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책(167)마음속에 존귀한 뜻, 조금은 품고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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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책(167)마음속에 존귀한 뜻, 조금은 품고 사는가
  • 이완준 문지기쇠
  • 승인 2017.06.0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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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읽은책
글 : 이완준 풍물패 순창굿어울마당 문지기쇠
강위원 지음「기적 아닌 날은 없다」

혼자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 대신 ‘혼자가면 불행하고 함께 가면 행복하다!’고 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단순하게 농촌이 좋거나 도시가 싫어서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으로 맺어진 세부부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고작 이러려고 학생운동을 했나”라는 회의감 끝에 뜻을 세우고, 농촌에 내려와 몸으로 써낸 ‘여민동락’의 10년 결산이자 삶의 기록이었다.
이 책은 젊은 시절 나를 성장시키고 함께했던 농민운동에 대한 소회, 농활 책임자로 왔다가 농민운동을 선택한 아내를 만난 현지인(?)의 감회, 순창에 잘 뿌리 내리고 있는 학생출신 지인들에 대한 미안함, 귀농귀촌으로 새로 만나게 된 인연들에 대한 소중함, 개인으로만 안주 하려는 우리 농촌의 공동체적 아쉬움과 관심부족을 함께 일깨워주는 책이었다.
뜻을 가지면 농촌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여민동락은 어르신께 큰절을 올리며 ‘여민동락 노인 복지센터’의 하루를 시작하였다. 큰절은 “날마다 더 낮추고 비우고 섬기겠다는 다짐이자, 초심과 정도를 잃지 않겠다는 약속의 표현”이었다. 보통의 복지시설과는 달리 국가가 주는 인건비나 운영비 없이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눠 가지자는 가난하고 소박한 삶이었다.
지역 아동센터도 관심 사업이었으나 인근 종교시설에서 준비 중인 것을 알고는 결연을 맺고 ‘큰들 야학’을 함께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좋은 일 일수록 나눠야 하고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이 있었다.
여러 개의 마을별 협동농장인 ‘동락원’은 어르신들이 내어놓은 토지를 모아서 칠할 정도는 어르신들과 함께 공동울력으로 농사짓고, 생산한 농작물을 팔아서 돌려드리는 일자리 형태의 사업이었다.
‘여민동락 할매손’은 나랏돈 지원받는 제도권 떡집이 아니었다. 할머니들이 만드는 마을기업의 모싯잎 송편공장 이었다. 지금은 ‘더불어 삶’으로 이름을 바꾸고 식품 안전관리 인증을 받았다.
조합원이 300세대가 넘는 전남 제1호 사회적 협동조합 ‘동락점빵’은 지역일체형 마을기업으로 안착되었고, 지역마을 42개를 탑차로 다니며 심부름센터 역할까지 겸하는 ‘이동식 마을장터’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랑방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운영하며 도시 소비자와 연결하는 ‘공동방아’ 사업, 목요일에 여는 마을회관의 ‘품앗이 학교’, ‘10원짜리 자판기사업’, 추수가 끝나면 일종의 추수감사절인 ‘비닐하우스 마을 보따리 전’, 여름의 ‘지역 방역사업’, 폐교 위기의 학교 살리기 등 날이면 날마다 전투적인 일상이 여민동락의 매일이었다.
본래 “나침반이나 설계도가 따로 없었고, 필요가 있으면 미루지 않았을 뿐, 머리로 재지 않고 몸을 던졌다”는 여민동락은 자신들을 지탱하는 힘은 가난과 인간다움과 존엄에 대해 늘 궁리하는 공부모임 ‘월요 학당’이 버티는 힘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가치 있는 일이란, 누구나 절망하고 부정할 때 온갖 편견과 우려를 이겨가며 이뤄내는 성과여야 값지다”는 것이 월요학당에서 일궈낸 여민동락의 실천의지였다.
지자체에서 빈집을 사서 공공주택처럼 임대하거나, 폐교나 마을회관을 개조해서 단기 주거형 농촌여관은 어떤가라는 제안에 귀 기울여 볼 만하다. 우리 지역에서도 귀농 귀촌의 가장 큰 걱정은 살 집이 없다는 일차적 현실과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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