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 같으면 카네이션과 선물상자를 들고 교실마다 교사와 학생들이 떠들썩한 이벤트를 벌였겠지만, 이날 학생들은 사생대회장에서 깨알 같은 글씨로 선생님에게 감사의 손편지를 쓰는 것으로 대신했다. 숭례중 등 다수의 인근 학교 학생들도 이날 올림픽공원에 대거 몰렸다. 학생이나 학부형이 교사들에게 주는 선물이 사실상 전면 금지된 상황에서 등교 대신 스승과 제자가 만날 수 있는 대안을 택한 것이다.”
“학교 정문에 오늘 ‘학부형 방문 금지’라는 문구가 걸린다고 한다. 학생들이 스승의 날에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을 주어도 안 된다고 한다. 어떤 학교는 차라리 스승의 날에 휴교를 한다고도 한다.”
“옛날 스승의 날에 한 학부형이 유정란이라며 달걀 두 알을 까만 비닐에 넣어주신 적이 있어요.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죠. 요새는 꽃 한 송이도 받아서는 안돼요. ‘청탁금지법(김영란법)’ 때문에 스승의 날이 괜히 불편한 날이 될 수도 있지만 저희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이번 스승의 날엔 본교 선생님들과 영화를 보며 저희끼리 작은 축제를 열 예정이에요.”
위 문장들은 전부 김영란법 시행 이후 지난 15일, 스승의 날의 풍속도를 전하는 기사의 일부다. 예문에서는 ‘학부모’ 대신 ‘학부형’이라 썼는데 모두 ‘학부모’로 고쳐 써야 맞다. 예전엔 ‘학부모’ 대신 ‘학부형’이란 표현을 많이 썼다. 둘 다 학생의 보호자를 일컫는 말이지만 그 대상엔 차이가 있다. 학부형(學父兄)은 ‘학생의 아버지나 형’, 학부모(學父母)는 ‘학생의 아버지나 어머니’라는 뜻이다.
옛날엔 집안일은 어머니가 돌보고 자식의 학교 방문 등 바깥일은 아버지나 아버지를 대신해 나이 차가 나는 손위 남자 형제가 챙겼다. 다시 말해 과거 가부장적 세태를 반영한 말이 ‘학부형’이며 이 말 속에 아버지와 형만 있을 뿐 ‘어머니’는 없다. 아버지 대신 형은 보호자가 될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보호자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학부모’가 훨씬 더 널리 쓰이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돼 어머니의 역할이 제자리를 잡으면서 이제 ‘학부형’은 지난 시절의 용어가 됐다.
아직도 더러 ‘학부형’이라 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를 ‘아버지와 형만 있을 뿐 어머니는 없다’ 뜻으로 생각한다기보다 ‘학생의 보호자’란 의미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학부형’을 못 쓸 이유도 없지만, 이 용어에서 아버지와 형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으므로 의미에 맞게 구분해 사용하는 게 좋다. 특히 학생의 보호자인 어머니 스스로가 “이제 나도 학부형이에요”라거나 학생의 어머니에게 “내일 학부형 모임에서 봬요”라는 표현은 되도록 삼가는 것이 좋겠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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