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복동상/ 사윗감으로 딱이야
상태바
탄복동상/ 사윗감으로 딱이야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7.01.18 16: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坦 평평할 탄 腹 배 복 東 동녘 동 床 침대 상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145

방현령(房玄齡)이 정리한 《진서ㆍ왕희지전(晉書ㆍ王羲之傳)》에 나온다. 유일인동상탄복식, 독약불문, 감왈, 차왕가서(惟一人東床坦腹食, 獨若不聞, 鑒曰, 此王佳壻) : ‘유일하게 한 아이만이 동쪽 침대에서 배를 내놓은 채로 음식을 먹으며 홀로 자기 일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치감이 ‘그 아이가 제일의 사윗감이다’고 말했다.
중학교 시절, 한 예쁜 여학생이 버스에 오르면 남학생들이 그의 옆에 가까이 있어보려고 자리 쟁탈전을 벌였다. 다들 보다 멋져 보이려고 하복 상의를 뻣뻣이 다려 입고 머리도 좀 길게 보이려 하고 운동화도 새것으로 신고 다니려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앞만 보고 무덤덤하게 서 있으니 남학생들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애를 태웠다.
내가 40대 후반이 되었을 때, 서울에서 평범한 한 주부가 되어 있던 그녀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때 그 많은 남학생들 중 누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가?”
“글쎄,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책이나 보던 애는 아니꼽게 보이고, 멋지게 차려 입고 나를 가까이 하려는 애는 날라리 같았지. 다만 멀찍이 서서 안 보는 것 같긴 한데 느낌으로는 나를 보는 것 같은 애가 지금도 생각이 나더라.”
“그게 누구였지?”
동진(東晋, 317-420)시대 원제(元帝) 때에 태위 치감에게 딸이 하나 있었다. 아름답고 지혜가 있으며 재능이 많아 태위는 딸에게 딸의 재능에 맞는 좋은 신랑감을 찾아 주려고 했으나 한동안 적당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태위가 문득 왕(王)씨 집안에 많은 자제들이 있다는 것이 생각나 알아보니 하나같이 재능이 많은 자제들인지라 누구를 지목해야 할지 난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 제자를 왕씨 집에 보내 어떤 자제가 신랑감으로 좋을지 알아보게 하였다.
그 제자가 왕씨 집에 가서 가장인 왕돈(王敦)에게 찾아오게 된 사정을 얘기하자 그 제자를 이끌고 곁채로 가서 아이들을 보도록 하였다. 왕씨 자제들은 태위가 사람을 보내 사윗감을 찾는다는 얘기를 들었는지 모두 긴장하여 허세를 부리느라 다소 부자연스런 태도들을 나타냈다. 다만 한 아이만이 동쪽에 있는 침대에서 배를 드러내 놓고 음식을 먹으며 누가 왔는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유유자적하는 모습이었다.
제자가 돌아와 태위에게 그가 본 것을 일일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보고했다. 태위가 듣고 매우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일부러 꾸미지도 않아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더라 이거지? 그래, 동쪽 침대에서 배를 내 놓고 있었다던 그 자가 바로 내가 마음속으로 찾던 사윗감일세.”
마침내 태위 치감은 딸의 배필을 그 아이로 정하였다. 그가 바로 중국 동진(東晋)사람으로서 해서(楷書)·초서(草書)·행서(行書)등 대표적으로 꼽는 서체를 완성하여 서성(書聖)으로 불리게 된 왕희지(王羲之)이다.
왕희지는 원래 글을 잘 쓰는 사람으로 유명하였지만 팔의 힘도 강해 글을 쓸 때 필력(筆力)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이 입목삼분(立木三分)이라는 성어를 만들었다.
하루는 친구 집에 갔다가 친구가 없어 그의 서재에 들어가 탁자에 몇 자를 써 주고 나왔다. 나중에 친구가 와서 보고 탁자의 글자를 닦아 내려 했으나 잘 지워지지 않았다고 한다.
또 당(唐)나라 때 장회관(張懷瓘)이 지은 《書斷(서단)》에 의하면, 조정에서 제사를 모시기 위해 왕희지에게 목판에 축사를 쓰게 하고 목공에게 글을 새기게 하였는데, 목공이 보니 그의 필력이 넘쳐 먹물의 흔적이 나무속에 세치나 스며있어 놀랐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 왕희지에게 목판에 축사를 쓰게 하였는데 한 신하가 축사의 일부 내용을 바꾸려고 원래 써진 글을 닦아 내려 했는데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왕희지가 쓴 글의 먹물이 목판의 세치나 깊이 스며들어가 있어 모두 놀라워 마지않았다고 한다. 필력이나 문장이 힘찬 것을 뜻하는 이 성어는 훗날 어떤 사람의 견해와 이론이 날카롭고 예리한 경우, 또는 깊이 있는 분석과 생동감 넘치는 묘사를 비유하는데 사용하였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순창 농부]농사짓고 요리하는 이경아 농부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이러다 실내수영장 예약 운영 될라”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