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183)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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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183) 용서
  • 박재근 고문
  • 승인 2017.09.2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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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성격은 부모의 유전과 가족 모두와 어머니의 태교로부터 형성되고 삶의 과정에서 그를 둘러싼 주변의 환경과 상황이 결합하면서 사물을 보는 생각이 형성된다. 기계는 같은 공장에서 같은 제품이 나오지만 사람은 기계와 달라서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도 임신 중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해진 가정과 사회의 환경과 상황의 다름이 정서에 영향을 주면서 태아에게 전이되어 태아의 성격이 형성된다. 자라는 과정의 삶의 환경과 질이 변화하면서 형제간에도 저마다 성격이 다르고 사물을 보는 눈 또한 달라진다. 다른 것은 형제뿐만이 아니라 같은 사람의 생각도 상황과 기분에 의해 아침과 저녁이 다르다. 하물며 남과 남의 사이에 생각이 같을 수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생각의 다름을 존중해야 할 이유이다. 
사물에 따른 이해관계와 욕망의 충돌은 사람들의 생각을 더욱 복잡하게 갈라놓는다. 이로 인해 사람은 저마다의 개성과 환경. 이해관계와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생각에 갇혀있다. 자기 생각에 대한 애착은 자기 생각의 한계를 부정하며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착각하며 고집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배척하면서 충돌이 발생한다. 만약 세상의 사람들이 남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고 저마다 자기 생각을 고집하며 사사건건 충돌한다면 사회는 잠시도 평화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용서란 상대가 처한 환경의 상황과 입장이 되어 사물을 이해하며 나와 다름을 포용하는 것이다. 마음이 커 자기 시야의 한계를 아는 사람은 자기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겸손으로부터 지혜를 빌린다.
겸손한 사람은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상대가 나와 같지 않음을 이해하면서 용서할 수 있다. 겸손한 사람은 사물이란 보는 사람의 처지와 입장과 시각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 의견에 집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고 수용함으로서 자기 사고의 폭을 깊게 한다. 겸손한 사람이 지혜로운 것은 자기만의 지혜에 갇히지 않고 많은 사람의 지혜를 활용하여 자기 지혜의 폭을 넓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보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나의 정신을 건강하게 한다. 내가 남을 용서하면 남도 나를 용서한다. 용서는 자기와 남의 결함과 무지에 대한 사랑이자 진리에 대한 겸손이다. 무지하면 단순하고 단순할수록 자기를 성찰할 줄 모르고 자기 성찰을 모를수록 자기주장이 완고하다.
남을 용서한다는 것은 내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 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이다. 용서는 적을 우군으로 만들고 인생의 동지로 만들어 삶을 수월하고 풍요롭게 할 수 있다. 남을 용서하면 나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분노와 증오, 슬픔과 서러움, 적개심과 복수심을 치료할 수 있다. 희노애오(喜怒愛惡)의 감정이라는 알속에서 부화되지 못하면 정신세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정신이 자유롭게 훨훨 날기 위해서는 벌레 상태의 감정을 벗어나 나비가 되어야 한다. 나에 대한 용서란 나의 결함과 약점, 과오와 무능에 대한 너그러움이며 사랑이다. 사람의 능력이란 자기를 경시하고 불신할수록 떨어지며 긍정할수록 향상된다. 자기의 능력을 무능으로 낙인찍고 탓하고 비하하는 것은 자기능력의 싹을 죽이는 길이다. 능력을 향상 시키는 유일한 길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능력을 사랑하며 노력하여 갈고 닦는 것이다.
세상에 약점과 결함이 없는 사람은 없고 과오와 실수를 범하지 않는 사람 또한 없다. 시야라는 것은 앞만을 보면 뒤를 놓치고 왼쪽을 보면 오른쪽을 놓친다. 자기용서는 비생산적인 지나간 과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마음을 건져내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현재의 생산적인 일에 마음을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용서는 상처를 치유하고 인간이 가진 약점과 결함을 상호 보완함으로써 자기 능력을 배가 시킨다. 용서는 사람사이의 끊어진 다리를 놓는다. 세상에 용서가 없다면 세상은 살벌하여 살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용서의 대상은 사람이며 죄악이 아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죄악의 덫을 제거하여 불행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죄악의 진상을 호도하거나 묻어 버리거나 지우는 것이 아니라 실체를 규명하여 불행의 반복을 막는 지혜를 얻는 것이다. 고의가 아닌 실수는 용서해야 하고 굶주림으로 인해 밥을 훔치는 것은 천부의 생존권이 상위에 있으므로 용서해야 하지만 사적야심을 위해 국민의 생존 권리의 총체인 국가권력을 훔쳐 사적으로 농단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부패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경시하고 천리를 도적질함으로 용서의 대상이 아니다. 권력의 도적은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훔치는 대량 살인으로 천도를 훼손한다는 것을 518 광주학살은 증명한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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