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혼자 밥을 먹으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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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혼자 밥을 먹으며 (1)
  • 양장희 독자
  • 승인 2018.03.0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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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희 (81ㆍ금과 고례,) 전 순창군의회 의원

 

나는 사정에 의해 아내를 요양원으로 보내야만 했다. 그곳이 요양원인지도 모르는 아내를, 고려시대 고려장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오는 것만 같아 회한의 눈물만 고였다. 그날 이후 집에 홀로 있으려니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가슴 한켠이 아련해진다.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기를 하나, 두 다리를 펴고 잠을 편히 잘 수 있나, 술로 날밤 새우기를 십 여일, 결국 병원신세를 지고 말았다. 종국에는 하는 수 없이 술도 끊고 초라한 몰골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떠오르는 생각은 온통 그간 아내에게 잘못했던 기억뿐이요, 해야 할 일은 그저 밥을 해 먹는 일 뿐이다. 그 놈의 밥은 꼭 먹어야 살 수 있는 것이어서 바보처럼 그저 꾸역꾸역 먹고는 있다. 그마저도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 끼니는 어김없이 시계바늘처럼 정확히도 돌아온다.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에 언제나 무효가 되고 만다.
아내와 이별 아닌 이별을 하고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외로움이 뭔지, 쓸쓸하고 고독하다는 게 뭔지, 스스로 터득하게 되었다. 아무도 날 부르지 않고, 아무도 날 찾아주지 않는, 그저 말소된 주민등록처럼 처절하게 지워진 인생!
허무한 공간에서 외로움이 내게 밀물처럼 밀려와 썰물처럼 나를 휘감고 밀려가며, 나를 아주 외딴 섬으로 만들어 버린다.
둘이 걷다가 혼자 걷는 게 이별이라 했던가.
현제명의 <고향생각> 노래 가사처럼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외롭기 한이 없네~. 이은상의 <성불사의 밤>에 나오는 깊은 밤의 풍경소리처럼 뎅그렁 울릴 제면 더 울릴까 맘 졸이는 그 심정이 지금의 내 마음 같기도 하다.
떠나보냈던 아내가 행여 정상인으로 되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맘 졸이는 순간이 자주 있다. 바보처럼 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세월이다. 세월이 가도 잊히지 않고, 죽음보다 더 괴로운 게 있다면, 그건 그렇게 보낸 당신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 일 것이다. 사형수가 사형장에 끌려가다 계단에 넘어지면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했단다. 팔십 넘어 오래 살자고 밥 먹고, 더 오래 살자고 약 먹는다면, 사형장에 끌려가면서 몸조심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늙어가면서 후회되는 게 있다면, 젊어서 어른들 말씀 귀담아 듣고 말씀대로 행동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처절히 초라하게 늙어가며 외롭지 않을 것을…
김수환 추기경은 말을 배우는데 3년(세살)이 걸렸지만, 남의 말을 듣는(경청)데는 60년이 걸렸다며 자칭 ‘바보 김수환’이라 했다는 일화가 있다. 늙어가면서 젊은이들의 말, 주변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진짜 바보가 안 된다.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에 보면, 알아주는 칭찬은 인간사회를 현명하게 사는 윤활유요 자원이라고 했다. 나도 젊어서 이처럼 주변사람들에게 칭찬을 많이 했더라면 늙어서 이처럼 덜 외로웠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티벳 사자의 서>에 보면, 생을 마감할 때 영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며, 더 갖기 위해 집착하지 말라고 했다. 카톨릭 성자들도 죽으면 육신은 헌옷 한 벌을 벗는 것과 같다고 했다. 피할 수 없는 게 죽음인 것이다.
육영수 여사의 수기를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도 군에서 별 하나 달 때부터 매일 속옷을 갈아입으며 오늘 내가 죽을지도 모르니 죽거든 부끄러운 곳은 손대지 말고 수의를 입혀달라고 했다 한다. 항상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 모두들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어느 시점에 죽을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목숨이 붙어있는 한 살아가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독일의 문호 괴테도 “그래, 어떻든 간에 인생은 좋은 것이다. 현재에 열중하라. 오직 현재 속에서만 인간은 영원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켈러 여사는 나에게 사흘만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첫째 날은, 내게 친절한 분들, 따뜻한 분들을 보고 싶고 석양에 빛나는 황홀한 노을 앞에서 감사드리고 싶다. 둘째 날은, 동틀 때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가슴 설레는 기적을 보고 싶다. 셋째 날은, 아침 일찍 출근하는 부지런하고 든든한 활기찬 사람들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은 억울하게 거세형을 당하고도 중국의 문명기 이후 2500년간의 방대한 역사서 <사기> 130권을 집필했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 아니던가. 오늘, 아니 남은 생을 그냥 허투루 보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헬렌켈러와 달리 나는 여전히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있으며, 사마천과 달리 나는 여태까지도 사지가 멀쩡하지 않은가. 문호 괴테의 경구처럼 현재의 삶에 충실해야 하겠다. 비록 지나온 과거는 후회스럽기 그지없고,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아직도 나를 짓누르고 있지만, 죽는 그날까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죽은 뒤에는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새로운 출발선에 서서 신들메를 고쳐 메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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