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보물여행(28) 저승얘기 빌려 현실정치 비판한 소설 ‘설공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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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보물여행(28) 저승얘기 빌려 현실정치 비판한 소설 ‘설공찬전’
  • 황호숙 해설사
  • 승인 2017.10.2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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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순창보물여행’

 

순창에 살던 설충란에게는 남매가 있었는데, 딸은 혼인하자마자 바로 죽고, 아들 공찬도 장가들기 전에 병들어 죽는다. 설공찬 누나의 혼령은 설충란의 동생인 설충수의 아들 공침에게 들어가 병들게 만든다. 설충수가 주술사 김석산을 부르자, 혼령은 공찬이를 데려오겠다며 물러간다. 곧, 설공찬의 혼령이 사촌동생 공침에게 들어가 왕래하기 시작한다.
설충수가 다시 김석산을 부르자 공찬은 공침을 극도로 괴롭게 하는데, 설충수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빌자 공침의 모습을 회복시켜 준다. 공찬은 사촌동생 설워와 윤자신을 불러오게 하는데, 이들이 저승 소식을 묻자 다음과 같이 전해 준다.
저승의 위치는 바닷가이고 이름은 단월국, 임금의 이름은 비사문천왕이다. 저승에서는 심판할 때 책을 살펴 하는데, 공찬은 저승에 먼저 와 있던 증조부 설위의 덕으로 풀려났다. 이승에서 선하게 산 사람은 저승에서도 잘 지내나, 악한 사람은 고생을 하거나 지옥으로 떨어진다. 이승에서 왕이었더라도 반역해서 집권하였으면 지옥에 떨어지며, 간언하다 죽은 충신은 저승에서 높은 벼슬을 하고, 여성도 글만 할 줄 알면 관직을 맡을 수 있다.
하루는 성화황제가 사람을 시켜 자기가 총애하는 신하의 저승행을 1년만 연기해 달라고 염라왕에게 요청하는데, 염라왕은 고유 권한의 침해라고 화를 내며 허락하지 않는다. 당황한 성화황제가 친히 염라국을 방문하자, 염라왕은 그 신하를 잡아오게 해 손을 삶으라고 한다.
- 설공찬전 [薛公瓚傳] ,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상에나 만상에나 조선 중종시절, 이미 순창군 금과면 순창 설씨 가문을 중심으로 한 귀신소설이 있어 온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아 공전의 히트를 쳤었다는 사실을 아셨나요?
조선 왕조 실록 중 중종실록 6년 9월치에 보면 “채수가 지은 설공찬전은 재난과 행복이 반복된다는 내용으로 매우 요망할 뿐만 아니라 조정과 민간이 모두 그 내용에 홀려서 문자로 옮기거나 이야기를 통해 전파함으로써 민중을 갈팡질팡 헤매게 만든다”라고 기록될 정도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나 봐요. 그래서 설공찬전이 쓰여진 모든 책들은 다 소각하라는 엄명이 내려져서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 옮겨 적는 사람도 국법으로 다스렸다니 놀랍지요.
도대체 어떤 내용을 가진 소설이기에 그랬을지 궁금하시지요. 더구나 소설에 나온 사람들이 실제 순창설씨 족보에도 기록이 되어 있다니,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바야흐로 때는 1997년 세종대왕 탄신 600주년을 맞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전국의 한글 고서를 수집하고 있었지요. 이 과정에서 실록에만 기록 되어 모두 파기된 줄 알았던 채수(蔡壽, 1449~1515)의 ‘설공찬전(薛公瓚傳)’이 500년만에 모습을 드러내었지요. 승정원 승지를 지낸 이문건(李文健, 1494~1567)이 쓴 ‘묵재일기(黙齊日記)’의 낱장 속면마다 필사 상태로 총 l3쪽 4000여자 분량의 설공찬전은 대한민국 문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지요.
당시에는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이 최고의 한글소설이라고 했는데 100여년이나 앞서서 한글로 필사된 소설이 발견된 것이지요. 중종실록(l5l1년)에 ‘한문으로 필사하거나 국문으로 번역해 유포되고 있다’고 기록돼 있어 ‘홍길동전’보다 100여년 앞선 한글 소설이 확인되었답니다. 서경대 이복규 교수(국문학)는 “저자와 저작 연대 등의 기록이 이처럼 명확한 고대 소설은 없다”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한글 소설임이 입증된다”고 평가했답니다. 국문학자가 아니어서 모르지만 아직까지 결론은 안 난 걸로 알고 있어요.
순창군과 중종은 관련이 깊은 사이인데요. 조선 최고령 122살 할머니의 장수 기록도 중종실록에 몇 번 기록되어 있고 강천산에 있는 절의탑과 깊은 관련이 있어서 삼인대 앞에서 진성대군, 거창신씨 그리고 중종반정과 순창군수 김정, 담양부사 박상 무안현감 류옥 등 삼인의 이야기를 관광객들과 하게 되거든요. ‘설공찬전’이 문제가 된 시기, 작가 채수와 관련된 중종반정 날 밤 이야기 등도 모두 중종과 관련이 깊습니다. 설공찬전과 관련된 그 외의 기록인 <대동야승>에는 “설씨 집안의 일을 그대로 전하여 백성들을 미혹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어숙권의 <패관잡기>에는 “말과 글을 그대로 적어 전할 뿐 한 자도 붙이지 않아 모두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답니다.
그 당시 설공찬전은 귀신 이야기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지옥을 다녀 온 설공찬의 입을 통해 중종반정 세력들의 실정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하고 있지요. 더구나 여성 평등에 관한 이야기도 품고 있어 그때의 상황과 결부지어 백성들의 기운을 북돋게 하여 백성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을 거라 예상이 되거든요.
설공찬전은 “예전에 순창에 살던 설충란(薛忠蘭)이는 지극한 가문의 사람이었다. 매우 부유하더니 한 딸이 있어 서방을 맞이하였지만 자식이 없는 상태에서 일찍 죽었다.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은 공찬(公瓚)이고 아이 때 이름은 숙동이었다. 어릴 때부터 글공부하기를 즐겨 한문과 문장 작법을 매우 즐겨 읽고 글쓰기를 아주 잘하였다. 갑자년에 나이 스물인데도 장가를 들지 않고 있더니 병들어 죽었다”라고 시작됩니다.
설공찬전에 등장하는 5명의 인물 가운데 설공찬의 증조할아버지인 설위와 설공찬의 아버지인 설충란, 그리고 작은 아버지 설충수까지는 모두 실제 인물로 족보에 나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설공찬과 설공침은 족보에서 찾을 수 없다고 하죠.
“이승에 어진 재상이면 죽어서도 재상으로 다니고, 이승에서는 비록 여편네 몸이었어도 약간이라도 글을 잘하면 저승에서 아무 소임이나 맡으며 잘 지낸다. 이승에서 비록 비명에 죽었어도 임금께 충성하여 간하다가 죽은 사람이면 저승에 가서도 좋은 벼슬을 하고, 비록 여기에서 임금을 하였더라도 주전충 같은 반역자는 다 지옥에 들어가 있었다. 주전충 임금은 당나라 사람이다.”(중략)
저승 이야기를 살짝 빌려서 쿠데타로 집권한 왕은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다는 이 소설은 신하들의 반정으로 왕이 된 중종에겐 치명적인 왕권 모독죄일 것이고, 여자도 남자처럼 관직에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남존여비 사상에 길들여져 있던 유교사회에 획기적인 여성평등사상이지요. 백성들이 편하게 읽고 쉽게 필사할 수 있는 한글로 번역된 이 소설은 그래서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었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될 만큼 금서가 된 것이죠.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으로, 뮤지컬로도 제작될 만큼 의미가 큰 설공찬전. 저승얘기 빌려 현실정치를 비판한 무서운 소설이었고, 이 소설의 소재와 배경이 순창군이었다는 것은 순창 땅의 지기를 느낄 수 있어 우리 순창군민들이 꼭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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