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서(18)/ 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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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서(18)/ 탄관
  • 선산곡
  • 승인 2017.11.2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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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더니 기다리는 사람들의 가슴이 뛴다. 그 어느 자리라도 꿰어(?) 찬다면 부르기 좋고 누리기 좋은 게 벼슬자리인가보다. 그 진영이 힘을 잡았으니 언젠가는 나를 불러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을 법하다. 자기가 몸 담아 혼신의 힘을 다해 창출에 기여했다면 좋은 자리, 높은 자리 은근히 기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 정권 초기, 인사청문회의 턱도 높은 우리나라에서 감투 끈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치다 낙마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하긴 장관이니 청장이니 큰 감투 쓰는 게 보통일인가. 그 좋은 자리 어떻게든 통과만 하면 된다는 심리로 자신을 변명하는 모습이 때론 애처롭기도 했다. 그렇지만 끌어 내리려는 상대진영의 논리도 우격다짐으로 일관하는 것 같아 볼썽사납긴 마찬가지였다. 주려는 감투 쉽게 받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지만 그만큼 엄격한 잣대가 필요한 세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초(楚)나라 시인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어부(漁夫)편에 ‘진의탄관(振衣彈冠)’이란 말이 있다. 머리를 감은 사람은 갓의 먼지를 털고 몸을 씻은 사람은 옷의 먼지를 턴다는 말이다. 목욕을 하고 나서 갓과 옷의 먼지를 터는 것은 곧 깨끗한 몸과 마음이어야 한다는 자기 정제(整齊)의 뜻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 뜻도 변질되었다고 한다. 서한(西漢)시대, 공우(貢禹)와 함께 면직되었던 왕길(王吉)이 정권이 바뀌자 다시 등용되었다. 친구였던 왕길이 복직되었으니 이젠 나도 곧 소식이 오겠지 하며 공우가 갓 먼지를 털고 기다렸다는 것이다. 굴원의 탄관과 달리, 2천년 뒤 왕길ㆍ공우의 탄관이 관료사회를 비꼬는 말로 직역돼 버린 것이다. 중국의 이 고사도 변질 연륜이 제법 깊은 걸 보니 어느 시대나 쓰고 싶은 것이 감투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 우리나라에 탄관의 속성은 없는가. 청문회에서 온갖 창피 다 떨다 물러설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지금도 갓 먼지를 털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반대로, 훌륭한 인재가 악의적 인신공격과 비방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청문회가 생긴 이래 어느 정권에서든 최악의 코드인사니 가장 적절한 추천이니 하는 단어들이 난무해왔다. 인재를 추천하고 용인하는 참모습들이 아니다. 내편 아니면 모두가 적인 것이다.
링컨과 겨루었던 대통령 후보가 시워드였다. 미국의 선거제도에 따라 1차 투표에서는 이겼지만 2차 투표에서는 졌다. 그러나 링컨은 그를 과감히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그 시워드, 국무장관 재임 때 러시아로부터 알라스카를 푼돈으로 사들였던 사람이다. 링컨과 시워드의 정치 목표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였다.
지금 우리에게는 백성을 위한 정치가 필요한 시대다. 영웅을 기다리는 시대가 아니다. 네 편 내편 따지지 말고 훌륭한 인재가 있으면 국민을 위해 일하게 해야 한다.
40년 부대끼던 일터를 떠난 뒤 갓을 털 일도 없는 신세지만 이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기 불편하고 우울한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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