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198) 자유와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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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198) 자유와 구속
  • 박재근 고문
  • 승인 2018.05.10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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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순리를 지향하기 때문에 도덕에서 탄생한다. 도덕에 근거하지 않는 자유를 방종이라 하며 방종은 순리를 깨뜨림으로서 구속을 만들기 때문에 자유가 아니다. 자유란 사물에 구애되지 않고 유유자적함을 의미하며 구속이란 몸이나 마음이 사물에 묶여 있음을 의미한다. 몸은 구속되어 있어도 마음은 자유로운 사람이 있고 몸은 자유로워도 마음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있다. 몸의 구속은 자신의 의사에 반한 타의에 의한 것으로 국가나 또는 타인의 폭력에 의해 행하여진다. 대표적으로는 국가 기관에 의한 구속으로 국법을 위반하였을 때이다. 국법은 국민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사회적 합의로서 이를 어길 경우 국민의 평화와 안녕을 위태롭게 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깨뜨리는 것을 일러 범죄 행위라 한다. 하지만 국가는 때때로 법의정신에 의한 정의와 양심을 지키려는 사람을 가두는데 이를 일러 국가폭력이라 하며 이는 국가 권력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부도덕하여 법을 자신의 정치적 이해득실로 해석하여 집행할 때이다. 이로 인해 양심수 또는 사상범이라는 말이 생겼다.

정신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러 몸으로부터 해방되어 있는 경우 몸은 구속할 수 있어도 마음은 가둘 수 없다. 사람은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해 구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 마음이 자기 밖의 사물에 구속되어 있을 때이다. 사상, 이념, 감정, 일, 사람, 물질, 지위, 권세, 명예에 대한 애착과 집착을 버려야 자유스러워질 수 있다. 애착이란 특정한 사물을 특별히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이 강하여 그것에 구속되어 자유를 잃는 일을 말하며 집착이란 특정한 사물에 마음이 붙들려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한다. 세속적 욕망의 밧줄에 묶여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도하지 못하고 타의에 의해 끌려 다니면서 자유를 잃고 사는 것은 진정한 나를 잃고 사는 것이다. 정신의 자유라는 나의 속 알맹이를 잃고 몸에만 매달려 사는 것은 살아 있어도 정신을 잃은 것으로 죽은 삶일 뿐이다. 몸과 마음을 자신의 뜻대로 하지 못하고 자기 밖의 사물의 뜻에 따르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이 아닌 남의 인생을 위한 부속품으로 사는 것이다.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경우 욕망과 희로애락의 감정에 구속되어 사는데 세상에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생각과 감정 욕심에 마음눈이 가두어져 있기 때문이다. 마음눈이 가두어져 있다는 것은 정신적 시야가 막히고 가려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눈이 가두어져 있게 되면 사물(사람, 일, 물질 등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일부분만을 보고 편협한 생각을 갖게 되고 편파적 주장을 하게 된다. 자기감정만 알고 남의 감정은 모르며 자기입장에서만 생각을 하고 남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며 자기 이익은 보되 남의 손해를 못 보며 자기 마음이 상하는 것은 알되 남의 마음이 상하는 것은 모른다는 것은 건강하고 온전한 정신이 아닌 병든 정신이다. 건강한 정신은 조화와 균형을 바탕으로 함께 사는 정신이며 균형을 잃지 않은 정신을 올바른 정신이라 한다.

건강한 정신이 올바른 마음을 만든다. 올바른 마음이란 나와 남이 함께 사는 사회의 평화와 안녕을 지키는 균형을 잃지 않은 마음이다. 나와 남을 같은 무개로 대우하는 것이며, 나와 남의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마음이다. 사물에는 이해득실이 있고 이해득실은 상대적이다. 사람들이 다투는 것은 사물을 보는 시야가 다르고 시야가 다르기 때문에 견해와 주장 또한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의 언행은 도리가 아닌 욕망과 감정의 표출이며 관심을 갖게 하고 행위를 하게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닌 세속적 이익이다. 세속적 이익은 언제나 반면의 상대적 손실을 동반하기 때문에 세속적 이익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충돌이 발생하면서 마음은 불쾌한 감정에 구속된다. 소신과 신념이라는 이름의 자기 의견에 대한 확신이란 거개의 경우 사물에 대한 조화와 통합의 합리적 통찰이 아닌 부분적이고 불완전하며 불합리한 견해가 많다.

자기 애착은 집착을 만들고 집착은 확신을 만들고 확신이라는 틀에 갇히게 되면 사물을 보는 시야는 좁아져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된다. 자유인은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사람이다. 일에 대한 욕심, 사람에 대한 욕심, 돈, 지위, 명예에 대한 욕심에서 희비애환이 발생하며 욕심과 희비애환의 감정이 나를 얽어맨다. 하여 욕망과 희로애락의 감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움의 극치인 자유무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불교에서는 해탈 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법에도 얽매이지 말고 공에도 얽매이지 말라”고 하였다. 불교에서 법이란 진리를 의미하며 공이란 비움을 의미한다.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도 집착하게 되면 진리에서 멀어짐으로 진리에도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고 참으로 비움은 비움이 아니라 했으니 비움이란 지워지지 않는 마음을 지우라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노자 도덕경 첫머리에 나오는 “도를 도라고 하는 것은 항상 같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도란 진리로 가는 길이다. 길에는 인류가 함께 가야할 대도가 있고 개인적으로 가야 할 길이 있다. 길이란 언제나 내가 서있는 곳에서부터 시작되니 과거의 길과 지금의 길 오늘의 길과 내일의 길이 다르며 당신의 길과 나의 길이 다르니 때와 장소 입장과 처지에 따라 길이 달라짐을 의미하는 말이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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