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불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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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불선생
  • 양상춘 교사
  • 승인 2011.01.2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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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춘 순창고 교사
이불선생(二不鮮生)

‘설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설날 친지들의 새해 인사말이 스트레스가 되어 살짝 짜증이 나는 경우이다. 50대 중반 고등학교 평교사인 내가 언제부터 그 증후군을 겪고 있다. “이제 교감할 나이 됐지?”라는 새해 인사말이 조금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사실 50대 중반이 되면 상당수의 교사들은 교감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러나 평교사가 교감이 되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섣달 그믐밤이 지나면 설날이 오는 것처럼 그냥 때가 되면 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사립학교의 교감(장)은 더욱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긴긴 그믐밤을 지새우며 지성을 드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종류의 특별한 노력이 싫고 여전히 교단에서 아이들과 함께하기를 바라는 교사들은 ‘교포교사’(교감ㆍ교장을 포기한 교사)가 된다. 교감(장)이 되지못한 그래서 무능한 교사의 호칭으로도 쓰이지만, 교포교사들은 매일 해맑은 아이들을 만나야하기에 어둠과 거짓을 멀리하고 신선함을 유지하려고 그들 역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인다.

교포교사의 딱지(?)를 얻으면서 교육경력 4반세기(!)를 넘겼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그 부족함을 채우려 부단한 연구를 하면서도 그것이 크게 괴롭다는 느낌은 없다. 오히려 멋진 수업을 설계하고 준비한다는 즐거움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정작 나를 괴롭히고 그 즐거움을 앗아가는 것은 따로 있다. 일관성 없는 교육정책이나 교육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는 정치인들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에 맞추어 공교육을 농락하다가 끝내는 그 책임을 교사에게 전가하는 그들의 뻔뻔함과 비겁함이 교사들을 괴롭히고 슬프게 한다.

하지만 교실 밖에서 어떤 세력이 무슨 장난을 치더라도 선생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아이들을 만난다. 교사의 정체성과 존재감은 교사에게 생명이다. 그것이 흔들리고 희박해질 때 교사는 아이들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일찍부터 교포교사의 길을 선택한 나는 그래서 나를 지키기 위한 깃발을 세웠다. 그리고 그 깃발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새겼다. ‘학이불염(學而不厭) 회인불권(誨人不倦)’ 언젠가 영어교사들끼리 논어의 명구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 중에 발견한 문구로 줄곧 나의 교직 좌우명이 되었다. 배움 없이 가르칠 수 없기에 학문에 염증을 갖지 말고(學而不厭), 가르치는 일에 권태감을 느끼지 않도록(誨人不倦) 새롭고 창의적인 교수법 연구를 게을리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교감 할 나이 됐지?”라고 인사하는 친지들에게 나의 생각을 길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의례적 인사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사말에 조금이나마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부끄럽다. 아직 교포교사로서의 정체성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좌우명의 깃발로 나를 곧추 세운다. 나는 염증을 느끼지 않고(不厭) 권태감도 없는(不倦) 이불(二不)선생이다. 그리고 先生이 아니라 鮮生이다. 아이들에게 입시교육만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선생이 아니라 생선(魚)과 고기(羊) 맛도 알려주고, 나이 50을 넘겨도 싱싱한(鮮) 수업을 유지하는 이불선생(二不鮮生)이다. 둘러보면 전국에 수많은 이불선생들이 있다. 각종 연수와 교육운동을 통해서 나는 그들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교육의 희망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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