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서(2)/ 사랑하고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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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서(2)/ 사랑하고 있었습니까?
  • 선산곡
  • 승인 2017.03.2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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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인의 문자를 받았다. 그 동안은 차명이었다는 고백과 함께 실명전화를 마련했다는 그의 메시지, ‘앞으로 이 번호로 전화해 주세요’였다. 내게만 따로 보낸 것은 아니었겠지. 한꺼번에 알리는 문자의 순기능이 분명했다. 그에게 대중 속 한 사람이 돼버린 내 존재를 생각했다. 나는 잊혀 졌는가.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는가. 아니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 사람을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습니까?”
만약, 훗날 누군가가 그렇게 묻는다면 그는 아니라고 대답하겠지. 아마 그럴 것으로 믿는다. 사랑, 그 깊이 없이 간단하게 치렀던 몇 번의 교감. 감출 수 없는 치명적인 본능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미 깨닫고 있으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공교롭게 나도 전화기를 바꾸게 되었다. 따라서 20년 동안 사용했던 번호도 바뀌었다. 그 동안 스마트하다는 대중적인 진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핀잔도 들었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 아날로그 옛 전화기에 수록된 번호들은 스마트 폰이라 불리는 새것에 통째 옮겨지지 않았다.
비로소 옛 전화기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름들을 꼼꼼히 살피게 되었다. 낯선 이름 이름도 더러 있었지만 그 중에 지워야할 사람의 이름도 있었다. 내 이웃으로 그 동안 쌓인 사랑과 우정이라는 관계가 사연 지닌 이유 때문에 이제는 지워질 이름이 된 것이다. 그와 나, 이제는 공유의 관계는 끝났다. 그렇게 돼버리다니. 그렇게 끝나버리다니.
누구에겐가 나도 잊힌 사람이며 지워진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이웃을 잊고, 지우며 사는 이유가 있듯이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 맞다. 맞는 말이다. 생각하다가, 머뭇거리다가 드디어 ‘삭제‘의 부분에 손가락을 가볍게 찍는다. 이제 그 사람의 이름과 번호는 지워졌다. 가벼운 터치 하나로 지워져버리는 그 사람의 모든 것.
누군가 나지막하게, 나지막하게 내게 묻는 소리가 들린다.
“그 사람을 당신은 사랑하고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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