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리퀘스트와 이웃돕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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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리퀘스트와 이웃돕기 사이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5.12.1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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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에게 연말은 두 가지 느낌으로 다가온다. 일을 중심으로 보자면 신문 한 번 내다보면 일주일 한 달이 금방 지나가니 연말이라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일정은 없다. 건조하게 말하자면 크리스마스와 신정은 으레 성당과 금산에 가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일거리’ 중 하나다.
두 번째 느낌은 기삿거리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이웃돕기 소식이 유난히 많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면서 연말이 왔음을 느낀다. 이때가 되면 사람들이 1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웃돕기와 관련해 하나 떠오르는 단어가 있으니 ‘복지’다.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1997년부터 무려 17년 동안 방송돼오다 작년 이맘때 폐지됐다. 챙겨보는 방송은 아니었지만 가끔 방송에서 들려주는 사연에 가슴이 뭉클했던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방송이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구체적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국가 복지정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나름의 관점을 가지기 시작한 순간부터다. ‘왜 저 사람들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방송에서 도우려고 하는 거지?’라는 물음은 곧 ‘저 방송은 국가 복지정책의 허점을 노출하는 방송’이라는 시선으로 연결됐고 공영방송이 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하기 시작하면서는 ‘눈물팔이 방송’이라는 결론도 내렸다.
사랑의 리퀘스트의 의도는 간단하다. 소외된 이웃을 우리가 살펴주자는 것. 그래서 시청자들의 참여로 모금된 돈을 방송 당사자의 형편을 극복하는데 쓰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최대한의 많은 감성을 짜내야 모금액도 커진다는 사실이다. 국가 복지정책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시청자의 돈으로 메우자고, 나아가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우리 손으로 해결하자는 것을 공영방송이 부추기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기자는 묻고 싶다. 방송이 이어진 17년 동안 국가 복지정책상 사각지대를 없애려는 노력은 얼마나 했는지, 극소수의 사연을 내보내고 해결하는 것이 국가가 복지의무를 다했다고 자평하려는 시도는 아닌지 묻고 싶다. 도시와 농촌 가리지 않고 아이를 낳으면 돈을 준다는 지자체의 출산정책은 나라가 아이 낳고 살만한 곳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부양의무가 있는 자녀가 소득이 있음에도 부모를 돌보지 않아 기초수급을 받을 수 없다는 노인의 사연은 전국 어디서나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수년째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아 복지단체의 손길이 미치게 되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라고 봐야 한다.
이웃돕기 소식을 전하는 내내 이 고민은 깊어졌다. 이웃을 챙기는 이웃들의 노력과, 자원봉사자의 수고는 칭송받아야 함이 맞다. 그런데 이들이 하고 있는 역할 중 상당수는 국가가 책임지지 않으려는 시도들에서 기인하니 박수만 치기도 어렵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이찬진 변호사)는 지난 10월 14일 ‘2016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안) 분석보고서’를 발표하고 빈곤극복의지가 없다고 평가했다. 노인인구의 증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장애인 복지도 축소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아직까지는 딱한 사정에 놓인 이웃을 우리 손으로 돕는 것이 필요한 상황인데 언제쯤 국가가 온전히 보호해 줄지는 모르겠다.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말이나 안 들으면 다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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