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182) 평화의 소녀상에 담긴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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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182) 평화의 소녀상에 담긴 뜻
  • 박재근 고문
  • 승인 2017.09.1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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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한답니다. 꽃이 피기 직전의 꽃망울 같은 청순한 소녀들이 어느 날 이유 없이 영문도 모르게 끌려가 일본 군인들의 성폭력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1991년 8월 14일 (세계 위안부의 날이기도 합니다.) 그 피해자의 한분이었던 김학순 할머니가 역사의 정의를 위해 용기를 갖고 밝힘으로서 이 천인공노할 일본제국의 범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할머니께서는 1997년12월8일 평생 모은 2000만원을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위해 써 달라’며 자신이 다니던 서울 동대문 감리교회에 기증하고 97년 12월 1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료에 의하면 1941-1945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일본은 대동아 전쟁이라 함) 전쟁의 과정에서 일본군의 성 폭행으로 희생된 조선의 여성은 18만명 이상일 것으로 전해집니다.
우리가 오늘에 와서 소녀상을 세우는 이유는 불의한 역사를 잊지 않고 교훈 삼아 기억함으로서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불행한 과거의 원인과 실상을 규명하여 성찰을 하지 않으면 불행은 미래로 전이됩니다. 죄가 있는 사람들과 사회가 조용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은 과거를 묻지 말고 덮어두자고 합니다. 하지만 불의에 책임을 묻지 않게 되면 정의가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정의가 무너지면 사회평화가 무너지기 때문에 원칙과 정도를 상실한 화해에 동의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정의는 인간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최선의 덕목입니다. 만약 불의한 범죄를 용납한다면 사악한 자들은 반성을 하지 않고 악행을 반복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선량한 국민도 정도를 버리고 이익만을 추구할 것이며 사회 정의는 실종되고 원칙을 상실한 사회가 될 것이며 과거의 불행은 오늘과 내일로 이어질 것입니다.
성폭력의 가해자는 일본군만이 아닙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고금이래로 국가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군인이라는 폭력의 도구를 앞세워 전쟁을 해왔고 전쟁은 항상 성폭력을 동반 하였습니다. 우리는 일본에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고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에 대한 성의 있는 사죄를 받아야 합니다. 일본은 우리를 비롯한 아시아의 모든 피해 여성들에게 진실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최선의 사죄 표시를 해야 합니다. 반면 우리가 교훈삼아 기억에서 지우지 말아야 할 것은 분노와 증오와 보복이 아닌 폭력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규명하여 폭력의 씨앗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것입니다. 증오와 보복은 해답이 아닌 문제의 반복이며 지속일 뿐입니다.
나보다 약한 자를 나의 뜻대로 강제하는 것이 폭력의 씨앗입니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기 안에 있는 폭력의 씨앗을 제거해야 합니다. 인류는 하나로 된 운명 공동생명체입니다. 나와 남이 별개의 존재라는 생각은 나의 몸 중에 있는 간과 폐, 위와 장의 차이와 왼손과 오른손의 다름을 강조하는 것에 불과 합니다. 폭력의 근원은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실감하지 못하는 공감이성의 결함입니다. 공감이성의 결함이란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입니다. 위의 부담을 공감하지 못하는 식욕, 폐의 부담을 공감하지 못하는 흡연욕구, 간의 부담을 공감하지 못하는 음주욕구로서 이는 같은 나가 다른 나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함으로서 병을 만들어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공감이성의 유무는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점입니다.
공감이성의 상실은 인간존엄성의 포기이자 짐승으로의 회귀입니다. 공감이성은 세계평화의 초석이며 인간의 연대의식과 공존의식이 자라는 선의 토양입니다. 공감이성을 상실한 마음은 폭력의 싹이 트고 적대의식이 자라는 악의 토양입니다. 1980년 5월 18 광주를 피로 물들인 군인들은 외국 군인이 아닌 대한민국 군인들이었습니다. 국가에는 폭력의 도구인 군인들이 있고 군인들은 선악을 판단할 자유를 박탈당한 체 명령에 무조건 복종합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이러한 약점을 파고들어 국가권력을 훔쳤습니다. 공감이성을 결핍한 사람들, 인류의 평화와 인간의 존엄보다 자신의 야심을 우선하는 탐욕스런 사람들이 국가 권력을 잡게 되면 국가는 악해집니다. 포악한 전쟁의 역사에는 사악한 상관들의 명령을 무조건 추종하는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국가가 폭력의 도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군인들이 양심의 판단에 따라 상관의 명령을 거부할 자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양심의 자유를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이 아닌 악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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