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1903~1950)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로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서는 긴 시간을 흔들림 속에서 기다려야했지만, 그 꽃 피우고 나면 지는 것은 잠깐이다. 잠깐 만나보는 꽃을 우리는 그렇게 기다렸고 보내놓고 또 기다리며 산다. 하니 그 꽃이 왔다가 떠날 때는 온 우주가 이별하듯 슬픔 속에 잠기는데 그 마음속에는 사랑하며 사는 목숨의 경이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도 이와 같아서 언제나 그 절정을 향해 산다. 아-그러나 이루지 못한 소망이 우리에게 더 많을 터인데 이를 어찌 할 것이냐? 그러나 대답은 있다.
숨어서 곱게 키운 사랑이듯 무화과 열매는 당초에부터 열매 속에 꽃이 숨어 살았다 하니 세상은 꼭 꽃으로만 비유해 살수는 없다.
이쯤에서 보면 김영랑 시인은 우주를 관통해 여행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꽃피운 모란의 시인이다. 가장 아름다운 우리의 딸로, 나를 키우고 가꾼 흙이 묻어있는 토속어로, 연못가에 고개 숙인 겸손함으로 흔들리고 있는 능수버들처럼 잔잔히 감동을 주는 시어들로 가득 차있다. 해외로 도시로 떠돌면서 신문학을 접하고 받아들였지만 끝내 돌아온 곳은 고향이었다. 고향 강진에는 올해도 5월에는 모란이 피겠지만 모란이 져버린 뒤에도 사람들은 찾아들 것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 한 줄이 일 년 내내 피어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