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보물여행(33) 채계산 금돼지굴 찾아 솔숲 솔향에 취해
상태바
순창보물여행(33) 채계산 금돼지굴 찾아 솔숲 솔향에 취해
  • 박재순 해설사
  • 승인 2018.01.18 14: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순창보물여행’

 

201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 해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면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습니다. 몇 번 오르기도 했지만 추억 속에 자꾸 생각나는 곳입니다. 바로 제가 살고 있는 적성면에 있는 채계산(釵笄山)입니다. 채계산은 강천산과 회문산에 이은 순창의 3대 명산중 하나입니다. 명산에 걸맞게 불리는 이름도 네 가지나 됩니다. 첫째가 적성 임동마을 매미터 쪽 모습보다는, 제 눈에는 동계 서호에서 적성 괴정마을 도로 위를 달리다보면 정면에 누워 있는 여인의 이마, 눈썹, 코, 입술, 가슴까지 뚜렷한 산이 보입니다. 그래서 비녀 채(釵), 비녀 계(笄)자를 써서 ‘채계산’이라 부르게 되었나봅니다. 둘째는 바위들이 마치 책을 켜켜이 쌓아 놓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책여산(冊如山)이라 부릅니다. 송대봉에서 독집 맞은편을 내려가는 능선을 사람들은 칼바위능선이라고 부릅니다. 이 구간을 가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질 겁니다. 셋째는 적성산(赤城山)입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적성 고을 원님이 이 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 적성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산이랍니다. 넷째는 화산(華山)입니다. 산이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봄이 되면 바위틈에 진달래가 소나무와 어우러져 피어나는데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승용차에서 내려서 한참을 바라보게 한답니다.

 

 

오늘은 아침 8시경 자동차를 적성 관평마을과 유등 무수마을을 연결하는 유적교 옆에 세워 두고 걸었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자전거 길을 따라 걷다보니 살갗을 후비는 듯 겨울바람이 귀를 얼얼하게 합니다. 날씨 때문인지 자전거 라이더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어느덧 발길은 몇백년 됨직한 왕버들나무가 멋들어진 원다리에 이르렀습니다.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남원으로 가려면 나룻배를 이용했다고 하니 이쯤 어딘가에 주막이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원다리는 한국전쟁 때 미군 폭격기들에 의해 폭파된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9시 무렵 채계산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가파른 길이 바로 이어져 심호흡 한 번 하고 오래된 벚나무가 서 있는 길을 올라 화산옹 바위 밑에 다다랐습니다. 잠시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립니다. 명산이라 전설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은 ‘금돼지굴’에 대한 전설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옛날 적성 고을에 원님이 부임해 하룻밤 자고나면 원님 부인이 사라지는 괴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적성에 오기를 꺼려하는데 한 사람이 자청해서 오게 되었답니다. 그 원님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부인의 치맛자락에 명주실을 묶어 놓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일진광풍이 불고 모든 불이 꺼지더니 원님까지 정신을 잃게 했답니다. 원님이 정신을 차려 부인의 치맛자락에 묶어 놓은 명주실을 따라 가보니 황금빛을 띤 돼지가 그동안 사라진 원님들의 부인들을 희롱하고 있었습니다. 원님은 조용히 부인을 불러내어 금돼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을 알아내라고 했답니다. 현명한 부인은 금돼지가 마음을 놓게 만든 다음 “혹시라도 제가 금돼지님을 해치게 될까 걱정이 되옵니다. 미리 조심하도록 가장 치명적인 게 무엇인지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금돼지는 원님 부인을 믿었던지 “나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사슴가죽이오. 그것이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물건이오.” 원님은 사슴가죽으로 만든 노리개를 부인에게 건네주며 “적당한 때에 이 사슴 가죽을 금돼지 코에 가져다 대면 금돼지가 그 자리에서 죽게 될 것이오. 조심하시오. 부인.” 기회를 보고 있던 부인이 금돼지가 곤히 자고 있는 틈을 이용해 사슴 가죽을 금돼지 코에 들이밀자, 금돼지가 괴로워하며 온 산을 휘젓다가 죽게 되었답니다. 현명한 원님은 굴에 갇혀 있던 원님 부인들을 모두 풀어주고, 적성고을을 잘 다스렸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 공작단풍이 아름다운 무량사 절 마당을 가로질러 금돼지굴로 올라간 적이 있었지만 오늘은 당재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빨간색에 까만 열매가 달려 있는 여우콩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열매가 터진 뒤, 꼬투리에 붙어 있는 모습이 꼭 여우 얼굴처럼 보입니다. 발길을 재촉해 당재에 도착한 시간은 9시 20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채계산에 오르면 이 당재에서 송대봉을 지나서 독집 앞으로 내려갑니다. 하지만 금돼지굴은 이 반대쪽을 가야하지요. 당재 삼거리에 서면 올라온 길 옆 쪽으로 ‘황굴’ 이정표가 나옵니다. 5분이 채 걸리지 않은 거리에 있는데 몇십년 전에는 이곳에 세 칸 절집이 있었고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이 스님과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돌무더기에 돌 하나를 얹어 놓고 발길을 돌려 다시 당재로 돌아와서 금돼지굴을 찾기 위해 오른쪽으로 유등 책암과 금돼지굴봉 정상이라 표기된 이정표를 보면서 철계단을 오릅니다. 20여분을 올라 금돼지굴봉 정상에 올라서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고 찾아보아도 굴처럼 생긴 곳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나무 숲길에 마음이 빼앗기면서도 목표를 이루리라 마음을 다잡으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큼지막한 이정표가 나온다고 해서 열심히 찾았지만 금돼지굴봉 정상이라는 이정표만 있지 금돼지굴을 찾아가는 이정표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다시 적성면에 오래 사신 분에게 물어보았더니 금돼지굴봉 정상 봉우리를 지나 작은 봉우리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나무꾼이 지나다니는 길이 보일거라고 했습니다. ‘이제 찾을 수 있겠구나!’ 희망을 걸고 작은 봉우리 밑을 지나 산 밑으로 내려갔는데 길이 없어져버렸습니다. 몇십년을 차곡차곡 쌓여진 솔잎과 참나무잎이 푹푹 꺼지는 산길을 더듬다 안되겠기에 위쪽으로 다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살아있는 나뭇가지와 진달래꽃 나무를 잡으며 바위 위로 겨우 오르니 아까 지나간 능선길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포기해야 되나’ 작은 봉우리를 내려오는데 오른쪽에 희미하게 나무꾼들이 다녔음직한 조그만 오솔길이 보였습니다. 희망이 묻어나는 미소를 머금고 10여분을 내려가니 절벽 옆에 금돼지굴이 나타났습니다. 드디어 찾았다는 기쁜 마음으로 인증샷을 남겼습니다. 지난번에는 무량사 밑에서 올라와서 전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 사람이 가르쳐 준 길도 어떤 위치에서 생각하고 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실감하며, 오늘 산행은 이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생각하며 다음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조금은 쉽게 찾도록 뭉쳐있는 표지 리본을 풀어서 눈에 잘 띄도록 나뭇가지에 걸어 놓았습니다. 다시 능선을 오르다보니 표시 해 놓은 것 같은 두 곳의 돌무더기가 보였습니다. 큼지막한 돌 세개를 주워서 그 옆에 돌무더기 하나를 더 만들고 솔숲 길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몇십년 차곡차곡 쌓인 솔잎 길을 걷는 기분은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랄까’ 그 감촉과 냄새에 취해 한참을 머무르다 소나무 사이로 빠끔히 보이는 하늘을 보며 ‘이 순간은 나도 자연의 일부구나!’ 생각했습니다. 진달래꽃 피는 봄에 다시 오리라. 무수마을과 책암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 앞을 지나 무수마을로 내려와서 자동차 세워둔 곳까지 걸었습니다. 두 시간이면 족할 산행이 네 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목표한 금돼지굴도 찾아 더없이 행복한 산행이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순창 농부]농사짓고 요리하는 이경아 농부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이러다 실내수영장 예약 운영 될라”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