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수준이 곧 정권의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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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수준이 곧 정권의 수준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5.11.26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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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민중총궐기 당시의 일이다. 자가용을 가지고 서울로 가던 기자 일행과 군에서 버스를 이용해 올라가던 참가자들이 우연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났다. 대개 상경집회를 하러 가는 군민들은 정해져있어서 얼굴을 많이 아는데 이날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보였다.
휴게소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경찰이 휴게소 출입도로에 배치된 것이 그렇고 ‘정읍시농민회 50호’ 문구를 단 버스도 보였다. 집회 참가자나 경찰 모두 각오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올라가는 길에 보인 버스 가운데 절반 이상은 민중총궐기에 참가하는 차량이었다. 억눌린 민심이 요동치고 있었다.
농민대회가 열리는 삼성본관 앞을 가니 적성면 사람들이 이미 와있었다. 농민집회가 노동자집회와 다른 것이 참가자 표정에서 느껴지는 온화함이었다. 매년 닥치는 자연재해를 수십 년 동안 순응하고 극복했던 사람들인데다 아무리 급박해도 돌아갈 여유를 잃지 않는 사람이 농민이었다. 하지만 기저에 있는 정권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누구보다도 큰 사람들 또한 농민이었다. 닭 머리 허수아비를 태우고 상여를 매는 것, 이것은 정권퇴진을 의미했다. 참아오다 안되니까 마지못해 퇴진구호를 외쳤다.
시위행렬은 광화문광장까지 가지 못하고 멀리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막혔다. 멀리 있는데도 매캐함이 느껴지고 기침이 났다. 캡사이신과 최루액 섞인 물대포가 무기하나 들지 않은 군중을 위협하는 모습에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기막혀했다. 시민들과 취재진은 물론 군대에서나 볼법한 화생방 마스크를 쓰고 방송을 했던 외신기자들도 물대포를 직접 맞았다.
그날 밤,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다. 중앙대 68학번으로 앞장서 유신철폐를 외쳤고 계엄령 위반으로 징역살이도 했다. 죄를 인정하는 꼴이라며 항소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 결기가 느껴진다. 보성군농민회를 일군 일등공신이자 한결같이 농민임을 고집했던 그는 농민들의 분노를 말하고자 차벽으로 갔다. 그리고 살인무기에 쓰러졌다.
살인무기는 멈추지 않았다. 경찰은 심지어 환자를 태우려는 구급차에도 물대포를 쐈다. 이 모습에 분개한 한 의대생은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받아야 할 환자와 의료인을 공격하는 것은 전쟁터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라며 분연히 일어날 것을 촉구했다.
정권은 폭력집단이 폭력시위를 벌였다며 테러집단을 운운하고는 책임을 묻겠다고 으름장 놓고 있다. 경찰의 수준은 정권의 수준을 대변한다. 지난 십수 년 동안 다녔던 집회현장을 상기하니 정권이 폭력적이면 대응도 진압도 폭력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보태자면 이 기간 동안 못사는 사람은 더 많아졌고 사회는 냉소적이게 됐다. 일어설 의지를 상실한 채 분노만 하는 분위기 속에서 연대와 정이 사라진 자리는 분열로 채워졌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모이자고, 박차고 나온 것이 민중총궐기였다.
이경해 열사가 생각난다. 쌀을 지키기 위해 자결했던 그의 바람은 12년이 지난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같은 사람이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생각에 문득 두렵다. 백남기씨가 그의 길을 가지 않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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