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시’와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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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시’와 ‘하녀’
  • 김민성 기자
  • 승인 2010.07.2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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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이창동 감독의 다섯 번째 영화로 세상의 추악함을 알게 된 주인공 미자가 한 편의 시를 완성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한 소녀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이 사고는 자신의 행동이 큰 잘못임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의 무책임한 행동이 시초가 된 일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 중 한 명이 바로 미자의 손자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손자가 저지른 일을 믿지 못한다. 아니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에게 추악함을 들이민다. 그건 바로 소녀의 죽음보다 자신의 아들들의 미래가 더 중요해 사건을 빨리 덮어버리려는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3천만 원으로 소녀의 죽음을 지워내려는 이들의 행동은 그녀에게 온도계가 ‘펑’ 하고 깨질 것 같은 세상의 차가움을 전한다.
이처럼 미자는 자신을 휘감는 세상의 어두운 모습에 점점 힘이 빠진다. 그동안 시상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던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시를 완성해 나간다. 미자는 소녀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손자를 통해, 자신이 돌보는 중풍 노인을 통해, 시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시로 옮긴다. 영화 속에서 그녀가 시를 쓰는 과정은 고통 그 자체다. 하지만 미자는 그 고통을 감내하고 시를 완성하기 위해 애쓴다. 이는 인간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도리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같다. 비를 맞으며 소녀가 몸을 던졌던 다리에 앉아 애도를 하고, 죽은 소녀의 엄마에게 차마 합의를 보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며, 자신의 손자의 앞날을 걱정하면서도 죗값에 대한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 미자의 모습은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몸짓이다. 더불어 아무도 행하지 않고, 쓰지 않는 외롭고도 아름다운 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소녀와 오버랩 되는 장면과 함께 2시간을 단 몇 줄의 시로 응축한 감독의 연출력은 미자의 시를 더욱더 가슴 와 닿게 한다.

<하녀>는 故김기영 감독의 1960년 동명작품에서 시작된 영화로 임상수 감독에 의해 원작의 기본 골격만 유지했을 뿐, 대부분이 새롭게 리메이크된 작품이다. 원작의 매혹적인 하녀가 백치미 넘치는 하녀 은이로 옷을 갈아입었고, 여성들에게 휘둘리던 나약한 주인은 자본주의의 특혜를 입은 나쁜 남자 훈으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서 주도권은 하녀에서 주인에게로 역전됐다.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자근자근 씹던 원작의 칼날은 1퍼센트의 가진 자들에게 방향을 틀었다.
이혼 후 식당 일을 하면서도 해맑게 살아가던 은이, 유아교육과를 다닌 이력으로 자신에게는 까마득하게 높은 상류층 대저택의 하녀로 들어간다. 완벽해 보이는 주인집 남자 훈, 쌍둥이를 임신 중인 세련된 안주인 해라, 자신을 엄마처럼 따르는 여섯 살 난 나미, 그리고 집안일을 총괄하는 나이든 하녀 병식과의 생활은 낯설지만 즐겁다.
어느 날, 주인 집 가족의 별장 여행에 동행하게 된 은이는 자신의 방에 찾아온 훈의 은밀한 유혹에 이끌려 육체적인 관계를 맺게 되고 본능적인 행복을 느낀다. 이후에도 은이와 훈은 해라의 눈을 피해 격렬한 관계를 이어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병식이 그들의 비밀스런 사이를 눈치 채면서 평온하던 대저택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1차적으로 포착되는 하녀는 은이와 훈의 집안일을 오래 총괄해 온 늙은 하녀 병식이지만, 훈에게 거머리처럼 붙어있는 어린 아내 해라와 장모도 하녀이긴 마찬가지다. 이는 섹스에서도 드러난다. 아내와 섹스 하는 훈의 모습은 사랑을 나누는 자의 몸짓이 아니라, 무언가를 굴복시키려는 포획자의 다름 아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충족시키고자, 임신 중인데도 고군분투한다. 영화에서 그녀가 하는 임산부 운동이 아이가 아니라, 남편을 위한 운동으로 읽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이가 하녀처럼 구는 이 상황에서 하녀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가장 오래 하녀로 산 병식이다. 그녀는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을 내 보이는 자다. 은이가 몸으로 자신을 항변할 때, 해라가 남편의 외도를 알면서도 눈을 질끈 감고 모른 척 할 때, 장모가 사위의 독설 앞에서도 비굴하게 조아릴 때, 늙은 하녀만은 “지금 이게 뭐 하는 짓들이냐!”고 훈계를 한다. 관객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준다. 옳은 척 하지만, 그녀야말로 상류층에 기생해서 가장 성공한 자다. 훈에게 붙었다가, 해라에게 붙었다가, 급기야 힘없는 은이에게도 붙는다. 은이에게 뜯어먹을 건, 양심. 그녀는 은이를 두둔하며 자신의 죄악을 씻으려 한다. 아마, 관객들이 병식에게 가장 큰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면, 이는 오늘 날 우리의 내면이 병식과 가장 닮았기 때문일 거다. 임상수 감독은 <바람난 가족> 때가 차라리 훨씬 좋았다는 생각이다. 개운하지 않았던 <하녀>를 보면서 씁쓸함이 더 해지는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은 지난 24일 제63회 칸 국제영화제 폐막식 및 경쟁부문 시상식에서 ‘시’로 각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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