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새로운 인연, 반려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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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새로운 인연, 반려견
  • 강성일 전 순창읍장
  • 승인 2018.03.0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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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에 애완견 한 마리가 우리 집에 왔다. 토이푸들(Toy Poodle)종으로 몸집이 작은개다. 올 땐 생후 3개월 600그램(g) 정도로 내 주먹 2개 크기였다. 4킬로그램(kg) 정도까지 큰다고 한다. 이 개는 사위와 딸이 보내 준건데 처음엔 반대했지만 지금은 고맙다.
작년 추석 때였다. 집에 온 딸이 절집같이 조용한 분위기가 답답했는지 애완견을 키워보라고 했다. 나는 반대했다. 추석 지나고 딸이 서울로 갈 때, 반대하는 내 뜻을 확실히 하는 차원에서 문자 메시지까지 보냈었다. 이정도 했으니 알아들었겠지 했다. 그 뒤에 별 말없이 지내다가 12월경에 딸이 집에 오겠다고 전화가 왔다. 결혼식 날이 다가오니 가족들 보고 싶어 오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내 착각이었다. 애완견을 데리고 온 거다. 이름까지 지어왔다. 황당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강아지가 측은했다. 환경이 바뀌어선지 별 움직임이 없고 머루같이 검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게 애잔하면서 귀여웠다. 이왕 왔으니 같이 살자고 마음을 정했다.
내가 개를 싫어해서 반대한 건 아니었다. 주위 사람들이 애완견을 키우면서 너무 깊게 빠져드는 모습을 보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지 않으려는 방어 심리였다. 어릴 때 개에 대한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아버지께서 강아지를 한 마리 사주셨는데 나는 같이 놀고 싶어서 쫓아 다녔다. 계속 쫓으니까 부엌으로 도망갔는데 그곳까지 따라가니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고 죽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묻지 못하게 떼를 쓰며 밤에도 내 머리맡에 두었다. 내가 잠든 후에 묻으셨다. 올해 금과로 이사 가면 집 지키는 개를 한 마리 키워, 쥐나 뱀을 잡을 생각은 있었는데 애완견이 온 것이다.
가족들 호칭을 정했다. 아들은 오빠로 집사람은 엄마로 나는 아빠가 되어야 하지만 하씨(할아버지)라 했다. 환갑을 넘은 나이에 아빠는 어색했다. 그리고 아들 방에서 키우도록 했다. 어리지만 영리하다. 오줌과 똥은 놓아둔 패드에서만 본다. 원체 작은 개라 오줌은 한 번에 소주 한잔 정도, 똥은 내 손가락 정도 크기다. 전혀 지저분하지 않다. 물먹는 소리도 상쾌하다. 술 마신 다음날 물 마실 때가 생각 날 정도로 시원시원하게 먹는다. 낮엔 주로 집사람과 놀다가 밤엔 아들 방에서 잤다. 새벽이면 우리 방으로 와서 문을 열라고 긁어댄다. 그땐 나도 깨어 있으니 열어주면 반가워서 무차별로 뽀뽀를 해댄다. 귀여워서 몸을 쓰다듬어 주는데 갈비뼈가 볼펜심 정도로 가늘다. 이 작은 몸으로 제 할 일은 다한다. 조금 있다가 집사람에게로 가서 뽀뽀를 한 후 자기 방으로 간다. 새벽 순찰을 도는 것 같다. 가끔은 수건이나 실내화를 물고 가기도 하는데 종종종 가는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장난감이 여러 개 있지만 특히 연필을 좋아한다. 내가 메모를 하고 있으면 기어이 뺏는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공부도 잘하고 자기 역할은 충분히 했을 턴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외출했다가 들어오면 5센티 정도 되는 짧은 꼬리를 격렬하게 흔들며 높이뛰기 선수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뛰며 반겨준다.
가족 모두가 예뻐한다. 예뻐하는 정도가 집사람이 10이라면 아들은 8정도이고 나는 6정도다. 개의 본성을 잃지 않도록 지나친 관심과 보호를 자제하는 편이다. 식물도 집에서 키우면 화분속의 화초지만 들판에서 비바람 맞으면 나무처럼 큰다. 개답게 키우기 위해서 가급적 손길을 피하는 것이다.
이 애를 보면서 길고양이와 가축들에겐 미안하다. 유난히 추운 올겨울 혹한에 떨며 굶주릴 길고양이들 그리고 인간을 위해 사육되다가 전염병이 번지면 살처분 당하는 가축들에게는 죄스런 마음까지 든다. 직장 다닐 때 살처분 현장을 몇 차례 갔었다. 그 처참함은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인간이 만든 문화재나 유적지를 파괴하면 야만적 행위라고 한다. 동물은 신이 만든 창조물이다. 인간에게 모든 걸 주면서도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무자비하게 살처분 되는 현상을 뭐라 말해야 하는지? 야차(夜叉, 잔인한 귀신)라고 해야 할까.
이젠 우리도 웬만큼은 산다. 우리가 인간다우려면 동물 복지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메말라 가는 감성에 온기와 웃음의 기회를 준 사위와 딸이 고맙다. 그리고 생명체와 교감하는 기쁨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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