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이서구 선생의 비기(秘記)를 연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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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이서구 선생의 비기(秘記)를 연재하며
  • 양상화 이사장
  • 승인 2017.03.0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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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양상화 단군사상선양회 이사장
순창 고을과 인과로 한국의 후천과 우주변화 예언한 이서구 선생

필자가 선생의 비기를 기고하게 된 연유를 밝히지 않으면 독자 여러분의 오해가 있고 <열린순창>에도 영향이 있을까봐 기고한 동기를 밝히고자 한다.
필자가 1991년도부터 7년간 전주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강의할 때 있었던 일이다. 안형채라는 원생이 “전주시 완산구 중인동에 사시는 박 노인이 교수님을 한 번 뵈옵자고 합니다”라고 말하기에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하기에 원생과 동행해 찾아가봤다. 그는 당시 93세의 노인으로 밀성 박 씨라고 하시면서 선대에서 이곳에 와서 세거한 지가 300여년 됐다며 선대 때는 후손들에게 말하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들어줬는데 세상이 변해 내 자식이 오형제인데 말하여도 시행하지 않으니 양 선생에게 말하면 시행하고 후대까지 전할 것 같아 불렀다고 했다. 그는 전라감사였던 이서구 감사의 비기가 모악산에 안장되어있다고 선대에서 부터 전해오나 지금까지 찾지 못했으니 꼭 찾아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전들 어르신들께서 못 찾으신 비기를 찾는다는 보장은 없으나 노력해보겠다고 대답했다. 그 후 제자 몇 사람과 십 여 차례 모악산을 탐방하였으나 찾지 못하고 그 이듬해 봄에 박 노인이 별세하셔서 조문을 가서 자손들을 만나게 됐다. 이서구 비기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말을 들었기에 국립도서관에서 찾아본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필자가 지리설을 공부한 자로써 우리나라 지맥을 기록하기 위해 ‘산지조종은 골륜산으로 입어동해하여 생 백두산하고 백두산이 생 금강산하여 일만이천봉야라 하였고 금강산이 생 모악산하였다’는 중국 주장춘의 기록을 보고 제자 십 명과 백두산을 다녀왔고 금강산을 가기 위해 신청하던 중 금강산행이 중단되며 가지 못했다. 호남정맥 가운데 무주군 추풍면 금척동을 답산하면서 한인천황께서 자미원에서 가져오셨다고 하는 천부경과 금척을 조사해보니 세계 중 고구려 고주몽과 발해국 대조영이 가지고 있던 것은 백두산 촉발 때 없어지고 백제 온조대왕이 가지고 온 것은 삼국통일 때 의자왕으로 부터 회수했다. 훗날 당나라에서 요구할 것을 걱정해 경주의 산에 묻었기에 그곳을 금척동이라고 지금까지 부르고 있다. 따라서 모든 선현들의 예언서에 후천에는 금척이 아니고 극척지형의 지기에 의해 만사형통된다고 하였기에 경주 금척동과 추풍면 금척동, 또 한 곳이 어디냐고 하였더니 이서구 선생의 비기에 회문산이란 기록으로 순창군 회문산 금척봉을 찾은 것이다. 이처럼 순창과 이서구 선생과 특별한 인과를 찾게 되어 그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여 남기고자 하니 독자 여러분과 순창 군민들의 이해를 구하고저 이 사실을 기고한다.
이서구 선생의 약력과 순창고을 과의 인과를 밝혀보면, 이서구(李書九) 선생은 단기 4087년(서기 1754) 조선조 영조 30년에 출생했으며 본관이 전주 이씨로 자는 낙서(洛書)이며 호는 척제(惕齊) 강산(薑山) 소완정(素玩亭)으로 아버지는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綠大夫) 영의정을 증직받은 이원(李    )이며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로 부사 사관(思觀)의 딸이다. 불행히도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외지에서 자라 12살 때 아버지에게 와서 십년을 약속하고 입산하여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9년 만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십년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 물어 “더 배울 것이 없어서 왔습니다”고 했다. “그러면 과거를 보아라” 하여 21살 때 문과에 합격하여 우의정까지 지냈고 조선 후기 사가시인으로 자연학까지 통달하였지만, 전라감사로 부임하여 보니 일년 간 공부를 안 한 것이 천문을 모르는 것을 깨달아 천문공부를 시작하니 지리와 연관됨을 깨달았다.
따라서 천문의 자미원, 천시원, 태비원, 소미원 4성과 28숙 ‘각항저방심미기두우여허위심벽규류위모필자삼’의 28성이 지구의 360°를 완전히 장악하고 자연섭리와 결합해 길흉화복을 좌지우지함을 알게 되어 그 원리를 찾기 위해 순창을 자주 왔기에 지금의 순창읍 남계리 정마트 앞 도로변에 이서구 감사 유허비가 서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지형 상에 용이 가장 중요한데 다섯 동물 즉 사(蛇), 이, 봉(鳳), 거북(龜), 관전이 61 변하여야 용이 되는 것을 알고 지형상 관전이 순창에 다섯 곳에 있으며 회문산에 관전도수(渡水)가 화룡하여 후천한국 뿐만 아니라 우주의 축으로 우주변화의 원리를 알게 되면서 모든 것을 통령하였기에 그 사실을 비기로 남겼으니 순창골과는 특별한 인연일 뿐 아니라 우주의 원리를 통달한 것이 순창 회문산 이기에 기뻐하였고 비기를 남긴 것도 순창 회문산에서 시작됐다. 따라서 우주변화를 통령한 것을 후세에 전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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