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서(27)/ 벨라 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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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서(27)/ 벨라 차오
  • 선산곡
  • 승인 2018.04.1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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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지하철을 탔다. 어느 정거장에서 허름한 차림의 중년의 사내 둘이 사람들 틈에 섞여 올라 왔다. 파리지앵이 아닌 이민자의 모습들이었다. 인종구분을 잘 못하는 나였지만 그들이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손에 바이올린이 들려 있었다. 별로 지체하지 않고 그가 연주를 시작했다. 연주 솜씨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지만 연주하는 곡이 귀에 익었다. <벨라 차오>. 이탈리어 어로 ‘안녕, 내 사랑’이라는 뜻의 노래였다.
이탈리아 파르티잔이 전선으로 가기 전 애인과 헤어져야하는 아픔을 노래한 것이다. 원래는 이탈리아 북부민요였지만 2차 대전 무렵 가사가 바뀌고 템포를 빨리 하여 무소리니에 대항한 파르티잔들의 혁명가로 탈바꿈되었다.
흔한 일이라는 듯 사람들은 무심했다. 거리의 악사들이 많은 것은 그 나라 문화의 척도를 가늠하는 것 같아 환영할 일이지만 우리나라처럼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번잡한 지하철에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무심코 ‘차오 차오’, 입술을 움직인 나와 연주자의 눈이 마주쳤다. 그가 내 앞으로 다가와서 연주를 계속했다. 원래 오디션을 거친 수준급 악사들이 파리에 많이 있는 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연주자가 내 앞에 선 의도는 예술의 표현과는 다른 것이었다. 당황한 나에게 곁에 서 있던 딸아이가 동전 하나를 얼른 손에 쥐어 주었다. 연주자 옆에 서 있는 동행자의 모자에 동전을 놓아 준 뒤 나는 남의나라에서 노래 따라했다고 마누라에게 핀잔을 들었다. 딸이 재치 있게 쥐어 주었던 동전이 그 연주의 값에 알맞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나이 든 동양인이 감응해 준 <벨라 차오>, 빈한한 무대의 서툰 음악을 동정하듯 한 푼 던진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 오스트레일리아 가수 아니타 레인(Anita Lane)의 <벨라 차오>를 듣고 있다. 혁명가답지 않게 느린 레인의 노래는 사람 간장을 그저 뒤집어 놓을 듯 처절하다. 파리지하철의 악사가 연주했던 것은 민중을 선동시키고 혁명의 전열을 다듬는 듯 빠른 속도였다.
<벨라 차오>는 시시덕거리며 놀다 헤어지는 연인들의 인사말은 분명 아니다. 싸움터에 나가는 전사가 기약 없는 이별 앞에서 마지막 눈물로 불러보는 노래다. 이 노래를 빠르게 불러도, 느리게 불러도 단조로 파고드는 그 울림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원래 혁명가는 단조가 많다. 빠른 속도로 부르면 울컥하는 피의 역동을 유발하는 의도가 숨은 것도 같고, 느리게 부르면 폭풍전야의 고요처럼 선동을 기다리는 분위기가 숨어있어 보인다. 물론 내 생각이지만 ‘러시아 붉은 군대 합창단’의 레퍼토리들이 그런 느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혁명을 입에 달고 사는 나라, 러시아는 물론이고 북한에서도 이 노래를 번안해서 부르는 동영상을 본적이 있었다. 올해 초 그리스에서도 이 노래가 전국에 울려 퍼졌다. 급진좌파들이 총선에 승리하자 광장에서, 술집에서 너나없이 이 노래를 합창하고 있었다. 서구좌파의 투쟁가가 된 이 노래는 분명 역동적이었다.
지금 듣는 ‘아니타 레인’ 노래. 역동 아닌 처절함이 카타르시스를 준다. 나이 들어 이젠 ‘혼을 빼는 노래’가 좋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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