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민족사와 선ㆍ후천을 정확히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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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민족사와 선ㆍ후천을 정확히 찾자
  • 양상화 이사장
  • 승인 2017.05.0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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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화 단군사상선양회 이사장

역사는 강자의 변이란 말이 있듯이 우리나라 역사를 왜놈들이 강점하였을 때 신라 박혁거세를 우리 역사의 시발로 기록한 조선사편찬위원회의 주장이 사실화 되어버린 불운을 겪고 있으나 그때 편찬위원의 한 사람이던 이병도 박사는 천추만대에 악명으로 남을 것이다. 이 박사의 가르침을 받았던 서울대 사학과 출신 사학자 및 정치지도자들은 스승인 이병도의 위서 논란을 뒤엎지 못했다. 민족사를 망쳐놓은 사회각계의 지도자들이 저승에 가서 선현들을 어떻게 알현할지 모르겠다.
필자는 비록 전문교육은 못 받았지만 우리 역사를 읽어보면서 한탄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단고기가 위서(儰書)라는 선객자들을 원망하면서도 힘이 없는 졸부이기에 소리 없는 통곡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떠나야하는 시점에서 사실이나 적어두고, 고향 순창의 후학들에게라도 가슴에 매쳤던 사실을 적어 보고자 필을 들었다.
첫째, 한단고기가 위서가 아니라는 증거를 적고자 한다.
한단고기에 오성취루(五星聚婁)라는 기록이 있다. 오성은 금목수화토의 다섯별이 서쪽에 있는 루(婁)라고 하는 별로 모였다는 말이다. 이것이 기원전(BC) 1733년의 일이다. 이것을 서울대학교 천문학박사 박창범 교수가 약 8개월의 오차가 있어 영국천문대에 확인하였든 바 그 정도의 오차는 오차가 아니라 하였다. 그렇다면 한단고기는 정서(正書)라는 증거였는데 우리나라 정치지도자 학자들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또한 단군조선 16대 위나(慰那) 임금께서 수도를 영고탑(寧古塔)으로 옮기고 오십여 제후들을 영고탑으로 불러 회의를 마치고 귀하 등이 다스리는 나라는 무고하느냐고 물으니 모두 말하기를 우수 풍족하여 농사가 잘되어 별고 없다고 대답하였는데 기왕(杞王)만 하늘이 기울어질까 걱정이라고 대답하였다. 그 후 다음 임검 종년(從年) 때에 지이숙(支離叔)이란 분이 태양력(太陽曆)을 만들어 바쳤다고 기록되어있다. 이때는 태음력이었으니 지구가 서쪽으로 23.5도 기울어졌다는 말이다. 그 때가 단기 723년이니 그 이전이 선천이고 그 후부터 지금까지가 현천(現天)이고 이서구 선생의 비기대로 신유(申酉)년부터 후천이며 성경의 예언도 2016~2017년이 한국 사람에게 중요한 때라고 하였으니 후천이 아닌가 한다. 후천에는 백제 역사가 복원되고 호남이 반조정이 된다고 하니 순창의 후손들을 위하여 현재를 사는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하여보자. 이서구 선생이 후천이라고 하는데 선ㆍ후천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알고 후천의 순창을 논하여야 할 것이기에 선ㆍ후천을 갈려보고자 한다. 지구의 일륜(一輪)은 12만9600년이라고 한다. 따라서 일세(一世)가 3600년으로 삼세가 일륜으로 선천, 현천, 후천이 1만800년이고 10새이니까 10만8000년이고 나머지 2만1600년이 빙하기(氷下期)라고 한다. 따라서 후천 3600년이 지금부터이므로 앞으로 3600년 동안 순창이 지구의 축이 되어 백제역사가 복원되고 호남이 반조정이 될 것이라 하니 순창이 유불선이 통합되어 사람의 도(道)를 찾아가는 성지가 될 것이니 순창군민의 후예들의 바른 길(道)이 열리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후천에 순창발전의 예언서
이서구 선생의 예언서 이전부터 현천에 순창에 살기 좋은 곳을 말하기를 일 남산 이 귀미 삼 고래 갑동이라 하였다. 따라서 첫째 남산대에서는 신말주 귀래공, 전서신공제 이제공, 여암 신경준의 새거지로 유명한 곳이다. 귀미는 대제학 양이시, 제학공 양수생의 후예로 350여 호가 남원양씨 단일본 가족마을이었다. 세번째는 고례 갑동으로 현천 동안 이어왔으나 벌써 후천이 되기 전에 제일이라고 하는 남산대나 귀미마을도 태촌이 되어가고 있으며 고례나 갑동은 거의 태촌이 되어버렸으니 후천에는 어찌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후천에는 일 평창 이는 바우게 삼은 연산이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구전설화로 전하여오고 있다. 첫째 평창은 팔덕면 장안리를 평창이라고 하였는데 백제 때부터 부자마을이고 백제 오방성 중 남방성으로 현재는 금성산성이라 하지만 백제 때에는 남방성으로 중요한 위치였으며 동쪽으로 동문지가 있어 이곳을 지키는 장군의 묘가 평창마을 뒤쪽에 장군묘라고 전하는 묘가 있으나 비석이 없어져 백제 어느 장군의 묘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필자가 20여 년 전에 팔덕면 장안리 사람들의 협조를 받아 묘지를 사초하면서 찾아보았으나 역사적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일본인들이 흔적 있는 것은 모두 가져갔다고 하는 구전만 전하여오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 좋은 터는 구림면 율북리에 있는 바우개라고 하는 농경지인데 바우개가 아니고 배우계로써 이곳은 사방에서 전부 올라오는 곳이다. 임실군 덕치면에 서있는 성미산에서 능선으로 이어져 높고 인계면 장례동에서도 올라오고 쌍암리 쪽에서 올라오고 구림면 오룡리 쪽으로도 올라오는 지형 상으로 배우계라는 말이 오랫동안 전해오면서 바우개로 변음되었으나 필자가 지리학적 견해로 보면 박주 형상으로 정방하여 있는 형상이다. 따라서 이서구 선생의 예언서에 남조선 배 띄워라 하는 것이 이곳이 후천에 유불선이 합해져서 후천 3600년의 성지가 될 것이라는 예언일 것이라 믿어진다. 따라서 지구 정립이 될 때에 북극, 남극의 얼음이 녹아서 태평양 적도 선상에 복부비만형상을 하고 있는 태평양의 물이 지구 정립 때에 평행을 이루어질 때에 낮은 곳으로 들어오는 물 형상으로 박주(정박한 배)가 행주형상으로 바뀌어 성지가 될 것이라는 예언일 것이다. 따라서 이태에는 순창의 낮은 곳은 물이 되고 회문산 지역인 구림면과 팔덕면 광덕산 부근의 평창이 명승지로 변할 것이라는 예언으로 믿어진다. 따라서 이태리 로마처럼 순창은 한국의 성지가 된다는 예언이라 확신하면서 순창군민의 각별한 주의와 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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