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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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 서보연 기자
  • 승인 2018.02.08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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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하얀 일요일.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 가기 위한 여러 교통수단이 있다. 넓은 창밖을 보며 달걀과 사이다를 먹는 기차여행, 하늘과 구름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비행기여행, 시골 골목골목을 다닐 수 있는 버스여행 등…
일요일 버스를 타고 떠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인 버스 맨 뒷좌석 오른쪽 창가 자리에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창 밖 풍경을 바라본다. 버스에서 내려 걷는 순창 예향천리마실길. 큰 산들이 위용 있게 서있는 모습이 늠름하고, 추운 날씨에 얼음이 내린 아래로 흐르는 섬진강이 잔잔하다. 한파주의보와 풍랑주의보 때문인지 주위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 아름다운 풍경이 다 나의 것이다.
길을 걷는다. 때로는 친구와 때로는 연인과 때로는 가족과 함께 걷는다. 같이 걸을 때는 든든하고 재미있고 즐겁다. 가끔은 서로 하는 얘기가 재밌어서 집중하다가 봐야 할 풍경도 지나치고 심지어는 둘 다 표지판을 못 보고 길을 헤맬 때도 있다. 하지만 함께 한다는 안정감과 서로에 대한 친밀감을 보상으로 얻는다.
때로는 같이 걷지만 때로는 혼자 걷는다. 혼자 걸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 한다. 길에 대한 정보, 식당, 숙소, 화장실, 준비물 등, 혼자 걷기 때문에 겪어야 할 감정들-외로움,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혼자 걸어본 사람은 혼자 걸을 때의 그 자유로움과 즐거움을 안다. 세상에서 나 혼자라는 느낌인데 그것이 외로움이나 두려움이 아닌 표현할 수 없는 자유로움이다. 이런 기분을 처음 느꼈던 건 아마 2010년. 제주도 북동쪽에 있는 신천 바다목장에서였다. 왼쪽에는 새파란 바다와 검은 현무암 바위가 있고 오른쪽 초원엔 말들이 뛰놀고 멀리 그 뒤로는 야자나무가 삥 둘러져 있다. 그곳에 혼자 있었는데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엄청난 자유로움이 밀려왔다. 오래전 일이지만 그때의 그 자유로움과 행복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혼자 걸을 때는 걷고 싶으면 걷고, 쉬고 싶으면 쉴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식당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얼마 안 지나서 배가 고프면 또 먹을 수도 있고, 예쁜 카페를 발견하면 커피를 마시며 쉴 수도 있다. 마을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가 친해져 얘기도 하고, 동네 강아지나 고양이랑 놀 수도 있다. 마을도서관이 있으면 걷다가 들어가 책을 봐도 되고, 책을 보다 잠시 졸아도 된다.
인생길도 마찬가지 같다. 우리는 여러 인간관계로 이어져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홀로 존재해야 한다. 홀로 건강하게 존재해야만 타인과의 관계도 건강하게 이뤄질 수 있다. 대한민국은 가족 위주의 집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좋은 제도이다. 하지만 가끔은 가족이라는 역할에 함몰되어, 남편과 아내, 부모와 아이라는 역할에 함몰되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는 않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바른 인생길을 살고 있는지,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서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말을 타고 광야를 달리던 인디언들은 어느 순간 말에서 내린 채 누군가를 기다린다고 한다. 너무 빨리 달려서 미처 따라오지 못한 자신의 영혼을 기다린다고 한다.
오늘도 인생의 길을 걷는다. 지금 내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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