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서(3)/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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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서(3)/ 커피
  • 선산곡
  • 승인 2017.04.1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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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 승용차 하나가 저만치 가다가 멈춰 섰다. 길 가장자리로 천천히 옮겨 세우더니 사람 하나 내려선다. 잠시 쉬고 싶어서겠지,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무심히 흘려본다. 삼십대 초반의 젊은 청년이었다.
“실례해도 될까요?”
내 곁으로 오자 그가 걸어온 말이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눈에 띄어 멈춰 섰다는 그가 계면쩍게 이어 하는 말은 ‘깔때기가 보여서요’ 였다. 이 자리에 차를 세우고 커피 잔을 든 채 먼 산야를 훑어보는 것은 퇴근길 여유 있는 시간이면 해온 일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차를 멈춰 세웠다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한잔 끓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의 말에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갑자기 따뜻한 마음이 되어 나는 정성들여 여과지를 접었고, 커피를 새로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 악마처럼, 천사처럼, 뜨거우면서 부드러운 커피는 혼자라도 도도히, 여럿이면 백작처럼 품위 있게 마시는 거란다. 구태여 더 수식할 말이 필요 없는 커피의 정의를 평소 나는 즐겨해 왔다. 커피를 다 마신 그가 정중한 인사를 하고 떠났고 그가 탄 차의 동그라미 네 개의 마크가 작아지는 것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꽤 오래 전의 일이었다.
나이 들어 퇴화하는 신체기능에 기피해야할 여럿 목록 중 커피가 들어있었다. 커피 끊기를 강조했던 의사의 진단에 놀라 ‘작별, 커피’란 글도 썼다. 그러나 그렇게 전송했던 커피와의 작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커피란 내게 정신의 비타민이며, 마시는 동안만큼은 짧지만 긴 휴식의 압축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래서 작별 취소.
TV 드라마에서 한 탤런트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그때 내게 커피 한 잔 얻어 마시고 간 그 사람이 분명했다. 그가 탄 차의 네 개의 동그라미가 ‘아우디’라는 외제차 로고였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지만 한때 무명이었던 탤런트가 내가 가진 여유의 공간에 잠시 머물러 있다 간 기억. 그가 원했던 커피 한잔과 내가 권한 커피 한잔이 이렇게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할 줄은 미처 몰랐던 일이었다. 그런 일들 때문에 끊기 힘든 이 기호의 집착은 사실 핑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죽어야 하나, 아니면 커피를 마셔야 하나.”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의 고민이었다. 그가 심각하게 생각했던 죽음을 같은 무게로 상쇄시킬 수 있었던 것은 한 잔의 커피, 검은 물이었다. 카뮈와는 다르지만 나도 커피를 마시고 싶은 간절함이 가끔 통증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내 커피는 진하게 타라!’
한 시인의 외침이었다. 그렇다. 악마가 문 밖에 와 있더라도 커피는 진하게 마셔야한다. 자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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