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단일민족’의 틀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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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단일민족’의 틀에서 벗어나자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18.07.12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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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우리를 단군의 자손이고 지구상의 몇 안 되는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라며 우리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또 그렇게 교육 받아왔다. 그러나 우리는 유사 이래 고려시대 이전까지 ‘단일민족국가’가 아니라 ‘종족연합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살아왔다. 우리 민족은 예맥족(濊貊族)과 한족(韓族)으로 구성되어 발전해왔다고 역사학계에서는 말하고 있다. 심지어 발해의 경우에는 구성원의 다수가 말갈족(훗날의 여진족)이었다. 우리 건국 신화의 특징 중 하나는 이주민 세력이 토착 세력과 힘을 합쳐 나라를 세웠다는 점이다.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였던 만주와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오래전부터 다양한 무리가 끊임없이 유입되었다. 만주와 한반도 토착민들은 새로운 기술을 갖춘 유이민들과 협력해 국가를 건설하고 발전해 온 것이다.
<삼국유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였던 단군조선에 대해 ‘천제의 아들인 환웅이 풍백, 우사, 운사를 비롯한 삼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내려와 웅녀와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고 기록하여 북쪽에서 이주해 온 환웅족과 곰을 섬기는 토착 부족의 연합으로 고조선이 건국된 과정을 담고 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은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에 나라를 세웠고, 그 후 주변의 막강한 토착세력이었던 연타발의 딸 소서노와 재혼하였다. 소서노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은 고구려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신라의 3대 시조 중 하나인 석탈해 설화도 이런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석탈해는 왜국의 동북쪽 천 리 떨어진 다파나국에서 태어났다. 다파나국 왕의 부인이 큰 알을 낳았다… 비단으로 알을 싸서 보물과 함께 궤짝 속에 넣어 바다에 띄웠다… 처음에 금관가야 바닷가에 이르렀으나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거두지 않았다. 다시 아진포 어귀에 다다랐을 때  바닷가에 있던 할멈이 궤짝을 열어보니 어린아이가 있어 거두어 길렀다.”(<삼국사기>-「신라본기」) “궤짝이 처음에 금관가야 바닷가에 이르렀으나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거두지 않았다”는 내용에서 외부 세력이 들어올 때 두 세력 간에 갈등과 충돌했음을 알 수 있다. 석탈해 세력이 당초엔 가야 지역에 정착하려 했지만 이미 터를 잡고 있던 금관가야의 김수로왕과  대결하다 패배한 뒤 신라로 달아났다는 것이다.
식민지시대 일제에 대한 저항 수단은 우리의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단일민족’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의식 속에 남아 있는 것이 ‘단일민족’이고 ‘순혈주의’이다. 하지만 민족의식이라는 개념은 18세기 이후 프랑스혁명과 유럽의 근대국가 형성 과정부터 싹텄다는 것이 오늘날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우리는 흔히 단군의 자손이라고 말하지만, 사극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과는 달리 삼국의 건국 시조 중 누구도 자신을 단군과 연결 지은 적이 없다.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는 같은 뿌리라는 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주와 한반도의 고대사는 단일 민족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한반도에 들어온 여러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 온 역사였기 때문이다.
최근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을 놓고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올 들어 제주도를 통해 입국한 예멘인 549명 가운데 486명이 제주출입국청에서 심사를 받고 있다. 이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보다는 민족 우월의식에 기반한 외국인에 대한 배척, 무슬림들이 난민으로 가장해 숨어들어와 우리 사회에 테러를 가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등 반대여론이 더 우세한 것 같다.
우리는 그동안 난민을 인정하는 데 인색했다. 1994년 난민법이 제정된 이후부터 작년까지 우리가 받아들인 난민은 706명에 불과했다. 2011년 발생해 현재도 진행 중인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이 발생했을 때 독일이 받아들인 난민은 백만 명이었지만 우리가 받아들인 난민은 단 한 명이었다. 그런데 우리도 식민지시대 일제의 탄압으로 수십만 명의 동포가 고국을 등지고 만주와 러시아 심지어는 중앙아시아까지 난민으로 떠돌던 적이 있다. 우리도 한때는 난민이었다.
세계사적으로 흥한 나라는 대부분 인종, 지역, 종교를 가리지 않고 포용적이었다. 고대 로마와 중세의 몽골, 그리고 이민자들이 세운 ‘인종의 용광로’인 현대의 미국이 그렇다. 약간의 불편은 따르겠지만 수백 명의 예멘 난민 때문에 우리 사회의 통합이 깨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양성과 포용성으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이득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이제는 ‘단일민족’이라는 고정관념과 틀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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