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등 버들학당 할머니 ‘문집’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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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등 버들학당 할머니 ‘문집’ 발간
  • 김슬기 기자
  • 승인 2018.01.18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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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추억 가득 ‘옛날사진’ 싣고 ‘사연’ 담아 자작시, 살아온 이야기 소개

▲겨울동안 선생님들이 안 가르쳐 주니 머리가 하얘졌다는 할머니 학생들. 문집을 받아본 버들학당 학생들이 찬찬히 책을 들여다 보고 있다.
‘섬진강 물줄기 따라 늘 푸른 버들학당’ 2학년 할머니 학생들의 꽃 같은 시와 반백년 추억이 담긴 이야기, 사진들이 책으로 엮였다.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지원 사업으로 순창문화원(원장 김기곤)이 주관한 ‘버들학당’에서 매주 월요일 한글을 배운 유등면 유촌ㆍ유천 마을 어르신들. 책 놀이, 그림일기, 시 쓰기, 꽃놀이 등 다양한 문화를 배우던 시간들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오자 십원짜리 화투도 저리 치워놓고 책 구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작년 책보다 채 낫네!”
지난 15일 책을 받아 본 할머니 학생들은 서로 책 속 사진들을 보고 ‘누구 댁 사진이고만’ ‘형님~ 여기도 나왔어’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정삼례(77) 씨는 “너무나 재미지고 좋다. 깨복쟁이 친구랑 찍었던 사진이 다 책에 실리고 정말 기쁘다. 월요일마다 선생님들이 와서 공부가 좋았는데 겨울에 안 오니 공부를 안 해서 내 머리카락도 하얗게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옆에서 “요봐, 내 머리도 희해져 부렀어”라며 웃던 버들학당 최고령 유금순(85) 씨도 “웃고 공부하는 것이 즐거워 하룻저녁도 안 빠지고 나왔다. 책을 보니 뿌듯하다. 또 그렇게 배웠으면 쓰겠다”며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못했다.
1년 동안의 추억을 담은 102쪽 짜리 책에는 할머니 학생 마다 사연이 담긴 옛날 사진들이 실렸다. 사진에 얽힌 이야기도 담았다. 가장 잘 하는 음식, 가족 이야기들도 기록했다. 수업 날이 아닌 때에 황호숙 강사가 버드마을 할머니 학생들의 집을 방문해 함께 앨범을 들춰보며 구술로 전하는 이야기들을 기록했다. 함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만들어낸 책이라 더욱 애착이 간다는 황 강사는 “일하러 가셨다가도 허둥지둥 돌아오셔서 뭐 하나라도 더 챙겨 먹이고 싶어 하고 손에 무엇이든 들려 보내고파서 비닐봉지 찾던 엄니들의 투박한 손 마디마디 힘줄이 지금도 느껴진다”면서 “행복했고, 또 추억이 많아서 배부르다. 버드마을 쪽에서 바람만 불어와도 보고 싶을 거다. 진달래꽃 피고 살구꽃 피는 장날 만나면 더덩실 안아주고 순댓국 먹자. 제가 쏘겠다”고 말했다.
할머니 학생들에게 수업하는 월요일은 매주 기다려지는 시간이었지만 황호숙, 박인순, 김원옥 3명의 강사들에게도 수업 날은 특별한 월요일이었다. 책을 펴내며 박인순 강사는 “한글날 우리 어머님들 교복 입고 한옥마을 나들이 가시던 날, 생전 처음 입어보는 교복이라며 기쁨으로 잔뜩 부풀어 있는 모습을 보며 맘이 뿌듯했다. 어머님들과 함께 한 시간들은 제 삶 한 장의 추억으로 고이 남겨놓겠다.” 김원옥 강사는 “일주일에 한 번 어머님들과의 만남에 즐거움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친정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아련함이 떠올랐다”며 “어머님들은 앞으로의 저를 굳세게 하는 디딤돌이 될 듯 하다. 이런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3명의 강사와 함께 꼬마 선생님으로 인기 “짱”이었던 김효영(중앙초 6년, 김원옥 강사 딸) 학생의 이야기는 책에 담기지 않았지만 “엄마를 따라다니며 할머니들에게 글을 가르쳐 드리니 엄마가 된 기분이 들었어요. 아직은 어리지만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할머니들이 ‘꼬마선생님’이라고 불러주실 땐 진짜로 선생님이 된 기분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책머리에서 김기곤 문화원장은 “배운다는 것, 공동체 생활 속에서 우정을 찾고 그 속에서 진리를 탐구하시는 어머님들의 열성이야 말로 우리들의 삶 속에 즐거움을 얻었던 한 해였고 좋은 사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서한봉 유촌이장은 “봄부터 겨울까지 월요일 밤이면 어김없이 책가방 들고 손수레 밀면서 등교하시는 모습, 한여름 그 뜨겁고 바쁜 와중에도 결석 한 번 하지 않고 개근하시는 어머님들을 보면서 이장으로서 마음이 뿌듯했다”고 밝혔다.
이제 ‘섬진강 물줄기 따라 늘 푸른 버들학당’은 마무리 됐다. 시 수업이 한창일 때 할머니 학생들은 ‘시를 어떻게 쓰는 것인지’ 묻는 강사의 질문에 “멧돼지 감자 캐 묵드끼(먹듯이) 쓰면 되지. 곧 쟁기질 해 놓은디끼 맛난 것만 껍질 벗겨서 알맹이만 쏙쏙 쓰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시를 써오라고 할 때면 밤 12시가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 이름 석 자를 쓰는 것에 기쁘고 우리 집 주소를 쓰고 버스 이정표를 보고 읽을 수 있는 것이 소원이었던 할머니 학생들은 이제는 어엿한 시인으로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는 일기도 쓸 수 있고 신문도 읽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실천한 할머니 학생들의 열정과 친정엄마처럼 할머니 학생들에게 정을 주고 사랑을 쏟은 강사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 나! / 김영순은 / 버들학당이 우리마을에 들어와서 / 우리집 주소, 전화번호, 주민번호 / 외우고 쓰고 알고 있다 //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우리 /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글을 배워 / 사람 사는 법을 알았다 / 잘 가르쳐 주셨기에... / 김영순! / 출세했네 그려^^
-김영순 할머니의 시 ‘출세했네’

“내가 잘 허는 음식은 추어탕이여. 미꾸라지를 호박잎으로 싹싹 문대면 버끔이 나거든. 깨깟이 씻어서 솥에다가 참지름 한방울을 떨쳐놓는디 이유는 삐따구 연하라고 허제. 다 삶아지면 바가지 똥구녁으로 막 이개. 그라면 인자 고추랑 양념이랑 갈아 붓고 시래기를 넣어. 시래기는 삶아서 한 시간 정도 담과 놔. 뽈깡 짜 가지고 먹기 좋게 썰어. 된장이랑 마늘 간 것, 거기다가 고추랑 생강 간 것 넣어가지고 고추 양념 무친 것 맹키로 무쳐. 국물은 팔팔 끓으면 넣는디 된장으로 간 맞춰야 혀. 매콤허게 묵을라믄 고추 갈은 걸로 얼큰허게 만들면 돼.”
-박영자 할머니 이야기 중에서

▲최희순 할머니의 결혼사진.

▲참깨를 주제로 쓴 시. 엊그제 참깨 씨를 심은듯한데 참깨를 수확할 날이 온다며 참깨가 익을 날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시. 속닥속닥 뒷이야기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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