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서(14)/ 이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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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서(14)/ 이얏!
  • 선산곡
  • 승인 2017.09.21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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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켜고 음악 싸이트에 들어가 시디(CD)에 녹음을 하기 시작한다. 원래 카세트테이프나 레코드에 담긴 음악을 CD로 녹음하기 위해 구입했던 기계인데 지금 현재는 용도변경, 인터넷에 깔린 음원들을 탐색해 나간다. 한 곡씩 촘촘하게 일시정지와 녹음 버튼을 번갈아 누르는 사이 책을 읽는다. 잡기장에 우선 제목을 적어 두는 일까지 겸하여지만 책장 넘기는 시간이 뜻밖에도 지루하지가 않다.
간편한 수필집 두 권 정도를 하루에 읽고 보니 이젠 재미가 붙었다. 책을 읽는 일과 음악을 낚는 일의 병행이다. 그동안 바쁘단 핑계로 소홀해왔던 일들을 한꺼번에 해내는 맛이 달다. 물론 인터넷에 음악을 올린 사람들에게 빚진 일이지만 용서하시라, 공유해준 뜻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디브이디(DVD)도 모르고 디지털 티브이(TV)에 블루레이도 모르고 일찍 세상을 떠난 둘째 형을 생각하면 집에서 영화보기도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좋아하는 영화, 음악의 세계를 남겨두고 어쩜 그리 일찍 가버리셨나.
내 어려 조그마한 집에서 온 식구들이 함께 살 때였다. 당시 극장이 있었던 공터 앞쪽에 우리 집이 있었다. 공터 구석에는 콜타르를 칠한 소방감시용 목조전망대가 세워져 있었다. 2층집 하나 없는 작은 읍내였으니 어디 불이라도 나면 사다리를 타고 그 전망대 위에 올라 불난 위치를 찾는다고도 했다. 그 전망대 꼭대기에 달아놓은 나팔스피커에 화재가 나면 사이렌이 울리기도 했지만 평소 오후에는 영화선전을 겸한 음악소리가 늘 귀를 시끄럽게 했다. 이를테면 ‘당 극장에서는 오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 운운하는 연설이 음악 사이에 수시로 끼어 있었다.
요즘 같으면 항의전화가 불이 날 지경이겠지만 그때는 텔레비전도 없었고 라디오는 물론, 피피선으로 연결한 골목유선방송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알던 모르던 극장에서 틀어주는 음악이 오히려 귀 호사시킨 시절의 일이었으니 지금 생각으론 믿거나 말거나.
작은 형은 내게 가끔 극장을 다녀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극장에서는 영화 상영 전 청소나 할 시간이었다. 극장에서 틀어주는 음악 중 한 번 더 틀어달라는 일종의 신청곡심부름이었다. 그 노래가 ‘폴 앙카’의 ‘크레이지 러브’.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작은 형은 한글로 가사를 적어주고 전망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그 노래를 배우게 했다. 극장에서 틀어주는 음악이랬자 서너 곡, 늘 같은 레퍼토리의 반복이었지만 그 중에 ‘크레이지 러브’가 있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아무튼 식구들은 그렇게 음악을 좋아했었다.
“조숙했소잉.”
언젠가 내 말을 듣고 누군가 놀린 말이었지만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찡해지는 것은 그때의 추억 때문이 분명하다.
요즘엔 최첨단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꽂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자기만 듣는 그들의 음악성향을 남들은 절대 모른다. 싫던 좋던 함께 들어야했던 고정음원도 없다. 이렇게 흘러간 추억의 유행가에서부터 동서양, 현대와 고전음악들을 쉽게 찾아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첨단 과학시대 덕분이라서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만들어낸 CD를 큰 오디오로 차분하게 들어본다.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하고 또한 직접 연주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을 200원도 못되는 은빛 판에 캐 낸(?)것은 땡잡은 것이요, 보물찾기 당첨과 버금가는 횡재다. 이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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