풍 갔다 왔구만요. 하이구메, 또 자랑질 치겄구먼 이라고 맴 먹으신다면 하하하 틀림 없제라. 잉! 부지깽이도 덤벙대고 죽은 송장도 꿈지럭댄다는 가실철이지만 놀 때는 놀 줄 알아야 허는 것이 농사꾼들의 철학 아니등가요.
아침 8시에 출발해서 도착한 축제장에는 왼산 허옇게 핀 구절초들로 옴짝달싹 못헐 지경인디요. 구절초 꽃말이 ‘어머니의 사랑’이라등만 시방 시상 엄니들이 모다 모여서 허벌나게 사랑들 나눠주는 건지 겁나게 훤해붑디다.
인계 세룡마을 엄니들과 구절초마냥 꺄르르 웃기도 허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구절초 옆으로 뽀짝뽀짝 다가가서 ‘김치’ 소리에 소녀들마냥 수줍은 미소도 지어붕게 아조 예뻤당께요.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파도 젊은 선상님들 눈치 봐감서 쉬셨던 엄니들 발바닥 아프실까봐 겁나게 따땃한 물에 족욕도 시켜 드림서 몰래 구절초 한 잎씩 따다가 넣어드렸제라. 지가 누구요. 폼에 살고 폼에 죽는 황홀한 서울떽 아니등가요 잉! 이장님이 사주신 뜨끈뜨끈헌 두부에 막걸리도 한 잔씩 걸치고 다슬기 탕에 겁나게 맛난 다슬기 초무침까정 먹고 세룡으로 오는 길 “학상들 시방 집에 가서 뭣들 하실껀가요” 물었더니 “워메! 할 일 투성이여. 들깨 밭으로도 달려가야 쓰고 마지막 알밤도 추슬러서 줏어야 쓰고 고구마도 들여다봐야 허고 쑤시밭에서도 얼릉 오라고 손짓하제. 하이고메! 나락도 벼야 써. 오살허게 헐일도 많응게 농삿일 헐 때는 내 몸이 세 개나 되면 좋겄당께!” 여기저기 홍길동으로 변신해서 요골짝 저골짝으로 깜냥깜냥 담박질 치실 엄니들이 그려지제라. 시방 엄니들 걱정 할 때가 아니고 서울떽도 헐일 투성인디 워쩌까라 잉!
위에 있는 편지글은 세룡마을 조분님 학상이 조근조근 말씀 하신 것 고대로 옮긴거구만요.  살아있는 사투리와 좋은 말도 겁나게 아귀 딱딱 맞아 떨어진 속담들과 노래들이 엄니들 돌아가심서 없어져 버릴텐디 워쩐다요. 기록해 놔야 쓴디라 잉!
분님 학상도 할아버지가 결혼하고 군대 갔을 때 편지를 보내오셨는디 가슴에 꼭 껴안고 속으로 우셨다네요. 글씨도 못 알아먹응게 누구헌테든 읽어는 달랬는디 조곤조곤 편지라도 써서 맴을 전달하고자픈디 못했던게 시방도 가슴이 아프시데요. 그래서 글을 알게 되니까 첫 번째로 젊어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소식을 전하고 싶으셨던 거지요. 이야기해줌서 눈물도 훔치시는데 보는 선상님들도 애잔해지더랑께요. 지난주 엠비씨 방송국 뉴스에 인계 세룡마을 이야기가 나왔는디 울 부녀회장님이 ‘시도 쓰고 보고 싶은 사람에게 편지도 쓰고 노래도 배우고 헝게 너무 좋다’고 하시더라구요. 아들딸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참말로 진국이제요. 보고프제요. 11월 7일날 우리 세룡 엄니들의 시와 편지 모으고 그동안 해 온 수업 사진들 걸어놓고 발표회도 할려구 헌당께요. 「똥자루 굴러간다」라는 책도 엄니들이 읽을꺼구요. 재밌겠제라. 놀러오씨요 잉.
수업 시작하기 전에 지난 주 내내 워떠케 사셨당가요 하고 물어보면 입에 착 착 달라붙는 입말들이 나오지요. 찰밥 묵드끼 맛나제요.

 

<6월 셋째주 엄니들 이야기>
“하이고메 겁나게 쪄불구만”
“초상 치르는 집이나 일 치르는 집들은 우짱가 몰라, 잉.”
“비 온다는 날 보담 오늘 같은 날이 더 심들어 죽겄당께.”
“들깨를 옮겨도 다 죽어불고, 참깨는 진즉 옴겼어도 고구마 순도 바짝 타 부런당께 죽겄구만.”
“내도 오늘 고추 줄치고 약허고 허느라 힘든디 비가 안 온게 뭐가 한나도 안 깨나.”
“아~땅을 파믄 촉촉한게 아니고 말라부러있어.”
“잎싹은 죽어도 뿌리는 상게, 기둘려 봐야제.”
“물 준놈은 소용없어 하늘에서 와야제 산당게.”
“밑에까정 내려가야 쓴디.”
“그랴서 옛날부터 뿌리깊은 나무는 가뭄 안탄다고 하잖여.”
“흐흐흐 세룡마을 울덜이 뿌리가 깊이 박혀서 요로코롬 잘 살고 있잖여, 안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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