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서(4)/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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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서(4)/ 화양연화
  • 선산곡
  • 승인 2017.04.2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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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花樣年華)

모 수필가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음악이 흘러나왔다. ‘키사스’는 ‘아마도’라는 스페인 말이지만 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에서 ‘나킹 콜’의 버전으로 흘렀던 기억이 난다. 공교롭지만 지금 내 휴대전화기에 울리는 음악도 화양연화다. 물론 ‘키사스’가 아닌 첼리스트 ‘요요마’가 연주하는 영화 주제음악. 왕가위가 감독하고 장만옥과 양조위가 열연했던 홍콩영화다.
초등학교 때 친구 하나는 십여 년 전부터 휴대전화기에 ‘진도 아리랑’이 흘렀다. 삼년 만에 번호를 누른 적이 있었는데 여전히 흘러나오는 게 그 남도민요가락이었다. 절대 바꾸지 않은 그의 끈기가 국악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오히려 고마웠다. 환갑의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간 시인 박종수 형의 전화에서는 안숙선이 부른 ‘쑥대머리’가 흘러나왔었는데.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에 대한 배려로 선택한 음악이니 그 사람의 취향이 드러난다. 발신신호 기계음보다 음악으로나마 짧은 대기시간의 여유를 즐기게 한다는 것은 전화를 거는 사람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다.
반대로 내가 전화를 받을 때 울리는 음악은 처음엔 ‘카니발의 아침’이었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죠빈’, ‘루이스 본파’가 연주한 영화 ‘흑인 올훼‘의 주제곡이었다.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를 각색한, 브라질 축제의 강렬함이 전개되는 영화였다. ’마리사 산니아‘도 ’존 바에스‘도 우리나라의 ’조수미‘ 외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주제곡을 불렀지만 내 전화기에서는 처음부터 영화의 주제곡 '아스트루스 질레트' 버전이었다. 
그렇게 10년 동안 사용했던 ‘카니발의 아침’도 ‘마리사 강변의 추억(라 마리자)’으로 바뀌었다. 프랑스의 국민가수 ‘실비 바르땅’이 불렀던 샹송이다. 원래 불가리아 출신이었던 그가 어렸을 때 프랑스로 망명한 아버지를 따라 파리에서 성장한 뒤 고향의 강 ‘마리사’를 그리워하며 불렀다는 노래다. 그가 강을 추억하며 불렀던 노래를 나는 십대 때 즐겨들었고 말 그대로 지금은 내 추억의 강 저편에서도 흐르는 음악이 되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그 선율도 또 주기를 채웠다. 그리고 이제 새로 선택한 것이 그 ‘화양연화’다. 인생의 꽃처럼 한때 좋았던 시절이라는 뜻이 이젠 이 나이에 어울린다는 뜻이었는지 모른다.
낮은 첼로의 선율이 화양(花樣)의 화려함과는 대조되어 오히려 비장하다. 세월이 흐르면 비장함도 나이와 한패가 된다. 한때의 열정도 사라지고 이제는 조용히 지난날을 돌아보며 멈추어 선 자리. 나는 이제 저잣거리가 아닌 인적 드문 언덕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차성(茶聖)으로 유명한 중국 남송 시인 ‘육유(陸游)’의 탄식과는 별반 다르지 않은, 화양연화의 뜻을 조용히 되새기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憑欄歎息無人會 (빙난탄식무인회) 난간에 기대어 사람 없음을 탄식하노니
三十年前宴海雲 (삼십년전연해운) 삼십 년 전 연회에는 (사람이) 바다의 구름 같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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