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버들붕어 하킴(하늘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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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버들붕어 하킴(하늘지킴이)」
  • 박비읍 다정다감회
  • 승인 2015.10.1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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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윤규 / 그림 아이완

 

책을 펴면 작가의 말, 첫 문장은 ‘요즘 아이들은 상상할 수 있을까?’ 라고 묻는 말이다. 작가의 어린 시절 동네앞 개울과 논에는 온갖 물고기들이 살았다고 한다. 비가 오면 붕어와 잉어와 메기들이 물길을 타고 올라오면서 펄쩍펄쩍 뛰다가 길가로 올라오기도 했다고. 추수를 끝낸 가을 끝이나 겨울날, 삽으로 논바닥을 푹 파서 뒤집으면 겨울잠을 자던 미꾸라지들이 바글거렸다고 한다. 도대체 언제 적 이야기 일까? 요즘 아이들이 아닌 나도 솔직히 상상이 안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유년시절은 대한민국이 경제발전 부흥기를 지나 최고 정점을 찍게 되는 1980년대 중후반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배경이 된 시점이 아닐까.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환경이니 하는 것들은 아직 제 갈 길을 찾지 못하던 시절. 아니 무시되고 짓밟혀진 시절.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말이다. 4대강 사업이니 뭐니 해서 훨씬 더 조직적이고 규모가 커진 환경 파괴사업이 이어지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어쨌든 시작은 이 때부터이지 않았을까?
다시 작가의 말 ‘놀랍게도 인체와 지구는 매우 비슷한 구조로 되어있다. 오대양 육대주처럼 오장육부가 있고, 산맥처럼 뼈가 있고, 토지처럼 살집이 있고, 풀과 나무처럼 털과 머리카락이 있다. 그러니 지구의 강은 인체의 핏줄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인체도 지구처럼 약 70%가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인체가 지구의 축소판이라면,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우리 몸 각 부분의 세포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세포는 신경망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연락하며 공생한다.’ 조물주는 자기를 닮은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했는데 지구 역시 그랬나 보다. 그렇게 깊은 뜻으로 만들어진 신의 작품이다. 인간의 핏줄로 빗대어 지는 지구의 강. 그 강 속에 사는 온갖 물고기들. 정확히 말하면 민물고기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민물고기들은 자기 삶의 터전과 종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외래종 ‘베스’와 ‘블루길’에 맞서 힘겹게 싸운다. 그들의 치열한 생존기가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그러다 주인공 ‘하킴’이 말한다. “언제나 사람이 문제였다. 침입치를 들여오고, 무지개 연못에 불을 지르고, 물을 오염시켜 기형 물고기를 태어나게 한 것도 모두 사람의 짓이라니. 사람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괴물이야!(114쪽)”

뜨끔했다. 물고기한테 한 소리 듣는 기분이다. 모든 생명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모든 생명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그런 것들에 마음을 둔 적이 있었을까. 이름 없는 연못의 잔챙이 한 마리도 평화롭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이 책이 그런 질문을 내게 던져주었다.
책에서 내가 특히나 놀란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이렇게나 많은 민물고기가 있었나 하는 것  과 그들이 가진 고유하고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이었다. 버들붕어, 쉬리, 금강모치, 가시버시, 미유기, 어름치, 얼룩동사리, 자가사리, 동자개, 갈겨니, 각시붕어, 꾸꾸리…. 반면 토종어류를 멸종시키는 외래종인 베스, 블루길. 이름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확연한 차이. 나는 이쯤에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땐 그다지 읽고 싶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로 ‘버들붕어 하킴’이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하킴’의 낯선 어감. 그것이 ‘하늘 지킴이’ 라는 예쁜 의미의 약자라는 것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작정하고 우리말을 고집한다는 생각이 든다.
‘밀감 빛으로 물들어 가는 수평선이 서쪽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192쪽)’라는 표현은 약간 억지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우리는 석양을 묘사할 때 ‘오렌지 빛’이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어른인 나에게는 적어도 그렇다는 것이다. 강이 오염된 것처럼 오염된 우리말에 익숙해져 버린 세대라는 어설픈 변명이 통할까 싶지만. 이 밖에도 ‘여울’, ‘~치’, ‘은빛햇살’, ‘날개바람’, ‘으뜸싸움치’, ‘외톨박이’, ‘해돋이여울’, ‘무지개여울’, ‘나비꼴’, ‘맛대매’, ‘눈불개’, ‘뱃구레’, ‘매조지’ 등 어떤 것은 우리말 사전을 찾아 봐야만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는 단어들도 많이 나온다. 민물고기들이 자기의 터전을, 씨알(작가의 표현대로 하자면)을 지키고자 노력한 것처럼 순수한 우리말을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작가의 소망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무엇보다 나는 이런 부분이 좋았다. 이 책이 생태동화, 혹은 환경동화로 더 주목받고 있지만 이러한 부분을 놓치면 안 될 것 같다. 토종어류를 지키는 것만큼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는 것 또한 어른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미 생태동화의 고전이다. 출간 이래 어린이 책 분야이든 환경 책 분야이든 각종 상도 많이 받은 모양이다. 1998년도에 첫 발행된 책이니 출간 20년을 바라보고 있는 동화이다. 그 사이 출판사가 바뀌어 「푸른숲주니어」에서 다시 나온 이 책은 그림도 훨씬 화려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아이들이 혹하게 생겼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종족보전이나 세상을 구한다느니 하는 거대한 명분아래 싸움이나 전투 장면이 많이 나오는 그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 시기가 있다. 그 주인공이 자기 또래이거나 동물 등이 나오면 더 감정몰입이 되나보다. 적어도 초등학교 4학년, 우리 집 꼬맹이는 그렇다.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한 번 같이 읽어 보길 강력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이 동화에 나오는 바다거북의 입을 빌려 ‘모든 생명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이어 생각하면 ‘나는 지구라는 몸뚱이 속에 있는 하나의 세포이다. 좋은 세포가 될 것인가. 나쁜 세포가 될 것인가.’ 나는 좋은 세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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