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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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땅
  • 김효진 이장
  • 승인 2018.03.29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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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풍산 두지마을 이장

어릴 적 고구려 백제 신라로 편 나누고 땅 따먹기 놀이를 한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도 땅바닥에 금 긋고 내 영토를 키워가는 재미는 솔찬했다. 땅 한 뙈기 갖지 못한 가난한 농사꾼 자식들은 부모들이 갖지 못한 꿈을 땅바닥에서 열심히 실현하고자 했던 것일까. 땅은 그 당시 소유물이 아니라 생산수단이어서 먹고 사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였고, 그래서 꿈이었다.
땅은 인류가 발 딛고 살아오는 동안 많은 사연을 남겨왔다.
강을 따라 주변 땅들은 시나브로 농토로 변해왔고 인류는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태동한다. 
유사 이래 땅은 ‘권력’이 되고, ‘계급’을 낳는다. 땅을 통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지주), 그리고 종교권력이 짬짜미를 하여 민초의 고혈을 짜낸다.
우리 역사에도 권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땅에서 소외된 가슴 시린 이름들이 있다. 고려시대 고립된 지역에서 천민보다 더 극심한 신분적 차별을 받으며 봉기한 망이 망소이 형제와 연이어 봉기한 김사미와 효심. 조선말 지역과 신분의 차별에 대항한 홍경래. 삼정의 폭거와 관리의 탐학에 봉기한 진주 농민들과 갑오년 전장에 뛰어든 동학농민들까지.
이후 일제 강점기까지 거치면서 우리 선조들은 땅을 갖지 못해서, 땅을 빼앗겨서 착취당하고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해방 이후, 북쪽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내세워 총독부나 일본인이 소유했던 토지 그리고 친일파와 민족 반역자의 토지를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몰수한다. 조선인이 소유한 토지의 경우, 1만5000평(5헥타르)이 넘거나 자신의 힘으로 경작하지 않으면 몰수하였다. 반면, 남쪽은 북쪽의 토지개혁의 영향을 받긴 하였으나 유상매수 유상분배를 원칙으로 삼는다. 국가가 9000평(3헥타르)이상 지주의 농지를 사들이고 소작농에게 5년간 30%의 세를 받아 되팔았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겪으며 농지개혁은 유야무야되고 그나마 실제 매매된 농지는 제한적이어서 전근대적 지주-소작관계가 지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현재는 어떠한가.
여전히 농민은 경자유전의 헌법조항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2008년 농사를 짓지 않는 공무원과 도시민이 직불금을 불법 수령한 사건은 농촌의 부재지주가 얼마나 많은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농지는 농업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보다 개발이익을 앞세우는 규제완화로 해마다 그 면적이 축소되었고 정부의 농지정책도 지속적인 규제완화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농지뿐 아니라 토지도 마찬가지다. 상위 5%가 민간소유 토지의 60% 이상 소유하고 있다는 발표에 근거해, 노태우정권 때 토지공개념이 법률로 뒷받침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정부 개헌안에 포함된 토지공개념에 대해 자유한국당의 저급한 색깔론 공세를 보면 생뚱맞기 그지없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자신의 지역구에 설립하려던 장애인 특수학교를 반대하고 나서는 걸 보면, 토지공개념을 가장 신봉하는 ‘빨갱이’임을 고백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신의 땅이 아닌 곳에 무엇을 짓든 무슨 상관인가 말이다.
무릇 땅은 하늘의 것이다. 인간은 잠시 빌려 쓸 권리와 후대에 보존하여 물려줄 의무가 있을 뿐이다. 모든 생명과 인간이 각자의 그릇에 걸맞게 머물 수 있는 천부 권리인 땅을 한 줌의 부와 권력이 독점하여 소유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깔담살이가 자갈밭일망정 제 땅을 갖고, 무허가촌에 사는 도시빈민이 제 몸 편히 뉠 수 있는 집 한 채 얻는 꿈이, 그리 야무진 꿈이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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