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이듦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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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이듦에 대하여
  • 강성일 전 순창읍장
  • 승인 2017.09.2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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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성일 전 )순창군청 기획실장

며칠 전 오후에 집 앞 공원에 나가 걷기 운동을 하고 있었다. 80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남자와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애완견 때문이었다. 노인은 공원에 개를 데리고 오면 안 된다고 지적하는 것이고 아가씨는 목줄을 매서 괜찮다는 것이었다. 몇 차례 말의 공방이 오고 갔다. 아가씨가 답답했는지 되는지 안 되는 지를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자고 했다. 노인은 계속 고집했다. 여러 사람이 오는 공원에 개를 데리고 오는 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다투는 소리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들자 아가씨는 창피했는지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오빠, 나 공원에서 말다툼 하고 있으니까 빨리와 줘” 도움을 요청한 거다. 그는 얼굴도 곱상했고 말씨도 비교적 공손했다. 반면에 노인은 낮술을 하셨는지 목소리가 컸고 훈계조였다.
공원에는 정자가 여러 개 있는데 나이든 남자들이 모이는 정자가 있다. 그곳에서는 주로 잡기를 하며 노는데 가끔은 술판이 벌어진다. 그날도 한잔하셨던 것 같다. 내가 보기로 노인의 말에 억지가 많았고 막무가내였다. 조금 있으면 응원군이 올 거고 노인이 당할 것 같았다. 노인을 떼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모정에 있든 일행들이 노인을 불렀다. 노인은 혼잣말을 하며 자리를 떠났다, 다행이었다. 잘못하면 오빤가 누군가에게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었는데 피할 수 있었다.
내 나이는 63세다. 젊지는 않지만 늙지도 않았다. 혈기는 예전만 못하지만 그렇다고 쇠락한 정도는 아니고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앞으로는 노인의 대열에 끼고 불려질 거다. 그래서 노인에 대한 자료나 방송이 나오면 챙겨보는 편이다. 많이들 “꼰대 소리 듣지 않으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고 몸에서 냄새나지 않게 목욕도 자주하라”고. 입을 닫으라는 말에는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나이가 들면 생업의 현장에서 물러난다. 무대에서 내려와 관중이 된다. 무대에서 활동하는 현역들이 잘하면 박수치고 응원하면 족할 것이다. 감독도 아닌데 무대에 있는 사람(젊은이) 들에게 지적해봤자 듣지도 않는다.
과거 농ㆍ산업시대 때는 경험이 중요했다. 그래서 연장자들의 역할이 있었고 대우도 받았다. 모르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경험이 축적된 노인들에게 물어서 해결하곤 했다. 농사기술이나 관혼상제 등이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어디서나 검색이 가능하다. 노인들의 지식이 더 이상 필요치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가급적 말은 줄여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입을 닫고 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젊은이들이야 앞날에 대한 희망이 있어 미래를 이야기하겠지만 나이든 사람은 과거를 회상할 수밖에 없다. 추억을 분위기에 맞게 이야기하는 게 방법일거다. 지갑을 열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크든 작든 돈 쓰는 건 그 사람의 성격이고 습관이다. 돈이 많아도 쓰질 못하는 경우는 안 쓰는 게 행복하기 때문일 거다. 또 돈을 쓰는 경우도 언제, 어디에 쓰느냐가 중요하다. 친구, 선배, 나를 도와준 사람들에게 자기 수준에 맞게 지갑을 여는 게 괜찮게 사는 삶이라 생각한다. 귀까지 열면 금상첨화 일거고!
사람은 청소년기에는 사춘기(思春期)를 겪고 노인이 되면 사추기(思秋期)를 겪는다. 우리가 보낸 1960~70년대는 생활에 급급하다 보니 사춘기란 말은 들었지만 느껴보지는 못했다. 얼굴에 여드름이 나고 목소리가 변하고 입 주위가 거뭇해지는 정도가 사춘기 모습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심하게 겪는다고 한다. 이것은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현실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몸이 본능적으로 긴장하여 나타나는 반응이라 생각한다. 노년의 사추기는 죽음을 앞둔 허무함 때문 일거다. 누구나 겪는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몇 년 전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던 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단순해졌다. 죽음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연의 영역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을 잘 사는 것뿐이다. 지금만 내 삶이고 앞날은 기약할 수 없다. 1시간 후에 내가 어떻게 될 줄 모른다. 그것을 몸으로 경험했다. 사람 목숨은 봄날 아지랑이처럼 순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살려면 아스팔트에 뿌리를 내리는 잡초처럼 질기기도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심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우리는 매일 잠을 자면서 죽음을 간접 경험한다. 낮에 열심히 일하고 마음에 걸리는 게 없으면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을 않거나 걱정이 많으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게 된다. 죽음도 마찬가지 일거다. 할 일을 했고 걱정이 없다면 잠드는 것처럼 편안하게 죽을 수 있을 거다. 걱정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이 있다고 한다. 하는 일 없는 나도 걱정이 있다. 걱정은 살아있는 생명체에게만 있는 특권이라고 위안해보지만 쉽지가 않다. 그냥 견디며 사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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