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회문산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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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회문산의 밤
  • 강성일 전 순창읍장
  • 승인 2017.08.0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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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성일 전) 순창군청 기획실장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었다. 더위를 피해 산과 계곡 그리고 캠핑장, 해수욕장 등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초ㆍ중ㆍ고 학창생활을 같이했던 동창들을 중심으로 맺었던 모임을 지난 달에 구림 호정소에서 가졌다. 이 모임은 군대 다녀온 1978년쯤, 12명이 시작했다. 순창에 6명, 서울 등 외지에서 6명이 살았다. 일 년에 한 차례씩 모임을 가졌다. 회원 결혼식 참석이 주 목적이었다.
1980년대 까지는 결혼식 전날 함팔이는 큰일이었고 동네의 구경거리였다. 회원들이 그 일을 했다. 그리고 매년 한 번씩 순창과 서울에서 번갈아 만났는데 술 마시고 노는 게 일이었다. 부부가 함께 참석했는데 순창 등 전라에서 사는 부인들은 서울 등 수도권에서 사는 부인들을 많이 부러워했다. 남편들이 아내에게 하는 태도, 방식이 확연히 달랐다. 순창지역 남자들은 집사람은 안중에 없었다. 반면 서울에서 사는 회원들은 모든 게 아내 우선이었다. 40년 전에도 그랬다. 남쪽 지방의 귤나무를 북쪽 지방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로 바뀐다는 고사도 있지 않는가! 어쨌건 그런 형국이었다.
평소에도 남편들 행동거지에 불만이 많았는데 눈앞에서 비교가 되니 얼마나 속상했겠는가? 그래서 나온 푸념 중 하나가 ‘하여튼 순창 남자들 하는 짓 이라곤’ 였다. 밤새 남자들끼리 술 마시고 희희낙락하는 꼴을 보다 못한 아내들이 남편들을 서울에 두고 순창으로 내려간 적도 있었다. 그 뒤 여러 곡절을 겪으면서 띄엄띄엄 보다가 2년 전부터 정례적으로 다시 만났다.
올핸 12명(남자8, 부인4)이 참석했다. 세월이 40여년 흘렀다. 20대 청년들이 60대가 되었다. 먼저 세상을 뜬 회원이 2명, 죽을 고비를 넘길 만큼 아픈 회원도 2명, 목회자로 삶의 괘도를 수정한 회원이 2명 등 크고 작은 풍파와 고비가 있었고, 세월의 이끼가 훈장처럼 몸에 붙었다.
8일 저녁은 야외 원두막에서 매운탕으로 먹었다. 진안군 성수면에서 주조장을 운영하는 조성균 회원이 막걸리를 한 상자 가져왔다. 3종류 술이었다. 막걸리, 청주, 홍삼 막걸리 예전의 막걸리보단 훨씬 맛있고 위생적이었다. 특히 홍삼 막걸리는 술기운을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부드럽고 맛이 좋았다. 부인들에게 인기가 만점이었다.
밤 9시쯤 돼지고기를 구워서 술자리가 계속되었다. 오용호 회원이 준비해 가져온 화덕에 고기가 익어 갔다. 남자들이 다하니 부인들이 좋아했다. 세상은 돌고 돈다. 젊었을 때 고생시켰으니 이젠 남자들이 할 차례다. 억울해하거나 생색날 것 없다. 그게 세상사는 순리일 것이다. 밤은 깊어가고 술은 돌고 말은 진지하게 시작했으나 허공으로 사라졌다.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무게를 두지 않는다. 계곡의 물소리가 청량하다. 저렇게 흐르다 장애물을 만나면 멈췄다가 다시 흐를 것이다. 가고 가다가 증발 되는 것도 있을 것이고 강을 거쳐 바다로 흘러갈 것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수증기처럼 중간에 사라진 사람도 있고 장애물을 만난 사람도 있다. 시간이 모든 걸 정리한다.
자정까지 술자리가 계속되었다. 야외였지만 모기가 없어 좋았다. 잠은 각자가 알아서 잤다. 원두막에서, 차 속에서, 안방 거실에서.
나는 따뜻한 찜질방에서 혼자 잤다. 방은 따뜻했고 몸은 편안했지만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뒤척이다가 아침 7시쯤 일어났다. 원두막으로 나와 보니 벌써 해장술을 하고 있는 회원들이 있다. 해장술은 이 모임의 전통이자 고질병이다. 원조 격 회원이 저세상으로 가서 이번엔 어쩔까 싶었는데 계속되고 있다. 습관은 고치기가 어렵다. 내경험으로는 그렇다. 한때 죽을 고비를 넘길 만큼 아파서 내 습관이 바뀔 줄 알았었다. 그런데 바뀌지 않았다. 다만 바뀌어야 한다는 걸 의식할 뿐이다.
사람이 바뀌는 게 얼마나 어려우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면 죽을 때가 된 모양이라고 하겠는가? 죽을 각오를 하거나 아니면 부처님 수준으로 성불이나 해야 바뀔 수 있을 것이다.
8시쯤 된장 아욱국 아침을 먹고 회문산 휴양림을 산책했다. 매표소부터 산림체험관까지 짧은 거리지만 경사가 심해 쉽지 않았다. 구림면 출신 심양섭 숲 해설가가 회문산의 수목과 곤충, 동물 등의 생태계를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회문산의 푸름이 짙다. 6ㆍ25 전쟁 때 빨치산 본거지였던 이곳에 국군들이 불을 질러서 산이 다 탔다는데 수목들로 무성해졌다. 자연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인간의 손에 의해 잿더미가 되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다양하고 울창하게 회복되었다.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일 것이다. 인간은 작은 구성 요소에 불과한 미물일 뿐이다. 그걸 알고 사는 사람이 도인일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이 인간을 보호하는 것 일거다.
점심은 닭백숙으로 먹고 헤어졌다. 이번 만남에 성품을 가지고 찾아준 정광필 사장, 시간을 나누고 점심을 사준 정진호 동창, 참석자들에게 선물까지 챙겨준 성종진 총무, 명품 막걸리를 가지고 온 조성균 회원, 음식을 준비한 오용호 회원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세월은 사람에 따라 흘러갈 수도 쌓일 수도 있다. 좋은 우정으로 쌓이길 바라며 혼자 있는 친구들은 괜찮은 짝을 만나 내년에는 같이 오길 바란다! 학창시절 때 수학여행 온 것 같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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