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보물여행(17) 귀래정에 올라 호연지기를 가슴에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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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보물여행(17) 귀래정에 올라 호연지기를 가슴에 품다
  • 황호숙 해설사
  • 승인 2017.05.1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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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순창보물여행’

 

▲십로계첩. 신말주 선생이 십로계에 관한 사항을 정리한 것으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42호로 지정되어 있다.

바람 불자 기러기 서둘러 백사장에 돌아오고
(風驅歸上落平沙, 풍구귀상락평사)
물결 위에 노을이 비치며 황혼이 깊어지네
(水色波光薄暮多, 수색파광박모다)
혹 잠재운 용의 문양을 이 경치에 비긴다면
(若使龍眠模比景, 약사룡면모비경)
저 어부의 피리소리는 어디에나 비길까
(基如漁笛數聲何, 기여어적수성하)

 

지난 글에서는 설씨. 신씨 세거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드렸으니 오늘은 작은 오솔길을 따라 귀래정에 올라가서 멋스러운 풍류를 즐겨볼까요?
옛날부터 순창 사람들에게 귀래정은 친숙하게 올라가서 쉬었다 올수 있는 편안한 휴식처이자 소풍 장소였지요. 그런데도 의외로 안 가보신 분들도 많더라고요.
바람이 불어오는 귀래정에 올라가면 순창읍이 두루두루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 보입니다. 뒤꼍에서 바라보는 세거지의 모습은 한겨울 눈 오는 날에는 절경이 되지요, 설씨부인과 신말주 선생이 시와 그림을 이야기하며 박달나무와 대나무 사이를 도란도란 걸었을 풍경이 떠오릅니다. 가는 길에는 아름드리 상수리나무가 호위병처럼 서있는데 나무 밑 둥에 옴팍하니 구멍들이 나있지요. 왜 그랬는지 수수께끼로 낼 테니 어여쁜 해설사 만나면 답을 주세요.
순창을 호남의 승지로 논과 밭이 기름지고 새와 고기가 많을 뿐 아니라 산과 강의 즐거움이 있다고 칭송했던 서거정은 <귀래정기>에서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내 일찍 들으니, 순창의 남쪽에 있는 산들은 중첩하고 산세는 매우 기위(寄偉)하여 꿈틀꿈틀 하고 낮게 돌아서 혹은 용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범이 뛰는 것 같기도 하며, 혹은 굽히고 혹은 일어나며 혹은 내려앉아 동봉(東峯)이 되었는데 봉우리의 꼭대기는 땅이 아주 평탄한지라. 후(신말주 선생을 일컬음)가 여기에 서너 칸을 지으니, 정자의 좌우에 만죽(萬竹) 단란(檀欒)이 울창하여 사시절 어느 때나,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달이 뜨나 눈이 오나, 모두 아름다워서 그 아름다운 경치가 하나둘로 말할 수 없다. (중략) 광덕산(廣德山)의 산과 물은 용이 서린 듯 뱀이 또아리를 튼 듯이 봉우리 아래로 감고 돌아 적수(磧水)와 합하니, 그 물이 맑고 깨끗하여 희롱할 만하고 거울삼아 비칠 수도 있고, 촌락과 들판은 백 리가 시원스레 보이는데, 누런 밭둑과 푸른 논이 멀리 가까이 아련히 보이고, 밭가는 자ㆍ소먹이는 자ㆍ나무하는 자ㆍ물고기 잡는 자ㆍ사냥하는 자들이 서로 노래로 화답하며, 행락객ㆍ나그네ㆍ소와 말이 끊임없이 오고가는 것을 또한 앉아서 구경할 수가 있다. 후가 날마다 건(巾)을 쓰고 짚신을 신고 그 가운데서 읊조리어, 그 즐거움이 유유작작 하였다.”

햇빛도 화창하고 바람도 건들건들하게 부는 날 귀래정에 올라와서 막걸리 한잔과 함께 마음 맞는 지인들과 삼행시도 지어보고 옛 선비들을 불러내서 이야기도 듣고 싶어지지 않나요.
매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과 문화유산 답사를 하면서 삼행시를 짓게 합니다. 귀래정에 걸터앉거나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친구들이 운에 맞추어 아주 기발한 삼행시들이 읊어집니다. 2주전에는 청소년센타 ‘초롱비’ 친구들과 답사를 했는데 아주 재미있었지요. 여러분도 한번 해보시지 않겠어요!
귀 : 귀래정에 귀한 사람들과 올라와서 풍경을 둘러보니
래 : 내 마음 가는 대로 시 한수 짓고 싶구나!
정 : 정 주고 가는 인생, 실컷 한바탕 웃어보세
신말주의 호가 귀래정이고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처향인 순창에 내려왔다고 지난 호에서 말씀드렸지요. 하지만 세조와 형 신숙주의 요청에 관직에 올라갔다, 내렸다를 반복합니다. 그러다가 1499년 70세 이상 되는 노인 10명과 ‘십노계(十老契)’를 만듭니다. “우주의 역사 속에서 서로가 같은 한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다행이 아닐 수 없을 것이오. 그런데 서로 고향이 같다는 것은 같은 시대에 태어난 데다 또 태어난 나라가 같고 거기에 또 태어난 고을이 같다는 것이니 이보다 더 큰 다행이 어디에 있겠소. 옛사람들이 고향을 중히 여긴 이유가 이런데 있소.” 인연의 소중함을 역설하지요. 이 ‘십노계’를 만든 계기와 취지 규약들을 서문에 작성하고 10명을 한 장에 한 명씩 그리고 그 그림 위에 그 사람의 성격이나 사상, 생활방식 등을 4행시로 읊었답니다. 마음이 맞는 노인들이 귀래정에 모여서 시도 한 수씩 읊고, 조촐한 술자리를 만들어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 되살려야 될 귀중한 문화라고 봅니다. 이중 한 첩이 남아있는데 김홍도라는 걸출한 화가가 이것을 모사하여 호암미술관에 소장 되어 있어서 다행인데요. 신말주의 시 한수 읊는 걸로 귀래정에서의 여유로움을 끝낼까 합니다.
바람 불자 기러기 서둘러 백사장에 돌아오고(風驅歸上落平沙) 물결 위에 노을이 비치며 황혼이 깊어지네 (水色波光薄暮多) 혹 잠재운 용의 문양을 이 경치에 비긴다면 (若使龍眠模比景) 저 어부의 피리소리는 어디에나 비길까 (基如漁笛數聲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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