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쿠바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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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쿠바에 다녀와서
  • 김효진 이장
  • 승인 2017.12.28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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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풍산두지마을 이장

몸서리 칠만큼 지루한 비행시간을 보내고 아바나 공항에 도착했다. 쿠바다. 전라북도 농민회 회원들과 함께 한 농업연수 방문이었다. 쿠바는 남한보다 약간 크다 할 면적에 미국 마이애미와 가까이 위치한 카리브 해 관문, 섬 국가다.
역사적 이력으로 보면 우리와 닮은 구석도 많다. 400년 가까이 스페인 식민 지배를 받았고, 19세기 말 두 차례의 독립전쟁으로 스페인의 그늘을 벗어나는 순간 미국의 개입으로 미군정 3년을 거치며 미국의 신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리 역사에서 일본 강제 병합과 해방, 미군의 점령과 분단 여정은 식민지 설움과 고통을 겪은 쿠바와도 꽤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분단국가인 우리와 달리, 쿠바는 단일국가로서 사회주의 정치경제 시스템으로 국가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소련의 우호적 태도와 미국의 쿠바에 대한 고립, 압박, 붕괴 시도는 혁명 쿠바가 자연스럽게 사회주의를 국가 운영의 이념좌표로 설정할 수밖에 없도록 하였다. 이렇듯 닮은 듯 사뭇 다른 쿠바에서 우리 연수단은 쿠바 농업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한 것일까.
널리 알려진 대로 쿠바는 세계 유기농업의 메카라 불릴 만큼 국가차원에서 유기농업을 선도하고 있다.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전 농토의 30%를 조금 넘는다고 한다. 채소 과일 위주로 근교 도시농업에서 유기농업을 실현하고 있다. 쿠바가 국가적으로 유기농업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부터다. 소련으로부터 원유공급이 중단되고 미국의 경제 봉쇄가 극심해져 당장 화학비료와 농약의 제조나 수입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특별시기’(평화시 국가비상사태)라 일컬어지는 이 고난의 시기를 쿠바는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으로 돌려놓았다. 생태파괴적 국영농장 중심의 고투입(농기계, 화학비료, 농약) 대량 생산과 유통체제를 지역공동체 농업(CCS), 협동농장 농업(CPA), 가족농업 중심의 유기농업 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유기농 농산물 생산이 쿠바 국민 전체의 안정되고 안전한 먹거리 공급에 목적이 있지, 비싼 값을 받으려는 상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기농업 정착의 배경뿐만 아니라, 농산물 가격결정과 유통판매 흐름도 궁금한 차에 산타클라라의 한 농장을 방문했다. 1,500㎡의 다소 작은 규모의 농지를 3명이 경작하는 곳이었다. 상추를 비롯한 채소를 주로 기르는 농장이고, 이곳 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이곳 주에서 소비한다고 한다. 한국처럼 경상도 전라도에서 가락시장까지 올라갔다 다시 지방으로 내려오지 않고 지산지소 개념으로 소비된다. 아바나처럼 대도시 역시 도시 유기농업이 활발하여 자체 지역 소비(자가생산, 자가소비)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가격결정은 국가행정기관을 따로 두어 개별농장과 별도로 생산농민과 함께 가격논의를 한다. 산타클라라만 170여개의 개별 농장과 가격논의를 한다. 농가에서 올해 기후는 어떠하고 생산비, 인건비 고려해서 가격을 제시하면 대체로 그에 맞게 결정된다고 한다. 가격결정 횟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한다고 하며 유통은 공공기관(급식기관)에 납품하는 농장도 있고, ‘아코피오’라는 국영회사에서 유통 판매하고 최근에는 개인 농가가 판매하는 시장도 있다고 한다.
농산물 수취가격을 높게 받고 싶은 욕구에서 친환경농업을 시작하는 우리와 달리, 농민이 수퍼맨처럼 생산ㆍ유통ㆍ판매까지 감당해야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쿠바 정부와 농민은 우리와 너무 다른 세계에 있는 듯 했다. 그것이 단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사회체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농업을 국가가 보호ㆍ관리하고 책임지는 철학의 차이는 아닐까!
쿠바를 다니며 회색빛 남루한 건물들을 바라보면 역사의 시계가 1991년에 멈춘 듯하다. 쿠바는 여전히 가난하다. 쿠바 농민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은 귀농귀촌을 주저하고 있으며 농사일은 여전히 힘든 직업임에 틀림없다. 단지 쿠바에서 한없이 부럽고 부끄러웠던 것은 국가가 농민을 귀히 대접하고 농민은 전체 국민을 귀히 여겨 농사짓는다는 사실이다. 농산물에 매겨지는 가격은 편의를 위한 도구일 뿐,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고 공동체가 유지되는데 필요한 공기와 같이 가장 귀한 공공재가 농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농업과 농민, 농산물이 국가와 사회공동체로부터 존대 받을 수 있는 나라를 이곳 대한민국에서 꿈꾸는 건 지나친 희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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