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존중의 나라를 만들자는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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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존중의 나라를 만들자는 외침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6.01.14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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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은 악몽으로 기억된다. 세월호가 가라앉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줬던 방송은 끝내 ‘전원구조’ 자막을 내지 않았다. 사고 초기에 ‘전원구조’ 했다고 한 게 아니라니 다시 그 단어 하나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밤낮으로 텔레비전 앞을 지켰다.
텔레비전을 끄고 컴퓨터를 켠 것은 녹음기 틀어댄 마냥 같은 내용 반복재생하는 것을 보고, 터무니없이 잘못된 정부 발표에 매달리는 모습과 보험금 운운하는 것에 신물이 나서였다. 솔직히 말하지만 잠수사 투입과정의 논란과 다이빙벨 투입을 해경이 막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구조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가능성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은 ‘나쁜나라’에서 통하지 않았다. 해경은 처음부터 구조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
가슴 깊숙이 멍울이 졌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준다는 신념을 무너뜨린데 대해 화가 났고 팽목항은 우리에게 아픔이자 다짐의 장소가 됐다.
작년 2월 14일 그 팽목항을 처음 갔다. 세월호 가족들이 안산에서 출발해 20일간의 여정을 거친 도보행진이 끝나는 날이었다. 무거운 마음 때문인지 꽤나 힘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자동차로 한참 걸려 닿는 그 길을 가족들과 시민들은 걸어서 왔다. 팽목항은 방파제에 나부끼는 노란리본부터 애도의 손길이 곳곳에 스며있었다.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실종자에 대한 ‘돌아오라’는 외침도 있었다. 분향소에서 헌화를 하고 노란리본을 받는데 설움이 밀려왔다.
그날 저녁 팽목항 문화제에 생존학생들이 왔다. 죄 지은 것도 없는데 살아남은 것이 고통스러운 이들이었다. 위로하고 싶어도 얼굴을 차마 마주할 수 없었다. 학생에서 청년으로, 기성세대화 되어가는 우리는 저 학생들에게 친구를 잃지 않도록 해줄 사회적 책무가 있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책임감은 이후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의 활동을 지지하고 조금이나마 돕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나쁜나라’ 상영회에 유가족들이 왔다. 
유가족들은 고맙다고 했고 아프다고 했고 후회한다고 했다. 유가족들의 고맙다는 말은 연대, 의지를 관통한다. 아프지만 반가웠고 후회하지만 희망을 봤다. 기자는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연대의 힘이 유가족과 함께 하는 시민들에게 생겼다고 생각한다. “정부에서는 우리가 이렇게 오래 버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유가족의 말을 통해 올해 활동들도 가열차게 진행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외침들은 가족을 넘어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자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세월호를 잊지 말고 “생명 존중의 나라를 만들자”는 ‘ㅇㅇ엄마’들이 독려하는 모습에 간담회 장소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감명 받았을 거라 믿는다.
기자의 차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의 차에 붙어있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리본 스티커를 보곤 한다. 뗄 날이 언제가 될지 생각해봤는데 아마 세월호 선체 인양과 진상규명 등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 후에도 붙어있을 것 같다. 망각과 외면의 역사를 후대에 되물림하지 말자는 일종의 채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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