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고심장/ 재능을 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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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고심장/ 재능을 숨기고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7.05.1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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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을ㆍ어질 량 良 장사꾼 고 賈 깊을 심 深 감출 장 藏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153

주중대사관에 근무할 때 L모 국회의원을 모시고 섬서성에 있는 한 사과주스공장을 시찰한 일이 있었다. 서안 비행장에 도착하였을 때 영접을 나온 사람의 명함을 받아보니 그야말로 휘황찬란했다. 공장에 가는 반시간 동안 자기가 과거에 뭘 잘했다는 자랑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떠들어 대는 바람에 통역하던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공장에 도착하자 회사 사장이 직접 문을 열고 우리를 영접하였다. 그의 명함이 이외로 간단했다. 면담하는 동안 그는 요점 위주로 말하였고 매우 겸손한 태도를 보여줬다.
나중에 사장의 측근을 통해 알아보니, 처음 안내한 사람이 현(縣)정부에서 부현장을 지낸 사람으로 사장이 관계(官界)와의 관계를 감안하여 영입한 상임고문이었다. 사장은 베이징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로 지내다가 국내에서 창업한 사람이었다. 능력이 많으면서도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고문이란 자의 언행으로 인해 오히려 사장이 더 돋보여지고 직원들의 존경을 더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공자가 주나라(周 BC11세기-BC771)에 가서 노자(老子)에게 예(禮)를 물으니 노자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흠모하는 옛날의 성인도 그 몸은커녕 뼈까지 썩어 빠져서 지금은 덧없이 그 말만이 남아 있을 뿐이오. 아무튼 군자란 때를 만나게 되면 수레를 타는 귀한 몸이 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하잘 것 없는 몸이 되오. 훌륭한 장사치는 물건을 깊이 간직하여 밖에서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양고심장), 군자는 훌륭한 덕을 몸속 깊이 간직하여 외모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는 말을 들었소이다. 당신의 고만(高慢)함과 다욕(多欲)함과 산만한 생각은 모두 버리시오. 그것들은 당신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는 것이오.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단지 이것뿐이오.”
공자는 돌아가서 제자들에게 말했다.
“새가 잘 날고, 물고기라면 잘 헤엄치며, 짐승이라면 잘 달린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달리는 것은 그물을 쳐서 잡고, 헤엄치는 것은 실을 담가 낚고, 나는 것은 주살을 가지고 맞춰서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나 용에 이르러서는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른다고 하니 나로서는 그 실체를 알 길이 없다. 오늘 나는 노자를 만났는데 마치 용 같다고나 할까, 전혀 잡히는 바가 없더라.”
이 성어는《사기》노자ㆍ한비열전에 나온다. 유능한 상인은 창고에 물건을 숨겨 두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즉, 가게 앞에 너절하게 벌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학식을 자랑하지 않는다. 인품이 넉넉하고 학식이 있는 사람은 내면이 충실하게 가득 차 있기에 밖으로 경솔하게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유태인의 속담에 ‘항아리의 겉을 보지 말고 내용을 보라’는 말이 있다. 모두가 능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좀 더 겸손하길 바라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 세태가 겸손할수록 사람들은 더 알아주지 않는 데에 있다. 자기 피알시대! 여고생이 되면 화장을 배우기 시작하고, 대학 입학선물로 성형수술을 해주는 게 유행이 되었다. 청소년들이 외모를 너무 가꾸니 내면을 닦는데 등한하기 쉽다. 짧은 시간의 면접을 통해 취직을 해야 하는 젊은이들이 가식을 배우고 있다. 이들이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걱정이 된다.
사회에 나와서도 직함이 즐비하게 쓰여 있는 명함을 자랑스럽게 내놓고 자신을 필요이상으로 가식하여 과시하는 모습들이 다반사가 되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남이 알아주지 않을 거라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긴 하지만 우선 먹기 곶감이 달다고 했던가? 조그마한 감투라도 받고 싶어 안달이 나 짧은 시간에 자기를 나타내야하는 이 절박한 사회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자기의 진면목! 조용히 감추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냄으로서 그 가치를 극대화하는 현명함이 절실히 필요하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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